요즘은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해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기성세대 중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꼭 결혼하라고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기혼자로서의 경험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나 개인으로서의 생각에서 말하자면 결혼할지 말지 고민된다면 그냥 결혼하지 않는 게 옳다고 본다.
결혼에는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혼은 강력한 결합이고 그 결혼의 유지와 운영은 비록 그 결혼이 이혼까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결혼을 했었어야 했다는 강력한 확신에 의지하게 된다. 결혼에 대한 확신이 객관적 상황 이상으로 결혼에 대한 만족도를 결정한다. 확신이 없다면 행복하기 어렵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즉각 물을 것이다. 사람에게 어떻게 확신이 있냐고 그리고 당신은 그럼 결혼할 때 확신했었냐고. 우선 나에 대해서 짧게 말해보자면. 그렇다. 나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거의 없었고 결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람에게 어떻게 확신이 있을 수 있냐고 당신은 결혼 이후에 당신의 결정에 대해서 단 한 번도 흔들려보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오히려 바로 그것이 결혼에 확신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의 결정이란 결코 절대적일 수 없으며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힘이 들고 여러 가지로 부딪히게 되면 또는 상대방의 언행에 실망하는 순간이 생기게 되면 바로 그 생각이 들게 된다. 이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뭐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결혼이란 마치 운명 같은 것이어야 한다. 즉 좋든 싫든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할 운명이었어라는 느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결혼의 결정 자체를 다시 돌아보지 않게 된다. 그보다는 운명처럼 주어진 결혼이라는 상태 위에서 나는 내 인생을 보다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뭘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게 된다.
확신이 없었다면 당신은 부질없이 결혼의 결정 자체를 가지고 곱씹을 것이고 결혼은 더더욱 나쁜 것으로 빨리 변할 것이다. 안 그래도 결혼 생활은 쉽지 않은 것인데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옳지가 않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 말하면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이 다 그렇다. 세상에 확신이 어디 있냐고 말하겠지만, 확신이라는 것은 있다. 우리는 인생의 여러 중요한 고비에서 고민한다. 확신이 있으면 고민을 안 할 것 같지만 확신이 있는데도 고민하는 것이 인간인데 왜냐면 자기가 확신을 했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다.
이런저런 생각에 흔들리고 고민하지만 사실 자기 자신에게 직설적으로 내가 이걸 안 하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이게 좋은가 싫은가에 대해서 너는 흔들리고 있는가를 물으면 뜻밖에도 종종 우리는 우리 안의 확신을 발견하게 된다.
확신이 있으면 우리는 뻔한 실패나 고생길로도 들어서게 된다. 왠지 그렇게 하지 않고는 후련하지 못한 것이 바로 그 확신이며 이런 의미에서 확신은 물론 약간 미친 것이다.
내가 전공을 정하거나 내가 어떤 프로젝트에 모든 힘을 다했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도 나는 확신이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그렇게 하면 어떤 영화가 돌아올 것이며 나의 장래 프로젝트와는 어떤 관계가 생길 것인가 혹은 이걸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별로 신경 쓰게 되지 않았다.
확실히 그런 건 다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확신이 있다는 것은 그게 좋아서 약간 혹은 많이 미친 상태다. 사실은 그런 구질구질한 이유 따위는 이미 상관없는 상태이다.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되는 상태다. 운명인데 무슨 계산을 하고 장래에는 어떨까를 고민한다는 말인가. 그냥 그걸 할 뿐이다.
결혼은 운명적인 상대와 하는 것이다. 그래야 행복하다. 그래야 망해도 후회가 없다. 나는 도통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혹시 당신은 스스로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많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느라 당신의 운명을 느끼지 못한 것뿐 아니냐고 말해주고 싶다.
요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은 무슨 기업합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결혼이란 두 인간의 강력한 결합이므로 사실 따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있을 법한 구석은 끝도 없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대비하라고 말해주고는 한다. 그런 충고들은 모두 옳은 것이다.
그런 것들을 알 필요는 있다. 하지만 결혼은 수백 수천 줄짜리 계산의 결론으로 만들어지는 답은 아니다. 인간의 계산이란 사실 인생의 복잡성에 비하면 가소로운 것이라서 수천 줄짜리 계산을 해도 약간의 계산 미스로 모든 계산은 틀리게 된다. 그런 계산 종이 따위 구겨서 던져버리고 단칼에 결정을 내리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사람이라는 확신이다.
그런 확신을 해도 결혼을 하고 10년을 살고 30년을 살면 당신은 상대가 미워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워도 결국 당신이 자기 자신을 믿는 한 그건 내 오른손을 내가 미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길고 긴 계산은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걸 모두 잊고서 한가지 질문을 하면 된다.
결국, 답은 뻔한 거였던가? 끝까지 뻔한 거라는 생각이 안 들고 불안만 한다면 둘 다를 위해서 결혼은 안 하는 게 좋다. 확신이 있어도 긴 것이 인생이다. 안 그런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결혼을 수없이 하는 일이 나를 지치게 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죽자사자 매달리고 견디고 끝끝내 성취하는 결혼도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 확신도 없이 하는 결혼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그렇게 해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다만 안 그래도 짧고 힘든 인생 그렇게까지 억지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런 건 너무 많은 것을 건 도박이 아닐까?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