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와 디자이너와의 은밀한(?) 대화편이 다른 모든 글들을 압도하는 조회수도 기록하고, 또 모 사업PM의 요청도 있고 해서 부랴부랴 다른 편도 한 번 적어보았다. 전편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이들 읽어주시길 바라며, 호응이 좋으면 또 다른 편도 한 번 고민해 볼까 한다.
누가 감히 사업PM이 왕이라고 했냐?
개인적으로 모바일 게임사업에 있어서 개발 영역을 제외하고는 가장 어렵고, 힘든 직무 중 하나가 사업PM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게임 흥행에 있어서 매출이라는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고, 게임의 전체 일정을 총괄하며 약 1~2년이라는 론칭을 위한 시간 동안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야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사업PM이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업PM은 그만큼 부릴 수 있는 권한도 막강하다. 물론 권한이 큰 만큼 사업PM은 본인 스스로 의사 결정해야 할 일들도, 조율해 나가야 할 유관부서의 담당자들도 너무도 많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대표님, 임원진, 나아가 개발사 대표님 및 PD 등으로부터 매일같이 수많은 이야기와 요청사항이라는 화살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론칭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게 바로 사업 PM의 숙명이다.
사실 나도 게임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온 첫 몇 년 동안은 해외와 국내를 오가며 사업PM을 경험해 보았다. 당연히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당시를 기억해보면 일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능력과 경험의 부족 그리고 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결국 약 4년 만에 그토록 원하던 마케터로 어렵게 어렵게 보직을 변경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마케터인 지금은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부족한 능력에 허덕거리고 있고, 매일매일 솟구치는 스트레스에 하루에도 몇 번씩 욱하는 기운을 원기옥처럼 꾹꾹 모아놓고, 회사를 나가자마자 저 멀리 시원하게 던져버리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사업PM은 왜 스트레스를 그렇게나 많이 받을까?
생각해보면 사업 PM은 근본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직무이다. 기본적으로 너무도 많은 일을 담당해야 하고, 또 사업PM 본인이 직접 그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PM은 게임 개발부터 운영, QA, 웹, 홍보, 마케팅 등등 모든 분야의 유관부서 사람들과 매일매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당연히 모든 직무에 대해 담당자만큼은 아니더라도 각 각의 영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그나마 대화다운 대화가 가능하다. 또한 그러한 대화를 통해 얻은 결론에 대해 사업PM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또 그에 대한 무거운 책임도 짊어지게 된다. 그래서 가끔 1~2년 차 사원이 메인으로 사업PM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볼 때면 개인적으로 안쓰러우면서도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실상 게임 회사에서 그런 일은 많지 않다)
어쨌든 사업PM은 이처럼 다른 유관 부서들과의 협업도 협업이지만, 사업PM으로의 본질적인 업무에도 또한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사업PM은 자신이 담당한 게임의 게임성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아내어 개발사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그 와중에 유료화 모델을 기획하고, 향후 론칭 후 예상되는 매출을 계산하고, 나아가 업데이트 계획과 중장기적으로 게임을 사업적으로 어떻게 끌어갈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각종 이슈들을 능숙하게 처리하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으로 사업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체크하고 수정해 나가야 한다.
누차 강조하지만 정말 사업PM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물론 사업PM들이 밤낮으로 고생하며 이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게임들이 달콤한 성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게임사업에 있어서 사업PM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사업PM은 왜 마케터와 만나기만 하면 싸울까?
마케터와 사업PM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지금까지 게임회사의 사업PM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해보았다. 이번에는 이렇듯 엄중한 임무와 책임을 지고 있는 사업PM들과 마케터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사업PM이 게임의 론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부분은 역시나 게임의 안정성 및 개발 관련 이슈들이다. 하지만, 사실 개발자가 아닌 이상 사업PM이 아무리 잘하려 아등바등 노력하고, 열심히 기획을 제안해도 개발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 어느 것 하나도 실현시킬 수 없다. 즉, 현실적으로 게임 개발은 사업PM이 컨트롤 하기 제일 어려운 영역 중 하나인 것이다.
사업PM이 개발팀에 요청한 사항들에 대한 반영은 둘째고, 론칭 일정만 제때 맞춰주어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 생각하는 사업PM들도 많으리라 감히 짐작한다. 하지만, 마케팅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케팅에 대해서 사업 PM은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다. 특히나 사업PM 중 이전에 본인이 직접 마케팅을 해보았거나 지나치게 강성인 성격의 사업PM들은 마케터가 정성껏 준비한 전략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가한다. 더 독한 사업PM의 경우에 결국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 마케터를 교체하기까지 한다. (물론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게임 회사에서 일어나는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이다)
사업PM들은 이처럼 마케팅에 대해서는 보통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어느 정도는 자신이 생각대로 마케팅 방향을 이끌어 가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마케터 또한 마케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업PM들과 마케터들이 비판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의외로 크고 작은 갈등들이 많이 발생한다. 이 경우 마케터는 이러한 사업PM들의 의견을 100% 수용할 수도,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반대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케터는 열심히 문서를 만들고, 이유와 근거를 데이터와 함께 빼곡히 적어 사업PM 및 경영진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근거를 보여주고, 논리를 잘 세워도 설득이 어려운 부분이 바로 콘셉트, 메시지, 이미지, 영상과 같은 크리에이티브 영역이다.
사실 매체 구성의 경우 명확한 데이터와 효율이 바로바로 나오기 때문에 시업PM들도 마케터가 약간의 근거를 보여주며 예상되는 다운로드 수치를 보여주면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부분에 대해서는 다르다. 크리에이티브란 것이 사실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거 메시지가 너무 센 거 아니에요?’
‘너무 평범하고 무난한 거 아니에요?’
‘애들 표정이 왜 저래요? 좀 더 발랄한 거 없어요?’
등등의 다양한 의견들을 사업PM들은 얼마든지 마케터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대표님을 비롯한 개발사의 의견까지 더해지면 멘탙이 약한 마케터는 잠시 휘청거리다 바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잠시 후 마케터는 정신을 차리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어떻게든 반영하여 최적의 조합을 찾으려 부랴부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론칭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다. 특히나 내부적으로 기대작이거나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투입되는 대작 게임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혹시라도 아니라면 정말 다행이고, 그 마케터는 복 받은 마케터이다.
사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사업 PM과 마케터의 팀워크이다.
게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업PM과 마케터의 궁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차치하더라도 이 둘의 의견은 최소한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왜냐하면 사업PM과 마케터의 생각이 서로 다를 경우 마케터는 결국 아무 일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둘의 의견부터 하나로 맞춰야 한다.
방법은 뭐 디자이너와의 협업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한 설득과 이해뿐이다. 그때그때 회의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한 후 적정 수준의 합의점을 찾는 과정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서로가 충분히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결론을 반드시 도출해 내야 한다. 그다음은 여기저기 들어오는 마케팅 관련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강력한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체 마케팅 방향이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사업PM과 마케터는 이런저런 외부의 불필요한 논쟁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시간들을 아깝게 뺏기지 않기 위해 똘똘 뭉쳐 사람들을 설득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문제는 실제 업무를 하다 보면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마케터들은 몇 번의 멘붕을 겪다가 결국 퇴사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사업PM이든 누구든 외부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양보하거나 수용하는 성인의 길을 택한다. 가끔 길거리에서나 인터넷을 하다가 어떤 게임의 마케팅을 보면서 속으로 ‘헐! 저게 뭐야? 왜 저렇게밖에 못했을까?’라고 생각하는 마케터 또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면 속으로 생각한다. 물론 마케터의 판단 또는 센스가 문제가 있어 저렇게밖에 마케팅을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세상에 나오는 걸 끝까지 못 막은 마케터는 정말 이래저래 얼마나 힘들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마케터와 사업PM은 생각 자체가 다르다고?
마케터와 사업PM의 대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마케터와 사업PM이 갖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마케터의 생각
- 마케터가 기획하고 생각하는 콘셉트에 사업PM이 충분리 공감해 주기를 기대함
- 가능한 다양한 상황별 제작물을 마케터의 계획에 따라 전략적으로 공개하고 싶어 함
- 어떻게든 하나의 메시지를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고 싶어 함
- 개발만 가능하면 다양하고, 새로운 이벤트를 얼마든지 하고 싶어 함
- 마케터의 요청사항들을 사업PM이 부디 빨리 제공해주기를 바람
- 사업PM이 마케팅에 대해 명확한 요청사항과 사업에 대한 그림이 있었으면 함
-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유입을 만들어내는 것이 마케터의 최종 목표임
사업 PM의 생각
- 사업계획을 위해 마케터의 정확한 예산에 따른 예상 유입 수치를 원함
- 가능한 많은 콘텐츠들을 론칭 전에 준비해 론칭 후에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싶어 함
- 어떻게든 자신의 게임이 손익분기점을 넘는 매출을 만들어내고 싶어 함
- 마케터와 같이 개발만 가능하면 새로운 이벤트를 하고 싶어 함
- 사업 PM의 요청사항들을 마케터가 빨리 제공해주기를 바람
- 론칭 초반에 어떻게든 가능한 많은 유저들을 마케터가 모아주었으면 함
- 마케팅에 대해서는 마케터가 알아서 해주거나, 또는 그냥 사업 PM의 말을 따라주었으면 함
이렇듯 마케터와 사업PM은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서로 마음에 안 들거나 이런저런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가 역시나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어떻게 하냐고?
정답은 역시 진심을 담은 대화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마케터들은 사업 PM과 한 팀이 되어 마케터가 준비한 소중한 전략들을 사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업 PM과 마케터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론칭을 준비하는 마케터와 사업PM이 나누는 다양한 대화들을 일단 한 번 은밀하게 들여다보자. 마케터와 사업PM의 대화 중 가장 많이 주고받는 질문과 답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Q. 사업PM. 우리 게임 마케팅 예산이 얼마예요?
A. 마케터. 그게 사업에서 사업계획과 예상 매출을 주셔야 저희도 판단을…Q. 사업PM. 이번에 우리도 다른 게임이 안 한 새로운 이벤트를 해보고 싶은데?
A. 마케터. 어떤 이벤트요? 흠, 저도 고민 좀 해볼게요^^Q. 마케터. 지난번 말씀하신 이벤트 기획안인데요. 완전 대박 아니에요?
A. 사업 PM. 헐… 이거 대박 아디디어네요. 그런데 일정상 개발사가 어렵다 할 듯요ㅡㅡQ. 마케터. 지난번 일정 때문에 못한 건데 이번에 미리 좀 준비해보려고요!
A. 사업 PM. 아 그래요? 흠, 이거 얼마 전에 물어는 봤는데 우리 게임은 구조상 어려울 것 같다네요ㅡㅡ;Q. 마케터. 언제 론칭이 가능할까요? 첫날 이슈화를 위해 날짜를 과감하게 공개해보면 어떨까 하는데?
A. 사업 PM. 그게 지금 빌드를 봐야는데 검수가 어찌 될지 몰라서 저도 잘….Q. 사업PM. 첫날 마케팅에서 얼마나 모아 줄 수 있어요?
A. 흠, 광고를 통한 유입이 이 정도고, 비슷한 게임 첫날 유입을 근거로 자연유입 부분 반영하면 이 정도는 될 듯해요.Q. 사업PM. 흠, 이 정도 예산이면 얼마나 모을까요?
A. 마케터. 역시나 광고를 통한 유입이 이 정도고, 비슷한 게임들 지표를 참고하여 자연유입 부분 반영하면 이 정도는 유입될 듯해요
(이런 식으로 나름 합리적인 근거를 만들어 예상치에 대해 계산은 가능하다. 문제는 정말로 그렇게 될지 누가 정확히 알겠냐마는… 이 질문이 사업PM들이 마케터에게 제일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Q. 사업PM. 이번에 우리 게임 모델로 누구누구로 가는 건 어때요? 제가 진짜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A. 마케터. 그게 예산도 없고요. 무엇보다 걔는 게임 광고 안 한대요ㅡㅡ;Q. 사업PM. 사업계획서 좀 써야 하는데 마케팅 전략은 언제 쯤 나와요?
A. 마케터. 네? 지금 마케팅에서 저번에 요청한 자료 기다리는 중인데요Q. 사업PM. 게임설명이랑 스크린샷 내용은 언제 줄 수 있어요?
A. 마케터. 네? 그건 원래 사업PM이 하는 일인데요!
(가끔 보면 론칭 준비 시 서로에 대한 R&R이 불분명한 경우가 있다. 각 PM마다 마케터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업무 전 이 부분에 대한 깔끔한 정리를 해야 불필요한 갈등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Q. 사업PM. 그런데 경쟁사 게임은 언제나 나올까요?
A. 마케터. 여기저기 통해서 한 번 확인해볼게요.
(어떤 사업PM은 게임이 언제 나오는 것을 늘 물어 들 본다. 가끔 그걸 정확히 알면 우리가 과연 뭘 얼마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며 그래도 또 여기저기 알아본다)
어렵게 게임을 론칭해서 운 좋게도 게임이 성공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공들을 여기저기 이야기한다. 물론 모두들 고생했고, 다 함께 고생한 결과라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한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사업PM 제일 고생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힘들었을 텐데, 그들을 이끌고 이 험난한 론칭을 한다는 것은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마케터의 공은 하나도 없냐고? 게임이 성공한 이유가 게임이 좋아서인지, 마케팅을 잘 해서인지, 운이 좋아서였던 건지 과연 누가 정확히 알겠느냐? 또 그게 뭣이 그리 중하겠냐? 그냥 마케터가 마케터로서 하고 싶은 마케팅을 할 수 있었으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끝으로 역시나 지극히 마케팅적인 입장에서 살짝은 과장되게 사업PM과의 은밀한 대화를 이야기해보았다.
원문: 우주인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