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살리기로 주거난 해소하는 사회적기업 (주) 두꺼비하우징
직장인 오광진 씨는 3년 전 원룸 생활을 접고 은평구 증산동의 한 공유 주택에 이사 왔다. 대지면적 357㎡(약 100평) 규모에 마당이 딸린 근사한 2층 집이다. 이곳엔 한 지붕 아래 7명이 모여 산다. 방은 각자 쓰지만 거실과 부엌, 화장실, 마당 등은 함께 쓰는 공유 공간이다.
혼자 살 때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쓸쓸함이나 적막함이 없어 좋아요.
텃밭 재배를 즐기는 오 씨는 마당에 고추랑 상추, 토마토, 파프리카를 키운다. 무럭무럭 자란 채소들은 너와 나를 가릴 것 없이 모두를 위한 반찬이 된다. 가끔씩 고기파티도 연다. 원룸에서 지낼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즐거움이다.
청년 1인 가구 주거난을 해결하는 사회주택, ‘공家 프로젝트’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증산동 집은 몇 해 전만 해도 방치된 낡은 빈집이었다. 이 집에 새로운 생명을 불러 넣은 건 도시재생 전문 사회적기업 (주)두꺼비하우징이다.
김미정 두꺼비하우징 대표는 “빈집을 고쳐 공동의 주택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공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공가 프로젝트란 빈집을 발굴해 집주인과 임대계약을 맺어 리모델링한 뒤 1인 가구 청년들과 주거 취약계층에게 저렴한 가격에 재임대하는 사업이다. 입주자들은 시세에 비해 70~80%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집주인과 계약이 만료되기 전까지 재연장이 가능해 이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 보증금은 평균 400만 원 선, 월세는 30~48만 원 선이다.
공가 프로젝트는 증산동을 시작으로 3년 사이에 성북구와 성동구 등 10곳으로 확장됐다. 빈집을 리모델링한 공유 주택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 1인 가구의 주거난을 해결하는 사회주택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개발 전문가에서 도시재생 전문가로 변신한 사연
김 대표는 1990년대 한창 부동산 개발 붐이 일었을 때 재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건설업체에서 일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모습을 봤어요. 돈은 엉뚱한 사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는 대안 주택을 꿈꾸는 사람들과 모여 2008년부터 누구나 잘살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뜻을 함께하는 (사)나눔과 미래, (사)녹색연합 등과 힘을 모아 2010년 두꺼비하우징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택 개량사업으로 시작해 에너지 효율 주택 그리고 사회주택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돈이 있든 없든 누구나 좋은 주거환경에서 사는 건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소유권이 없다 해서 쪽방이나 고시원 같은 곳에서 살아선 안 되죠. 햇빛도 들고 바람도 통하고 빗소리도 들리는 건강한 집에 살아야지요. 곰팡이 피고 물새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두꺼비하우징은 비단 외형적인 주거난을 해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오랜 전통과 골목 문화 그리고 사라지는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 목표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맞춤형 거점 공간 제공
두꺼비하우징은 지난달 한 통의 소원 편지를 받았다. 가출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들처럼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는 쉼터 ‘작공(작은공간)’의 장보성 선생님이 보낸 편지다.
유아시절부터 집단생활을 해온 보육원 아이들에게 규칙과 벌점, 상점에서 자유롭게 가족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엄마 무릎베개를 하며 뒹굴기도 하고 TV를 보며 수다를 떨고 밤새 인생 얘기하며 웃고 울 수 있는 공간 말이죠. 이 공간은 아이들의 마음의 멍과 결핍을 치유하는 장이 될 겁니다. 도와주세요.
두꺼비하우징은 갈현동의 공가 7호를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무상 임대해주기로 결정했다. 편지를 보낸 장 선생님은 “1박 2일 프로그램으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일탈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두꺼비하우징이 빌려준 공간에서 그동안 꿈꿔왔던 다양한 일들을 하고 시도해 볼 작정이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비록 엄마, 아빠가 아닐지라도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많다는 걸 말이죠.
동작구에 위치한 공가 3호점은 대학생을 위한 맞춤 주택이다. 동작구는 전국에서 청년 1인 가구의 주거 빈곤율과 최저주거기준 미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손꼽힌다. 노량진의 고시촌 탓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에서 협동조합 5개를 배출한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의 류호근 사무국장과 손잡았다. 숭실대 생협의 도움을 받아 여기에 머무는 숭실대 학생들은 장학금 형식으로 1인당 15만 원의 주거비를 지원받는다. 그 결과 실제 학생들이 내는 임대료는 최저 9만 원으로 낮아졌다.
이 밖에 4호점은 성폭력과 가정 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임대료는 성동구청이 지원한다. 이곳에는 피해 여성을 위한 상담실이 있고 여성 경찰관이 24시간 보호하고 있다.
두꺼비하우징은 오는 8월 공가 11호 개원을 앞두고 있다. 입주자 모집이 끝나면 공가 입주자는 100여 명으로 늘어난다. 이를 계기로 두꺼비하우징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상생의 아름다움을 연주하는 ‘콘체르토’ 프로젝트
김 대표는 입주자 100명과 사회적경제 조직이 힘을 모아 지속 가능한 아름다운 삶의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공사를 하다 보면 1억~2억 원의 큰돈이 들어갑니다. 기왕이면 사회적 경제 조직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힘을 쏟고 싶어요.
그는 진정한 도시 재생은 경제적 재생이 뒷받침됐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고 있다. 한 예로 공가 11호에는 에너지 관련 협동조합이 태양광 패널을 제공한다. 입주자 설명회 때는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와 협업해 선물을 준비 중이다. 반상회 때는 공정무역 커피를 내놓을 계획이다. 두꺼비하우징은 입주자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삶의 변화를 몰고 올 소비문화를 전파한다는 전략이다.
이주여성의 자립을 돕는 오요리아시아 이지혜 대표도 두꺼비하우징과 손잡고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장기 인턴십제도를 운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방에 사는 친구들은 서울에서 직업교육을 받고 싶어 하지만 숙소 문제가 해결 안 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기 인턴십을 수료한 영호(가명·18살)는 올여름이면 오요리아시아에 요리사로 채용된다. 가장 당면한 문제는 집이 없다는 점이다. 18살이 된 영호는 보육원을 나와야 한다. 이 대표는 공가 11호에 입주 신청을 요청하고 임대료를 일부 지원해 영호의 자립을 도울 계획이다.
서로 밀고 당겨주며 힘들 때면 기댈 수 있도록 넓은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들. 그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협연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사뭇 기대가 된다.
출처: 이로운넷 / 필자: 백선기 / 사진: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