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할까?
맛있게 점심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다시 사무실로 가려는 와중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하면 할인을 해 준다는 카페의 현수막이 보인다. 보아하니 몇 무리가 줄을 서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머릿속은 이미 아메리카노의 칼로리가 음료수에 비해 매우 낮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탄산음료 한 잔보다 커피 한 잔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이미 아메리카노 컵을 손에 쥐고 다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한 잔당 1,5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을 생각하며.
이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에도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넛지’가 있다. 오늘 소개할 넛지는 우리가 왜 굳이 필수적으로 마실 필요가 없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게 되는지,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할 예정이다.
점심 먹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네?
우리가 카페를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일까? 아래 통계를 보면 우리가 카페라는 공간을 가는 이유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커피라는 매개를 통해 휴식을 취하고 만남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카페를 가는 더 주된 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30분 이야기하려고 5,000원을 써야 하는 거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커피값뿐 아니라 카페를 이용하는 비용도 함께 수반된다. 가격이 비싸다고 무작정 카페를 비난하는 것은 무지(無知)에 가까운 소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무작정 카페를 비난한다고 해서 그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가 우리의 적이 되어 우리 카페가 흥하지 못하게 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할 법도 한 게, 우리에게 주어진 점심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사람마다 재산과 시간에 대한 인식은 각각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1인당 5,000원짜리 커피를 마음 놓고 주문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5,000원을 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다시 돌아가서, 카페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커피를 더 많이 마시게 하는 것, 그리고 우리 카페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우리의 고객이 되어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를 널리 알리는 것이 당연히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그렇다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두의 품질을 높일 것인가? 매장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할 것인가? 다양한 메뉴를 추가하여 기호를 맞출 것인가?
앞서 이야기한 대책은 매장 전체적인 면에서는 매출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원두의 품질, 다양한 메뉴 등의 해결책은 잘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고객이 직접 원두의 품질에 관심 두고 그것을 확인하지 않는 한 원두의 품질을 직접 인식하긴 힘들고, 다양한 메뉴가 나왔다고 해서 기존에 먹던 메뉴를 바꾸는 모험은 되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식으로 매출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을까?
용기를 바꾸다: 머그잔에서 종이컵으로
카페가 점심 시간대의 매출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용기’를 바꾸는 것이었다. 카페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가는 목적 자체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휴식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점이었다. 즉 방문의 목적이 다른 요식업과 달리 음식 자체의 향유보다 음식을 매개로 다른 욕구를 충족하려고 하는 데 있다.
매출을 높이고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선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돈이 없거나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을 공략해야 했다. 그들은 머그잔에 소중한 커피를 주는 기존의 서비스 대신 빠르고 정확하고 저렴한 가격의 상징인 종이컵과 종이 받침대, 플라스틱 홀더를 비치했다. 머그잔과 달리 자신이 설거지할 필요도 없고, 쓰레기 처리도 카페가 아닌 커피 구매자의 사무실로 넘겨 버릴 수 있었다. 일석이조였다.
종이컵에 나온 커피 한 잔이 머그잔에 담긴 커피 한 잔보다 분위기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종이컵은 일회용 제품이다. 하얀 종이 위 코팅된 동그란 컵에 담긴 커피 한 잔을 음미하기엔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더 쉽게 예를 들자면 술잔에 와인을 마시는 것과 종이컵에 와인을 마시는 것만큼 다른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컵 하나를 바꿈으로써, 커피라는 음료에 대한 인식을 적어도 구매과정에서는 ‘빠르게 살 수 있는 것’으로 바꿔 버린 것은 의미 있는 넛지라는 점이다.
테이크아웃 할인제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또한 카페 점주들이 택한 넛지는 바로 ‘테이크아웃 할인제도’이다. 커피의 질과 매장의 디자인을 바꾸지 않아도 할인정책 하나로 커피 구매를 유도한 하나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효과적인 테이크아웃 할인제도를 위해 할인을 하는 특정한 ‘시간’을 명시했다.
왜냐고? 온종일 할인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제한 시간을 주는 것이 상대적으로 구매 행동을 촉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제한시간은 ‘희소성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며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이를 충족할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에 욕망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 자연스레 그 물건이 특별해지는 상황을 언급한다.
14:30까지 음료 할인 시간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전에 음료를 사기 위해 줄 서거나 주문할 것이다. 그런데 가장 좋은 선택은 그 유혹을 참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합리적이다. 원래 커피는 우리가 사려고 했던 것이 아니지 않은가!
희소성의 원칙, 즉 제한시간은 이렇게 사람들의 구매 행동을 촉발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기업 현장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전략이다. 테이크아웃 할인 제도에는 특정한 시간이 있다. 사람들에게 똑같은 커피에 대해 희소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똑같은 커피에 ‘잘 샀네’ ‘못 샀네’ 등을 언급하며 우리의 구매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커피를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오후 한 잔의 여유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넛지들을 알고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