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인용하면서 주장하는 글 쓰는 걸 싫어하지만 이 말 만큼은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맹자의 진심 하편 37장의 내용이다.
만장이 맹자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 내 집안에 들어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그 오직 향원(鄕原)뿐이다. 이 향원은 덕(德)을 해친다’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을 향원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 말이 행동을 돌보지 않고 행동이 말을 돌보지 않으면서도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 를 뇌인다. ‘하는 짓이 어째서 그다지 쌀쌀하고 친근할 수 없는가? 세상에 났으면 이 세상에 맞게 살면 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만 하면 되는 것을’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속생각을 숨기고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바로 향원이다.”
만장이 말했다. “한 고을 사람이 모두 품성 좋은 사람(原人)이라 일컬으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없거늘, 공자께서 ‘덕의 적’이라 하심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비난하려 해도 꼬집어 지적할 만한 것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것이 없다. 흐름에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합류하며, 거함에 충신(忠信)한 듯하며, 행함이 청렴결백한듯하여 뭇 사람들이 좋아하고 자기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는데, 이런 사람과 요순(堯舜)의 도(道)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덕의 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호박같이 둥근 세상 좋은 말만 하며 두루두루 잘 사는 사람이 오히려 악인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악인은 그 악을 들어 비판하고 끌어내릴 수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딱히 비판할 거리도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그렇다고 뭔가 뚜렷하게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입으로는 온갖 폼나는 말을 한다. 진심으로 올바름을 위해 나서는 사람을 오히려 갈등이나 일으키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전교조가 이 모양이 된 원인도 바로 그들 향원들에게 있다. 물론 나는 현재 집행부의 단무지 정책, 그리고 소수 좌파 운동권의 음모가적 운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 단무지 정책을 마음껏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그렇게 해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잘못된 정책을 펼 때마다 조합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고 탈퇴자가 줄을 이으면 아마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그 강경파 집단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당신들은 무엇을 했는가? 술자리나 친목 모임에서만 그 집단을 비판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쉬쉬하던, 비판도 하지 않고 탈퇴도 하지 않고 강경파로부터 조합을 되찾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조직을 세우는 것도 아니면서, 다만 미련만 남아 조합비를 내면서 그들의 자금을 대주던 당신들 말이다.
물론 당신들은 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착함은 군자의 착함이 아니라 향원의 착함이다. 당신들이 바로 오늘 이 참담한 지경을 만든 범인이다.
원문: 권재원-부정변증법의 교육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