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세상을 향한 첫걸음
매미 소리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한여름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강렬한 햇빛 때문에 좀처럼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다 드디어 높이 솟구친 하늘을 마주하면 무언가 가슴이 콕 막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떠올려본다.
한여름에 더위를 먹어서 하는 쓸데없는 고민이 아니다. 나는 언제고 몇 번이나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20년을 넘게 걸어왔다. 이제는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살면서 언제나 마주하게 되는 정체성의 질문은 쉽게 답이 찾아지지 않는다. 우리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내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우리가 평소 익숙한 곳에서 던지는 질문은 늘 익숙한 답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익숙한 답에 우리는 왠지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앞에 주어진 익숙한 정답을 마주 보며 ‘정말 이게 정답일까?’는 의심을 가슴 한 쪽에 품게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정말 고르고 싶은 정답은 뭐지?‘ ‘내가 찾고자 했던 정답과 눈 앞에 놓인 정답 중 무엇이 거짓이고 진짜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삶은 끝없는 질문의 연속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익숙한 정답이 아니라, 때로는 낯선 정답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난다는 말은 말 그대로 비행기를 타거나 기차를 타거나 배를 타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여행은 발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바로, 책 읽기.
책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새로운 눈’
책을 통해서 우리는 가보지 못한 세상을 둘러볼 수도 있고,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간혹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만큼 세상이 있다는 말도 들을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야기도 누군가는 절대로 만나보지 못했을 세상이다. 책은 이러한 세상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익숙한 곳에서 듣고 볼 수 있는 세상은 한정되어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그런 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아는 것만 아는 법이다. 우리가 평소 TV로 시청하는 퀴즈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익숙한 문제보다 모르는 문제가 더 많다. 심지어 우리말 퀴즈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모르는 말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많은 사람을 만나보라는 것은 만나는 사람만큼의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닮았다고 하는 가족도 분명히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조차 우리가 모르는 세상을 살고 있기 마련이다.
오늘 당신은 지금 어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크기가 바로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남들처럼 과감히 배낭 한 개만 짊어지고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역시 책을 읽는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시야를 더욱 넓힐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책을 통해서 내가 모르는 세상을 알아가는 일이 좋았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읽은 여행 에세이를 통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가슴 한구석에 ‘언젠가 미국을 직접 발로 다녀보고 싶다.’는 꿈도 품게 되었다. 단순해도 굉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책에서 읽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가슴을 뛰게 한다. 때때로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고백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우리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말에 힘을 얻기도 한다. 책은 단순히 우리가 하늘이 넓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푸르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괴로워하면서 발버둥 치며 살 수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은 나의 고통은 모른 채 행복하게 산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세계는 세계의 아주 사소한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누구나 아픔을 겪기 마련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읽은 책의 제목 중에 『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들』이라는 제목이 있다. 그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때로는 아픈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을 늘려나간다. 그러나 책이라는 건 아픈 경험 없이 우리가 절대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아갈 수 있다.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나는 책을 통해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책은 내가 드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날개가 되었다. 나는 모두가 이 날개의 소중함을 알고, 모두가 날개를 자신의 날개를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책을 읽고 쓴 글만 순수하게 750여 편이 넘었다.
글을 쓰는 일에 개인적인 재미와 목적도 있지만, 역시 좋은 책을 다른 사람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다. 부디 이 작은 글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책을 좋아하고, 책이 서투른 사람도 책을 다시 들어서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나는 기쁠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과 같은 레벨이 아닙니다(역시 살아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죽은 지식의 집적을 말합니다. 대형 대학 강의실에서 열리는 지루한 개론 강의를 떠올려 주십시오).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사람은 발견을 합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결국은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가능해지지요.
– 『읽는 인간』 p. 50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