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30일 자정까지 일반에 공개된 정보를 기준으로 작성된 문답입니다.
Q.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립니까.
A. 통진당 비례대표 현역 의원 이석기가 참여한 비선조직이 “북한과 전쟁나면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하자”고 계획을 세웠다는 혐의. 국정원은 04년부터 혐의를 뒀고, 10년부터 본격 수사했고(영장에 의거한 감청 포함), 이제 공개적으로 터트려 압수수색 들어가고, 곧 검찰이 공소유지 할거고, 법원에서 재판 하겠지. 적용법조는 형법상 내란음모죄와 국보법과… 뭐 그런 것들.
Q. 결론부터. 간첩단 적발인 겁니까 공안정국 시작인 겁니까?
A. 간첩단이냐 하는 문제… 사실 지금 문제되는 ‘경기동부’,즉 NL주사파계는 자생적 남한 주체사상 신봉자들이라서, 북한정권의 사주로 못박기는 힘들다. 물론 그쪽과 접촉을 해서 뭔가 넘겨주었을지도 모르지만. 공안정국 시작인가 하는 문제는… 내란음모죄라는 가장 큼직한 혐의로 자신있게 걸었으니, 그에 합당한 범죄가 실행되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공안정국 조성을 노렸다고 비판받을 만하겠다.
Q. 왜 지금이죠?
A. 그러게. 자료를 상당히 오랜 기간 모아왔고, 그 모임에서 내일 당장 게릴라전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즉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카드였는데 지금 뽑은 셈. 시나리오는 아래와 같이 나오겠다.
시나리오A: 국정원이 댓글여론공작 사건으로 한창 개혁의 대상으로 압박받는 와중, 국내 임무의 정당성과 존재감을 설파하기 위해 지금 꺼내듬.
시나리오B: 우리는 알지못할 무언가로, 증거가 무효화될만한 위험이 임박했던 것.
시나리오C: 촛불시위로 정권의 위협을 느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엄청난 음모.
A는 개연성 있고, B는 알 길 없고, C는 황당한 얘기고. 셋 중 뭐가 정답이냐고? 국정원이 안알랴줌. (추가설명: 그러니까 뭐든, 이석기 사건을 이해하는 것 자체에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말임.)
Q. 주사파, 경기동부, NL 자꾸 이야기되는데 그게 뭐죠? 계보 읊고 책 한권 쓰고 그러지 말고, 요점만.
A. 사회모순이 넘치는데 권력층의 횡포가 공고하니 운동을 통해 뜯어고쳐야겠다고 해보자. 모순이 왜 생겼는지 설명을 해내야 움직일 수 있고, 그게 ‘이념’이다. 그런 여러 이념들 가운데 NL은 외세의 부당한 개입으로 모순들이 생겨났고 민족의 해방, 즉 자주성 확립을 통해 그걸 해소하는 걸 골자로 한다.
그런데 안그래도 민족 개념으로 접근하다보니(그 자체가 이미 적잖이 우파적 요소가 있음은 차치하고서라도) 북한에 대해 신기할 정도로 온정적이고, 그 중 과격한 일파들은 하필 북한에서 써먹던 ‘주체사상’과 이념의 삘이 통해서 그걸 배워가며 자생적 남한주사파로 자리매김한 거지. 경기동부는 NL계 지역모임인데 강성 주사파 이념으로 무장하고 특히 행동력이 과격해서(예: 대놓고 경선 부정) 문제가 된 동네다.
Q. 이석기 “동네 친구들 모임”이 한 모의의 내용이 얼마나 심각한 건가요?
A. 한국일보가 입수해 공개한 회의 녹취록으로 판단하자면, ‘군자산의 약속’ 수준으로 워 게임 돌려본 것. 한마디로 망상이 쩔어. 현실감각 없이 스케일만 큰 중2병이기 때문에 이들의 내란을 걱정하는 것은 여력 낭비다. 그보다는 이딴 인간들이 머릿수 꼼수만 부려도 근간이 확 무너져버리기를 반복한 한국사회 진보 정치의 취약성을 한탄하자.
Q. 현실성이 그렇게 부족하면, 왜 문제인가요?
A. 대민 폭력행위에 정치적 신념을 담는 것, 즉 테러 정도는 개조 비비탄 총 들고(장난감이라고 비웃을게 아니다. 약한 공기총 수준까지 만들 수 있다) 정유소 덮치는 것으로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고 또 위협적이다. 물론 국정원이 혐의를 두고 있는 ‘내란’, 즉 국가의 정권을 찬탈해낼 수준이 아니니까 우스워보이는거지… 즉 “내란 모의”라는 어마무시한 명목과 국정원 발표의 노골적인 타이밍을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현역 국회의원이 낀 비선 집단이 그런 활동에 연루되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 책임을 지우는 건 분명 옳다.
Q. 그래도 모의만 했는데…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요?
A. 골방 청년들이 아니라 규모 있는 정당의 현역 국회의원이 연루되어 있다면, 모의대로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그 모의의 방향으로 힘껏 사고를 칠 가능성을 상정해야 한다. “전쟁나면 적군에 붙을꺼얌!” 같은 수준의 인식틀로 테러에 준하는 무력행사를 진지하게 거론하는 내용이라면, 못하게 막기는 해야지. 자유는 자유, 책임은 책임.
Q. 운동에는, 체제 내에 복속되는 것이 아닌 전복도 필요한 것 아닌가요?
A. 회의 내용이 북한이랑 전쟁나면 게릴라전으로 북한정부군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이었잖나. 북한의 군국주의 유사왕조 독재체제를 한반도 전역에 적용하겠다는 것과 전복을 해서라도 유보없이 명백한 사회 진보를 얻어내겠다는 다짐은, 엄청 멀리 떨어져있잖아아!!
Q. 근데 쟤들은 왜 저런걸 하고 있죠? 지난 십수년동안 정식 대중정당에, 의회정치라는 지극히 주류질서적 경로를 선택하고는…
A.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저런 식의 비장한 종교적 결의가 바로 자신들의 조직 내 권력을 만들어낸 단합된 조직력의 비결이라서. 정말 저런 식의 부실한 이상을 진심으로 신봉하고 있기도 하고.
Q. 왜 이런 사고수준의 사람들이 저 정도까지 중심으로 진출할 수 있었는가.
A. 주사NL동네의 조직력이란, 압박수비와 비슷한 것. 전체 판에서의 규모나 영향력이 거대하다기보다, 딱 자기들이 장악할 수 있겠다 싶은 섹터(예: 선거구)에 우루루 이동 집결하여 실체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한편 딱 그 사이즈의 행동력과 머릿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은 멋도 모르고, 혹은 알지만 그래도 좀 통제할 수 있겠지, 하고 안일하게 그 독배를 끌어안는다. 구 민주노동당도, 구 통합진보당도 그렇게 그 동네에게 장악당하고 나머지가 짐 싸들고 나온 바 있잖나.
Q. 그럼 왜 진보 정치는 그런 문제 많은 주사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나요?
A. 쉽지가 않다.
첫째, 주사파도 주사파지만, 앞서 한 얘기처럼 주사파의 동원력에 손을 벌린 안일한 이들의 ‘전략적’ 선택, 혹은 주사파라도 끌어안지 않으면 아예 망하는 여타 진보정치 계파나 영역들의 취약성 문제들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정책을 열심히 만들어봤자 동원력이 부족하면 말짱 도루묵이거든, 노회찬 서울시장 출마처럼…
즉 적지 않은 진보정치 계파와 영역들이, 지금껏 좋든 싫든 주사파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공범이었다. 특히 그들에 대한 지지를 대중들에게 독려한 글쟁이들도 잘못했다. 손씻고 청산하기 이전에, 반성과 역량 강화할 구석만도 코가 석 자다.
둘째, ‘청산’이라는 게 그냥 모아놓고 혼낸다고 되는게 아니다. 얘네의 사상을 불법으로 규정하는건 자유권과 충돌하고, 그 사상에 입각한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건 예상 피해에 입각한 법률의 영역이다. 정치권이 할 수 있는 건 그 사상으로 움직이는 이들과 결별하는 것뿐인데, 그건 이미 해봤는데 뭐 그냥 인지도만 폭망하더라. 진보신당 봤잖나. 그들이 여전히 진보라는 브랜드로 인지되는 한, 대중들에게 진보진영은 뭘 해도 그런 사상/행위를 청산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는 거지. 즉 주사파 애들이 진보를 간판으로 걸고 이딴 짓거리 하는 것에 대해, “진보는 저 모양이다”라는 인식을 “저런건 진보도 아니다”라고 바꿔내는 것이 숙제다. 당연히 끝장나게 어렵지.
Q. 그래서 정치권은 NL에게 어떤 벌을 줄 수 있다는 거죠?
A. 초당적 협력으로 국회의원 제명부터 시작해야지. 그리고 통진당 차원에서 근본적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의회/행정에서는 모든 정치적 협력을 거부한다든가. 시민들은 다음 선거부터 그 동네를 계속 폭망시켜야 하고. 반면 내란음모죄는 과잉이라고 보는 것이, 공안정국 조성 위험에 대한 경계 같은 것과는 별개로, 판례로 볼 때 실현력을 갖추지 않으면 유죄가 나오기 어렵더라. 다만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말처럼, “통합진보당에서 그러한 문제로 촛불집회를 한다고 하면 저부터 가지 않아야 한다.”
Q. 그런데 이 건으로 묻히고 있는 원래 큰 건들은 어쩔?
A. 국정원의 온라인 여론공작 건과, 이석기와 경기동부의 NL 중2병질 건은 두 가지 별개 사안임을 온 세상에 계속 설파하시길. 어렵다는건 아는데, 그래도 그렇게 안 하면 어쩌겠다고. 따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