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언론사 기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기자 지망생 청년들을 만날 일이 많았다. 그들은 스터디 모임을 하며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언론사 시험을 준비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평생 동안 가장 지속적으로 했던 일은 ‘글쓰기’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문예반 활동, PC통신과 인터넷에서 논객(?) 활동, 논술 학원 강사, 의원실에서 약 200번에 걸친 정책 보도자료와 축사 쓰기, 그리고 페이스북 등에 칼럼처럼 쓴 글도 상당량이다.
나는 ‘글쓰기’ 자체를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생각, ‘남들과 다른’ 글쓰기를 매우 좋아하는 인간으로서, 언론사 시험용 글쓰기를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언론사 시험용 글쓰기’를 준비하는 기자 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성하는 글이다. 동시에 비록 기자 지망생은 아니라고 할지언정 ‘논리적, 창의적 글쓰기’를 원하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언론사 시험용 글쓰기 – 논리적이되, 창의적인 글쓰기
한국 시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 첫째,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다. 대학입시와 공무원 시험이 대표적이다.
- 둘째, ‘누군가를 뽑기 위한’ 시험이다. 언론사의 글쓰기 시험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언론사가 ‘누군가를 뽑기 위해’ 시험을 본다면, 그 ‘누군가’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언론계 종사자 혹은 언론계 경영진은 아니지만, 상식 선에서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하다. 기자라는 직업에 적합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뽑고 싶을 것이다. 그럼, 그게 뭘까?
- 육하원칙에 기반한, 쉬운 글쓰기를 하되, 논지(論旨)가 선명한 글
- 남들이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창의적인 사고력과 창의적인 글쓰기를 원할 것이다.
즉, ①쉽고, 선명한 글쓰기 + ②창의적인 생각(+창의적인 글)이다. 이중에서 ①번 쉬운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②번 창의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다.
2. 논리적 글쓰기와 창의적 글쓰기의 공통점
그런데, 쉽고 선명한 글쓰기와 창의적인 글쓰기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더 많은 반론(反論)과의 논리적 투쟁을 거친, 단련된 논리 + 단련된 글’이라는 점이다. ‘창의적인’ 생각은 ‘엉뚱한’ 생각과 다르다. 창의적인 생각과 창의적인 글쓰기란,
- 익숙한 개념을 더 많이 인수분해•구조분해 해서
- 개념의 미시적 본질을 더 깊이 탐구하고
- 개념의 논리적 재조합(=새로운 융복합)을 해본 글이다.
그럼 논리적인 글쓰기와 창의적인 글쓰기가 만나는 지점은 ‘남들이 아직 검토해보지 못한 논리도 충분히 검토해본 글’이다. 이런 접근을 언론사 시험용 글쓰기의 스터디 방법론에 적극 활용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다양한 논점’의 도출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역발상의 시작이다.
- 둘째, 다양한 논점별로 다양한 ‘논거’를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 셋째, 이들 논점 전부, 논거 전부를 논리적으로 검토 및 격파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결국 더 많은 논점과 더 많은 반론을 검토하고, 논점 및 반론을 검토-수용-재반박하는 과정을 통해서 제련(製鍊)된 생각과 글쓰기가 논리적이되 창의적인 글로 나오게 된다.
3. 논리적이되 창의적인 글쓰기의 사례: ‘문자폭탄’이라는 논제의 경우
언론사 시험용 논제를 염두에 두고 사례를 들어보자. ‘문자폭탄’이라는 논제(論題)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먼저 문자폭탄이라는 논제를 통해 ‘논점’을 최대한 뽑아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가 문자를 보내는 경우를 가정했을 때) 논점을 뽑는 방법은,
- 행위자별 구분
- 행동 양상별 구분
- 의도-결과별 구분
을 종축(縱軸)과 횡축(橫軸)으로 섞어보면 된다.
행위자별 구분
- 문자폭탄을 보내는 국민(=문재인 정부 지지자)
- 문자폭탄을 받는 정치인
- 문자폭탄을 받는 언론사(+기자)
- 문자폭탄을 통해 옹호하려는 정치인(=문재인 대통령=민주당)
- 문자폭탄 행위를 지켜보는 관찰자적 국민
행동 양상별 구분
- 특정 정책-이슈에 대한 찬반 의견개진
- 반대 의견 개진 + 낙선 압박
- 혐오와 조롱, 욕설, 신상털기와 가족 공격
의도-결과별 구분
- 좋은 의도 + 좋은 결과의 조합 가능성
- 좋은 의도 + 나쁜 결과의 조합 가능성
- 나쁜 의도 + 좋은 결과의 조합 가능성
- 나쁜 의도 + 나쁜 결과의 조합 가능성
위와 같이 행위자별 구분, 행동 양상별 구분, 의도-결과별 구분으로 할 경우, 5×3×4=60가지의 논리적 경우의 수, 논리 조합이 나온다. 이럴 경우 ‘긍정적 문자폭탄’이 있고 ‘해선 안 되는 부정적 문자폭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도움이 되는 문자폭탄’이 있고, 초기 의도가 무엇이든 ‘문재인 정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문자폭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자폭탄’이라는 주제로 만약 내가 글을 쓴다면 ‘문자폭탄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방해한다>라는 논지(論旨)로 쓸 것 같다. 이 경우는 2번), 3번), 4번), 5번) × 다) × B)의 논리조합에 해당한다. 흔히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않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는 표현이 있다. 역발상=의외성=파격적 주장을 의미한다. 인간은 원래 역발상-의외성이 있을 때, 더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의외성-역발상적인 논리는 그만큼 더 어렵다.
문자폭탄 이슈가 논제로 나왔을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자폭탄에 대해 찬성/반대 입장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에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문자폭탄이,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롭다’는 논리 전개는 ‘역발상적인’ 논리전개에 속할 것이다(물론, 이 논리의 전제는 ‘모든 인간은 틀릴 수 있다’는 인식론적인 가정이다. 이 가정은 부정하기 어려운 보편적 가정에 속한다).
논리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검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와 같이 행위자별×행동 양상별×의도·결과별로 구분해보면 60가지 논리적 경우의 수가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 각각 찬반 논거를 검토 및 재반박하는 과정을 거친 사람은 자동적으로 논리적이되 동시에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원래 ‘더 창의적인’ 발상의 본질은 (아직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검토해보지 않은) ‘더 논리적인’ 사고를 해본 것을 의미한다.
4. 스터디 방법론: 더 다양한 논점, 더 다양한 논거의 발굴 및 검토
그럼 언론사 글쓰기 시험을 준비하는 스터디 모임이 있을 경우, 효과적인 스터디 방법론은 다음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첫째, ‘다양한 논점 뽑아내기’ 토론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는 곧, 역발상 및 역지사지[易地思之] 훈련이다.)
- 둘째, ‘다양한 주장+논거 뽑아내기’ 토론을 반드시 해야 한다. (필요하면, 검색 및 취재를 해야 한다.)
- 셋째, 논점과 주장+논거를 뽑아냈으면, 반론의 검토 및 재반박하는 논지를 전개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효과적인 반론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한 차원 높은, 상위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야만 가능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컨대 다시 문자폭탄의 사례를 들어보면, 민주주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인지?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의 의미와 한계는 무엇인지? 『자유론』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왜 그토록 ‘다중의 위력’에 문제제기하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려 했는지 등을 검토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논쟁 중 옳은 것과 틀린 것의 대결은 없다. 우리가 현실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논쟁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은 것의 대결만 있다. ‘옳은 것’과 ‘틀린 것’의 대결은 논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옳은 것’과 ‘옳은 것’의 논쟁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 ‘더 상위가치’를 논거로 하위가치를 격파하거나
- 원인-결과체계(=인과관계)와 구분되는 ‘전제조건’의 변화를 논증해서 상대방 주장•논거 체계 전체의 부적합성을 논증하거나
- 상대방의 논거로 상대방의 주장을 격파하는 경우 뿐이다.(=논리의 내적 모순 드러내기)
이렇듯 가치관-세계관-논리적 사고란 결국 가치의 선후경중(先后輕重)을 정립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된다. 만일 언론사 기자 시험을 준비하는 스터디 모임에서 글쓰기 주제 정하기 ⇒ 서로 글 써오기 ⇒ 써온 글, 서로 품평하기만을 한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논리적 글쓰기와 논리적 사고의 전제조건이 되는 다양한 논점 파악, 다양한 주장+논거 파악, 반론의 논쟁적 검토 작업을 소홀하게 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5. 글쓰기 요령 – 논적(論敵)이 있는 글쓰기, 반론의 검토 및 재반론
논리적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적(論敵)이 있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 ‘문자폭탄’의 사례의 경우 논점-논거만 제대로 추려도 ‘긍정적 문자폭탄’과 ‘부정적 문자폭탄’으로 대비되고, (장기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도움이 되는 문자폭탄’과 (장기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해가 되는 문자폭탄’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논리적 대비(對比) 과정을 통해 ‘논적’을 상정할 수 있다. 종합해보면 ‘좋은 글쓰기’는 다음과 같다.
- 남들이 덜 생각해봤을 것 같은 주장(=역발상=중요하지만, 논리적으로 덜 다뤄진 논점)
- 주장, 그리고 특히 논거가 선명한 글 (=반대되는 논적[論敵]이 분명한 글)
- 반론의 검토 및 재반론 (=반론은 논점별로 다루기에, 2개 이상일 수도 있다.)
- 짧은, 단문형 글쓰기 (주어 하나, 서술어 하나)
- 두괄식 글쓰기 (주장 먼저, 논거 나중에)
언론사 시험용 글쓰기를 하는 친구들은 스터디팀에서 서로 돌아가며 체크해봐야 한다. 내 글은 위의 다섯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원문: 최병천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