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교육업에 종사하며 겪은 충격적인 일화 몇 개를 소개해본다.
사례 1.
2005년 첫 직장 생활을 할 때 운이 좋게도 넉넉한 자금을 가진 회사에서 새로운 교육을 탐험하고 실험할 수 있는 TFT팀에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초중생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강의했는데, 대학 논술 붐이 있었던 시기라 초중등 학부모들 중에 앞선 사람들에게는 글쓰기의 중요성이 슬슬 강조되고 있었다.
나와 우리 팀의 지론은 ‘보고 듣고 경험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천문학, 철학, 수학, 국문학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팀을 이뤄 교육 프로그램을 짰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며 당시 시대상과 정치, 문학, 수학을 한 번에 배울 수 있도록 교재를 만들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한주는 실제 현장에 나가서 탐험을 했고, 한 주는 그 내용을 글로 썼다. 글도 논술 글만이 아닌 CF 음악 만들기, 동화책 쓰기 등 형식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 결론 : 모든 결과물들의 목적은 그래서 이걸 들으면 우리 아이가 서울대에 갈 수 있어요?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모든 자료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재가공되고 해석되었다.
그 SKY 타령에 결국 나는 청소년과 대입 시장은 다시는 쳐다보지 않겠노라며 성인 시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대학으로 가니 SKY는 삼성, LG, CJ로 바뀌어 있었다. 결국 같은 구조 속으로 뫼비우스의 띠가 되었다.
사례 2.
대학 진로와 취업 사업이 내가 가장 오래 일한 곳이었는데, 이 분야에서는 좀 더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했다. 우선 학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 아하하하. 리더십, 창의력, 진로 찾기 프로그램 등 정말 훨씬 더 자유로운 프로그래들을 대학과 국가의 자금으로 실행해보았다. 대학 내에서 진행할 수 없던 자유로운 교육들에 대해 공부하고 실험할 수 있었다. 몇몇 도전적인 학교와는 좀 더 혁신적인 프로그램들을 진행했고, 이때 나는 스스로 가장 많이 성장하고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 교육의 목적은 대학 정원 줄이기의 대학 개혁 과제와 맞물렸고, 결국 취업률이 ‘좋은 대학’이 돈을 더 받고 살아남는 구조로 바뀌었다.
- 결론 : 리더십이나 창의력 캠프의 목적은 그래서 이걸 들으면 우리 학생이 삼성, LG에 갈 수 있어요?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모든 교육과정 설계는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어느 날, 학교에서 나를 하루 60만 원에 섭외해 10명의 아이들을 교실에 넣고 자기소개서를 완성 (=대필) 하는 것을 요구하는 교육을 의뢰받았다. 나는 이때 사업을 그만 두기로 강하게 결심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이 대필되어 꼼수로 합격해 면접을 가는 학생들을 양성하는게 교육의 목표입니까아아?
사례 3.
대기업의 창의/리더십 프로그램을 위탁받아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재직하던 회사에서 진행한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여서 전 직원이 다 동원되어 진행한 것이었다. 신입사원 교육이었는데, 해당 년도에 입사한 수천 명의 신입사원들이 우리의 모든 수업을 200명 정도의 단위로 나누어서 들었다. 그 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어느 날 나를 부르더니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 회사 신입에게 가장 불필요한 역량 2가지가 뭔지 알아?”
“뭔데?”
“창의력과 리더십이지. 신입사원이 창의력을 갖고 규정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없고, 신입이 리더십을 갖고 무엇인가를 추진할 수는 없지. 우리 회사에서 가장 불필요한 역량이야. 근데 그걸 교육에 넣는 것은 신입도 창의적이고 리더십 있을 수 있다고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지.”
- 결론 : 기업에서 설계하는 교육들이 정말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 설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심지어 모 강사로부 전해들은 이야기 중 “이 교육을 듣고 우리 직원들이 꿈을 찾아 떠나갈 수 있게 해주심 좋겠어요”라는 목적도 있었다. 정리 해고를 해야 하는데 그전에 알아서 미리 나갈 수 있도록 꿈과 희망에 대한 ‘퇴사 준비’교육을 해달라는 곳도 있다.
공교육은 그 원래의 목적과 방향을 잃었다
이전에 다니던 직장의 상사와 대판 싸운 적이 있다. 교육 프로그램을 물건 팔듯 세일즈하는 그를 보며, 나는 교육은 철학이 담겨 있는데 그걸 이딴 식으로 다루면 되냐고 소리를 지른 뒤 1달 동안 옆 책장에 앉아 말도 한마디 섞지 않았다.
공교육의 심각성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만큼 최악이다. 주변에 사교육에 종사하는 지인들의 말을 들으면 이제 이 양극화는 정말 해결될 수 없는 수준으로 넓어지고 있다. 부모의 소득과 사교육, 그리고 좋은 대학으로 이어져 성공에 이르는 공식은 이제 너무도 공고히 되어가고 있다. 나의 작은 발악과 상관없이 공교육과 대학의 교육 시스템은 이미 상품이 되어 가진 자들의 자녀들을 더 가진 자들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어학연수, 교환 학생의 외국 경험을 비롯하여 창업 등의 리스크 있는 경험들 또한 가계 소득과 어떤 대학의 지원 정책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대기업의 자기소개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을 우대하고 선호하는 항목들로 채워져 있다. 토익이나 성적 등의 스펙이 문제가 되자 이력서는 간소해졌고 자기소개서는 더욱 길고 쓰기 어려워졌다. 주관식으로 평가를 하다 보니 개개인의 삶의 경험이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항목으로 바뀌었다. 열정이나 도전의 항목은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항목일 수뿐이 없다.
내가 교육업에 일하며 느낀 가장 큰 좌절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교육 시스템은 이를 통해 교육을 받는 수혜자, 학습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도가 좋은 사람들일지라도 일단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게 되면 본인이 가진 좋은 의도 100% 중 많은 부분은 누락되고 없어진다.
하지만, 누군가는 움직인다
2015년 핀란드의 슬러쉬를 방문했을 때, 미네르바 스쿨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edX나 코세라 등의 MOOC교육이 한창 뜨면서 문제 해결에 중심을 맞추고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 중 누군가는 다른 교육의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미네르바 스쿨의 발표자는 물었다.
만약 옥스퍼드나 예일대가 오늘날 대학을 (새롭게/처음부터) 만든다면 어떤 모습이겠는가?
이 말에는 지금 대학이라는 교육 기관이 그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점과, 지금 만든다면 완전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홀딱 새로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처럼 혁신하지 못하는 이유랑 비슷할 것이다. 이미 이 산업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안에 있기 때문에 이 모두를 빠른 시간에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은 그런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미네르바 대학은 학기마다 7개국을 돌며 현장 학습을 하는 온라인 대학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참고하여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서로 손 잡고 에너지를 교환하며 수업을 하지 않는 이상 꼭 교육을 (일방적 강의인 경우) 현장에 가서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네르바 스쿨도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으나 여러 프로젝트들은 외부에서 여러 사람과 협업으로 진행한다. IT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그간 교육이 가진 불평등이나 구조를 많이 해결해주는 실마리를 주었다. 특히 개인화된 교육 (personalized learning) 부분에서는 IT가 가지는 혁신은 매우 크다.
그간 우리는 (꽤 무식하고 폭력적이게도) 나이에 따라 학년을 배정하고 개개인의 성취도와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업을 구성했다. 사람이 각기 다른 배움의 속도와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기관과 교사의 편의대로 배정하고 편성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공교육 안에서 좌절을 느끼거나 이탈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뿐이 없었다.
무엇을 배워야 하느냐, 이 문제를 나이와 국가를 기준으로 규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초등학생조차 MOOC를 통해 스탠퍼드대학에서 물리학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전 세계에서 누군가는 이런 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그간의 교육 체계에 작은 틈을 주고 있다. MOOC에 강의를 올리고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는 교수님. IT회사에서 만든 학교들, 이외의 다양한 대한 교육과 교육 스타트업들은 기존의 교육에 물음표를 던진다. 목적과 그 방법이 이 시대에 적합한가에 대한 고민을 이제는 여러 사람들이 해야 한다.
수많은 수포자를 낳은 우리 교육 체계에서 수학 교육을 IT기술을 기반으로 개인화한 노리의 교육 혁신도 학습자 개인에게 포커스를 맞춘 좋은 예시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제까지 누구에게 권한이 있었던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사나 학교가 시스템을 따라 움직였는지 아니면 학습자를 위해 움직였는가?
노리 김서준 부사장님의 강연
배움의 즐거움을 다시 찾으러
처음 튜터링에 합류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위에서 이야기한 울분 때문이었다. 엄청난 과외비를 들여 대학을 간 아이들은 결국 또 다른 사교육을 받으며 스펙을 쌓으며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렇게 몇 년을 대기업을 다니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며’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다시 상담을 온다.
미래의 더 나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쥐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무엇이 되고 싶느냐는 질문, 너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질문, 무엇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은 그런 질문을 교육에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은 수능 시험 때문에 양보해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전공은 수능 점수 때문에 선택하지 못하며 기업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합격시켜주는 곳이 적성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 세대의 청소년/ 청년들은 선택을 강요당했다. 돈을 많이 벌면, 간판이 유명한 (명예) 직장에 입사하면, 더 높은 자리 (권력)로 승진하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공식을 쓰다 보니 왜 배우는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2013년 TED에 나와서 본인은 스타벅스에서 본인 스스로 짠 코스로 공부를 하며, 오후에는 연극이나 수제 스키를 만드는 샵에서 일을 하는 이 꼬맹이는 자신의 장래희망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학교의 시스템은 더 이상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를 양성하는 교육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근면 성실한 ‘노동’들은 인간이 하지 않도록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교육을 스타트업으로 선택했다면 그 창업자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이다. 사람이 왜 배우는지, 이 배움이 사람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이 사업을 해야 한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인 이 소년의 강의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큰 울림을 주는 강의이다. 유난히 보수적이고 벽이 많은 우리나라의 교육산업에서 교육 스타트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시도와 학습자 중심의 생각들은 분명 우리의 교육 시스템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인가를 새로 배우느라 설레였던 시간이 있었던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즐거웠던 시간이 있었던가? 모든 배움은 앞으로의 기대와 행복이 함께 해야 한다. 학교에 가는 것, 대학에서 전공 수업을 듣는 것, 이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