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시즌이라 TV 토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요. 하지만 의외로 TV 토론의 결과는 지지율에 생각보다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답변의 내용이나 토론 태도가 별로였던 후보가 분명 있었는데 지지율은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죠. 왜 그럴까요?
혹시 토론의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닐까요? 즉 사람들은 TV 토론을 볼 때 토론의 ‘내용’ 말고 ‘다른 걸’ 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봅니다. 실제 TV 토론 장면에서 후보자가……
ㄱ) 보건 관련 정책에 대한 질문을 듣고 이에 대해 답변을 하는 장면
ㄴ) 불법 약물 통제 관련 정책에 대한 질문을 듣고 이에 대해 답변하는 장면
….. 을 추출합니다. 그리고는 둘을 섞습니다. (뿅!) 그러면……
ㄱ) 보건 정책 질문에 대해 질문받고 불법 약물 통제에 대한 답변하는 장면
ㄴ) 불법 약물 통제 정책에 대해 질문받고 보건 정책에 대해 답변하는 장면
이렇게 두 세트가 나오겠지요.
이런 식으로 후보자가 질문에 전혀 관계없는 답변을 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눈치채는지 살펴봅니다.
사람들에게 ‘이 후보가 어떤 질문에 대해 답한 것인지 질문을 기억하는가?’라고 묻고 해당 후보가 ‘얼마나 신뢰할 만 하다고 생각되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많은 사람이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을 했다’는 사실도 잘 눈치채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TV 토론에서의 웬만한 얼버무리기나 말 바꾸기는 엔간히 집중하거나 적으면서 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역시 또 놀라운 것은 (눈치채지 못했으니 당연하겠지만) 질문에 완전히 엉뚱한 답변을 한 후보와 제대로 된 답변을 한 후보 사이에 신뢰도 차이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도 않고 말을 돌려버리든 그렇지 않든 똑같은 수준의 신뢰를 얻는다니… 이쯤 되니 후보자들이 열심히 토론하면 뭐하나 라는 생각마저 드네요.
물론 엄청나게 관계 없는 답변을 할 때에는 알아차립니다. 예컨대 테러 관련 정책을 물었는데 여성 정책에 대해 답변했다거나 하는 경우에 말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게 아닐 경우에는 눈치채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전략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도 어렵지는 않겠죠. 실제로 미국 부시 대통령의 경우 토론에서 불리할 것 같을 때 말 돌리기 수법을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말돌리기 전법의 성공 사례가 바로 부시 대통령이라는 말도…)
사회자 : 경제정책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부시 : 경제정책 매우 중요합니다.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거보다도 교육 문제가 시급합니다. 교육이 어쩌고저쩌고 교육교육… Blah… blah… blah…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말 돌리기를 잘 캐치하지 못하는 걸까요?
연구자들은 우리의 주의가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점, 즉 모든 정보에 일일이 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는 점과, 후보들을 볼 때 이 사람의 ‘정책’, ‘ 논리성’ 같은 걸 일일이 따지기 전에 ‘이 사람은 호감형인가?’, ‘이 사람은 착할 것 같은가?’, ‘믿을만한가?’와 같은 ‘사회적인 면’들을 우선으로 본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듭니다.
주의가 한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인지적 자원을 후보의 사회적인 특성들을 캐치하는 데 쏟다 보니 말의 논리성이나 정책의 우수성 같은 것들은 ‘일반적인 수준 (대체로 좋다 / 나쁘다)’ 정도로만 판단하고 아주 구체적인 내용들(지금 말을 돌렸어!)은 놓치기 십상이라는 것이지요. 후 ( ‘ – ‘) …
뭐 결론은 토론 내용에 좀 더 집중해서 꼼꼼히 보는 수밖에.. 라는 게 될까요? 적어도 TV토론의 이러한 생리를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득을 보려는 후보들이 정말 득을 보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
이 사실을 밝혀낸 연구자(Todd Rogers)는 “Politicians, are exploiting our cognitive limitation without punishment. (정치인들은 우리의 인지적 한계를 이용하고 있어. 벌도 받지 않고 말이지)” 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네요.
그렇습니다 뭔가 ‘질 수 없어!’라는 청춘만화에나 나올법한 마음을 품어야 할 대목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TV 토론 ㅍㅍㅅㅊㅈ(폭풍시청자)가 되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