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연일 미사일로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그것이 무력시위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일종의 군비경쟁이라는 사실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사일이 무슨 21세기에 나타난 신무기도 아니고 현대에 와서는 돈을 들이기만 하면 당연히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기억한 다음 한반도의 현실을 보고 있으면 몰상식도 이런 몰상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몰상식을 ‘설명’해서 이것이 몰상식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제대로 된 설명일까 아니면 억지로 만든 변명일까?
내가 지적하는 몰상식이란 이것이다. 한국과 북한의 경제 규모를 보았을 때 과연 북한이 군비경쟁에 나서는 일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 물론 추정하는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는 하겠지만, 북한과 한국의 경제 규모는 30배 이상이라는 말이 많다. 만약 누군가가 북한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건 훨씬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나의 지적을 보고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즉각 무수한 생각을 머리에 떠올릴 분들이 있을 것이다. 전쟁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던가, 북한이 생각보다 무서운 대단한 나라라던가, 역사가 이런 현실을 만들었다던가, 핵무기를 일단 북한이 가진 이상 돈으로 전쟁이 되는 게 아니라던가, 한반도 정세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든가 하는 그런 모든 설명은 모두 진실의 한 조각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들에 빠지지 말고 내가 지적하는 말의 진실성도 천천히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국의 1년 국방비가 37조다. 경제 규모가 30배가 차이 나는 북한이 미국은 물론 한국을 무력으로 위협한다는 것은 제주도가 독립을 선언한 후 본토를 무력 정복하겠다는 것처럼 우습고 무리한 일이다. 다른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제력차이가 10년 20년이 유지되는 가운데 한국이 여전히 북한에게 무력으로 공포를 느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을 너무 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그간 들어간 수백조의 돈은 다 어디에 있는가?
혹시 이런 몰상식의 배후에는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여 강조하고 자주국방을 도외시한 채 미국의 무기를 사는데 계속 돈을 쓰려는 사람들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 아닐까? 무기를 사 오던 무기를 개발하던 현대차와 삼성전자를 가지고 엄청난 자본을 가진 남한이 왜 이렇게 무력이 약한가? 미사일이건 핵무기건 한우리도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다. 한국이 약한 게 아니라 한국은 고의로 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일전에 나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현대전은 무엇보다 정부가 우선인데 한국군은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는 모두 미국에 의존해 버린다. 정보가 중요하고 그 부분이 취약하다면 당연히 거기에 돈을 써서 그것을 보강해야 할 것이다. 위성이나 정보취득용 비행기나 레이더에 말이다. 그런데 엄청난 국방비는 그 분야로 균형 있게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군사전문가가 아니라서 이런 말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나의 의구심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남북한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다른 주변국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시하고 싶어도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 무엇보다 미국의 입장을 무시할 힘은 우리에게 없다. 그래도 논리에는 주가 있고 종이 있다. 우리의 문제를 일단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서 주변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옳지 주변이 주가 되고 우리 문제를 우리가 관여도 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로 사고한다면 이것은 한참 틀려있다.
우리는 북한 문제를 기본적으로 우리 힘으로 풀어갈 우리 문제로 직면해야 한다. 남의 협조를 구하는 일은 이차적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한국이 북한보다 경제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커지게 된 것이 이미 한참인데 우리의 군대와 우리의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북한을 무시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위협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위협이 있다 아니다의 흑백논리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물을 마시고 식중독으로 죽을 확률은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런 확률은 존재한다. 따라서 그런 위협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모든 생활비를 그것을 방지하는 데 쓴다면 당신은 다른 이유로 죽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총 한자루로 주변 사람을 위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위험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총 한자루로 정부를 전복할 것처럼 겁을 낸다면 과장이 아닌가? 북한은 결코 총 한자루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핵을 가졌건 가지지 못했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상대도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와 의지 그리고 태도에 있다. 문제를 외면하는 태도가 문제를 키우고 있다.
북한 문제만 나오면 우리는 너무 겁을 낸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이야기들은 종종 지나치게 과장되고 비약이 넘친다. 북한과 제대로 소통도 못 하면서 대뜸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한 예고 북한과 총질 몇 번 하면 금방 한반도에 전면전이 일어나서 한국 사람이 다 죽을 것처럼 공포에 떠는 것도 또 다른 예다.
북한이 미사일 테스트 한번 하면 한국이 공포로 떨어야 하는가? 또 자유로이 왕래도 제대로 못 하는 북한에 대해 말하면서 북한 자원이 얼마라는 둥 계산기부터 두들기는 사람은 또 뭔가. 이걸 연애에 비유하자면 상대 이성과 고작 인사 정도만 한 후에 우리 애는 얼마나 낳을 것이냐고 말한다던가 상대방이 기분 나쁘다고 쏘아보면 마치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겠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한국전쟁의 기억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반세기가 넘게 시간이 흘렀다. 전쟁 때문이라고 해도 너무 심하다. 반공 논쟁 따위 하고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는 것 같다. 시간이 반세기 전에 멈춰있다는 말인가?
확실히 북한은 미치광이요 깡패 같은 면이 있다. 하지만 깡패가 너 죽을래 그랬다고 해서 혼비백산하여 다 도망가거나 그때마다 더 힘센 사람 불러와서 대신 싸워달라고 한다면 깡패 문제가 해결되던가? 내가 북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우스울 것 같다. 비할 것없이 많은 것을 가진 남한이 북에서 뭐하나 할 때마다 호들갑이고 미국 뒤에 숨기 바쁘다. 이거야말로 북한보고 남한 협박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면 뭔가.
우리는 자신의 강함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감을 가지고 북한과 싸우든 친해지든 주체적으로 상대할 필요가 있다. 경제 규모가 30배고 인구도 두 배는 차이가 난다는 것을 제발 좀 기억하라고 강조한 이유는 공포감이 우리를 뒤덮기 전에 제발 우리의 힘을 기억하라는 의도였다.
제1연평해전이 한 예이지만 남북한이 총질 몇 번 한다고 전쟁이 나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가 있건 없건 현대 무기의 강력함을 생각하면 일단 전면전이 벌어지면 한반도는 모두 폐허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전쟁은 그리 쉽게 나지 않는다. 또 전쟁이 나도 모두가 죽는 전면적으로 가지 않는다. 전쟁의 위험은 과소평가되어서도 안 되지만 과대평가되어서도 안 된다. 그 과대평가가 우리의 모든 자원을 소모시키고 결국 우리는 진짜 위험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도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한국은 그때와 또 달라졌다. 이제 한국에는 외국인들이 넘치고 세계는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가수들로 인해서 한국에 훨씬 더 친숙해졌다. 이것은 다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가 더 성장한 결과다. 김대중이 북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더더욱 그럴 수 있다. 북한에 대해 무조건 양보하자거나 북한과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좀 양보를 할 때도 있고 강하게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때마다 양보한다고 북의 지령을 받았다는 둥 간첩이라는 둥 하는 것도 틀리고 압력 좀 가하면 당장 전쟁이 나서 다 죽을 것처럼 겁을 내는 것도 틀렸다.
당당하게 만약 도발을 해오면 그 이상으로 갚아줄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되 양보도 하고 이익도 챙기는 방향으로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 겁쟁이 개처럼 짓기만 하는 태도를 보이며 내가 안보는 제일 잘 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이제 꼴불견이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