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의 국회의원실과 서울 자택, 통합진보당 일부 당직자들의 서울 및 경기 지역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동시에 진행했다. 국정원에는 청구권이 없으므로 수원지검에 청구를 신청해 영장을 발부받았다. 아청법에 공선법에 하다하다 내란죄까지,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은 이 나라는 이러다가 전국민을 법조인으로 양성할 기세.
내란죄 피의자, 이석기가 처음은 아니다
우리의 빛나는 근현대사를 잠깐 들여다보면, 아 이거 한 건 나올 때가 됐구나 싶기도 하다. 어떤 출몰 주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61년 :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민족일보 발행인 조용수 등. 진보정당 정치인 출신으로, 언론의 중요성을 인식해 1961년 민족일보를 창간한다. 민족일보는 사시(社是)로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노동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양단된 조국의 비원을 호소하는 신문’을 내세웠다. 5.16 군사정변 후 구속된 그는 사형 선고를 받는데, 국제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같은 해 사형이 집행된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해당 공판의 판사로 배석했었다.
1974년 : 민청학련(인혁당) 사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여정남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단체가 불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반체제 운동을 한 정황을 포착했다면서 그 배후로 ‘인민혁명당’을 지명했다.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회는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으며, 이 사건은 1995년 현직판사 315명에게 실시한 〈근대 사법제도 10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으로 꼽히기도 했다.
1979년 : 김재규의 박정희 총살, 일명 10.26 사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1979년 10월 26일 밤, 삽교천 방조제 준공에 참석하고 온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궁정동 만찬회 석상에서 언쟁 끝에 당시 대통령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車智澈) 등을 권총으로 저격하여 10·26 사태를 일으키고 10월 28일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에 의해 체포되었다. 1980년 1월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1980년 5월 24일 사형 집행되었다.
1980년 : 고 김대중 대통령 사형 선고
김대중 전 대통령. 신군부가 들어서자마자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내리며 김대중을 체포했다. 신군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주동자로 김대중을 지목해 내란혐의로 기소했고, 이후 두 달여의 고문을 통해 관련자 진술을 조작하고 다음 해 사형을 선고했으나 감형되었다. 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친 2003년 재심을 청구해 이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문에서 “79년 12·12사태와 80년 5·18을 전후해 발생한 신군부의 헌정파괴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함으로써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행한 정당한 행위이므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1981년 : 아람회 사건
역사교사 황보윤식 씨 등. 당시 역사교사였던 황보윤식씨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전두환 책임”이라 수업시간 중 말했고, 한 고등학생이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순경은 다시 이를 치안본부·안기부에 알렸다. 1981년 공안당국은 “교사와 현역군인, 검찰청 직원 등이 참여해 국가 내란을 꾀하던 ‘아람회’라는 반국가단체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단체는 황보윤식씨와 함께 ‘김아람’이라는 아이의 백일잔치에 모였던 동료들이었다. 백일잔치 참석이 반국가단체 구성으로 급변한 것이다. 신고교사와 학생도 감금, 구금되어 거짓 진술을 강요받았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쿠데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두 전직 대통령의 범죄사실에는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후의 정황은, 뭐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다.
‘수괴’의 체급, 그리고 물타기
그들에게 ‘국가를 전복’할 능력이 있는가, ‘수괴’ 치고는 너무 체급이 딸리는 것 아닌가 등에 대해 염려하는 이들도 많다. 이석기는 통합진보당의 주류로 불리던 ‘경기동부’의 핵심 멤버다. 경기동부는 흔히 ‘주사파’로 불리던 NL 계통인지라 이전부터 북한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으리라는 강한 의심(사실상 확신에 가까운)을 받고 있다. 그는 2002년 민혁당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된 적이 있으며, 이를 통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5개월만에 가석방되었다.
통합진보당 경선에서의 부정선거로도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석기가 운영하던 여론조사기관과 선거기획사가 통합진보당 경선을 주도했기에 변명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는 등 많은 비판을 받았고, 현재 국회의원 자격심사안이 계류돼 있는 상태다.
이 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타이밍’과 ‘물타기’를 말하는데, 한국일보 서화숙 선임기자의 오늘자 칼럼 소제목이 괜찮더라. “통합진보당, 국정원 문제 많다고 북한 추종 합리화 안 돼”고 “국정원, 통합진보당 문제 많다고 정치개입 책임 못 피”한다. 따로따로 가자.
※ 참고
대한민국 형법 제2편 각칙
제1장 내란의 죄
제87조(내란) 국토를 참절(어떤 국가의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여 그 국가의 주권 행사를 사실상 배제하고 국가의 존립, 안전을 침해하는 일)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
1.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기타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살상, 파괴 또는 약탈의 행위를 실행한 자도 같다.
3.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제88조(내란목적의 살인)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제89조(미수범) 전2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제90조(예비, 음모, 선동, 선전)
① 제87조 또는 제88조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한다. 단, 그 목적한 죄의 실행에 이르기 전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②제87조 또는 제88조의 죄를 범할 것을 선동 또는 선전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