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 지난 회에 “신은 우리 우주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창조론자 및 근본주의 계열 신학자들이 개신교의 신을 ‘지구 하나만 보고 매달리는 작은 신’으로 만들어버린 것을 비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 더 자세히 적을 예정입니다. (정말요? 이것보다 더 자세히?-편집자 주)
왜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에 대해서는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떠들어대면서 빅뱅이론엔 관심을 잘 가지지 않을까 지난 시간에 생각해 보았다. 이번시간엔 근래에 들어 창조론자들이 빅뱅이론에 대해 하기 시작한 반박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꽁꽁 숨겨둔 반박까지 모조리 해체시켜버려야 일말의 인정이라도 얻을 여지가 생길것 아닌가. 애초에 이런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얻는다는게 무리수일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그들은 종교와 과학을 혼동하고 있는 걸까? 신념과 이론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어떤 과학이론을 ‘자신의 종교를 없애려는 사악한 음모’로 보고 공격하는 것은 탄압인데, 정작 그들은 자신의 종교가 핍박당한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역으로 과학을 핍박한다.
젊은 지구, 늙은 지구
한가지만 설명하고 가자. 우리가 지금부터 반박하려는 것은 젊은지구 창조론자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젊은지구 창조론자들은 창조론자 중에서도 제일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부류로, 성경에 써 있는 사람들의 나이를 기준으로 “우주의 나이가 아직 6000년밖에 안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이라는 지구의 연대기 측정은 인정하는 창조론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가리켜 늙은지구 창조론자라고 한다.
젊은 지구론은 한국창조과학회에서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으로, 한국창조과학회는 모든 창조론 가운데서 제일 극단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늙은 지구론은 우리 지구와 우주의 나이에 대해서는 관용적이기 때문에, 빅뱅이론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 관해서는 뒤에 가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어떤 근본주의자의 반박 목록
반박1. 빅뱅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알 수 없지 않나.
그렇다. 아직 알 수가 없다. 현재 우리가 대강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시간의 영역은 빅뱅이 일어난 약 10^-36초 이후부터이다. 그 이전에 관해서는 완전히 미지수인거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진다고 해서 창조론자들의 항의가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이는 진화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재반박이 들어왔지만 무시당했다(…) 그들은 두 화석 사이의 중간화석이 비어있다고 지적한 뒤 진짜로 그 중간화석이 발견되면 또 그 사이의 중간화석은 어디있나고 물었다. 이 작업은 계속 반복된다. 왜 이렇게 중간화석을 찾기 힘든건지 진화론을 기반으로 완벽하게 설명한 이론(단속평형설)이 등장하자 더이상 창조론자들은 중간화석을 가지고 물고 늘어질수 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무시하고 여전히 중간화석을 물고 늘어진다.
이런 논증은 효과가 없다. 자연법칙이 왜 등장하느냐고 묻고 싶다면 형이상학자를 찾아가라.
반박2. 대폭발을 통해서는 현재의 대칭적이고 규칙적인 네 가지 힘이 생겨날수 없을 텐데?
그들은 ‘대폭발은 매우 불규칙적이고 우연스럽고 혼란스러운 방식에 의해 일어났기 때문에 오늘날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규칙적인 네 가지 힘은 결코 일어날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현재의 우주론이 처음엔 하나였던 네 가지 힘이 어떻게 해서 분리되고 생성되었는지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구멍을 메꿔주는 ‘초대칭’이라는 개념이 물리학에 있다. 모든 만물이 일종의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끈이론과 이 초대칭을 합친 초끈이론은 현재까지 네 가지 힘을 통합해서 설명하려는 물리학 이론 중 제일 성공적인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 초끈이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론이나,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을 논하는 불투명한 창조론이 그 난제를 해결할 리는 없다.
반박3. 우리 우주는 균일하지 않고, 빅뱅이론으로는 이를 설명할 수 없다.
허블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로는 맞는 말이지만 오늘날의 우주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1980년 COBE 위성 덕분에 보다 정밀한 관측을 통해 우주배경복사가 이방성(방향에 따라 그 빛의 밝기가 달라지는 성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을 띠고 있음을 밝혀내어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 관측에 성공한 공로로 물리학자 존 매더와 조지 스무트는 200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쥐게 된다. 참고로 조지 스무트 박사님은 빅뱅이론에도 출연하여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해주신 분이다. “쉘든, 자네 약했나?”는 정말 언제봐도 명대사이다.
스무트 박사님은 현재 이화여대에 있는 초기우주과학연구소에 재직 중이시다. 하지만 계신 날보다 안 계신 날이 훨씬 더 많으니 방문 전 예약은 필수… 필자도 어케어케 억지연줄을 만들어서 이분을 찾아뵙고자 했으나 찾아가는 날마다 안 계셨고 약속을 잡는 것도 매번 실패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얼굴이 익숙하지 않나? 우리나라에 계시면서 정수기 광고에도 출연하신 적이 있다…
반박4. 빅뱅이론에서 주장하는 초기우주의 물질-반물질 비는 현재 물질이 왜 이렇게 우세한지 설명하기엔 턱없이 이상하다.
그래. 필자가 보기에도 이는 정말 말도 안되게 턱없이 이상해보인다. 하지만 우리 우주를 잘 설명하는 이론이 이상한건 그 이론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인간의 사고방식이 이상했기 때문인거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확실히 매우 기괴한 이론이다. 그러나 겉보기에 말도 안되어 보인다고 해서 엄밀하게 측정된 과학이론을 부정하는건 잘못된 태도이다. (야, 그리고 사실 겉으로 봐도 창조과학이 훨씬 더 이상해보여…)
반박5. 빅뱅이론은 우리 우주의 자성(자석처럼 자기장을 띠는 성질)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도 곧 설명될 것 중 하나이다. 일단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자기장이 빅뱅과 함께 생성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아마 우리 우주의 자기장은 빅뱅이후 아주 작은 형태로 여러군데에 ‘밭에 뿌려진 씨앗들’같은 형태로 생성되었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크게 증폭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현재 몇가지 이론이 나와있는 상태다.
젊은지구 창조론자들은 가끔씩 빅뱅이론 외부의 다른 천문학 난제들을 들고와서 우리 우주의 나이가 매우 어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에 관해서도 몇가지 살펴보자. 이 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