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내 전공은 ‘항공우주공학’이었다. 하지만 학과 공부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때에 다양한 책을 읽게 되었고, 그중 가장 인상적인 책중의 하나가 슘페터의 책이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거의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창조적 파괴’라는 말이 그 당시 뇌리에 박혀있었다.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혁신이 만들어지고 그 혁신을 통해서 과거의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무너지고, 사회 전반의 효율성이 증가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발전한다는 개념이다. 지금도 현대 자본주의에서 ‘창조적 파괴’의 중요성에 대해서 상당히 동의하고 그것을 위한 사회 전반의 제도적·문화적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때 책에서는 배웠지만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고 지금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창조적 파괴’에서 ‘창조’는 ‘파괴’를 필연적으로 부르고 ‘파괴’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삼성을 나와 첫 번째로 했던 스타트업은 철저한 실패였다. 그리고 난 잠시 동안 실업급여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MBA에 합격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유학을 가게 되어서 그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4개월 동안에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생활했다. 고용 관련 의무교육을 들으면서 그 당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으면서 생활했다. 지금은 얼마인지 모르지만 2009년 당시 100만 원이 그 당시로서는 고용 급여액의 상한선이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6개월이 최대였다. 당시 부양하는 가족이 없는 처지였기에 100만 원이 그렇게 부족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내가 만약 4인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별도의 알바라도 한다면 실업급여는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알바를 통해서 소득을 보전할 수도 없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6개월, 그 안에 직장을 잡아야 한다. 당시는 금융 위기 상황이었기에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어버린 상황이었고 누구에게도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난 대학시절 노동조합에서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파업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창조적 파괴’에는 반드시 ‘파괴’가 뒤따르고 경쟁에는 언제나 ‘패자’가 생기는 것이고, 그리고 기업의 구조조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도 나도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기업의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이 필수적인 경우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회사가 망해서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살아본 나로서는 이제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대해서 왜 그렇게 결사적으로 반대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자기가 부양하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그들에게 ‘창조적 파괴’, ‘자본주의 효율성’, ‘혁신’, ‘국가의 경제발전’, 이런 고상한 말들은 사치에 불과하고 악마의 수사일 뿐이다.
‘창조적 파괴’에서 우리는 ‘창조’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창조’에는 ‘파괴’가 반드시 수반된다. 그런데 ‘파괴’에 따르는 ‘고통’과 ‘아픔’은 좀 없앨 수 없을까? 혹 아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노동자들이 ‘창조적 파괴’에 따르는 ‘고통’을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할 방법은 없을까? 난 여기서 ‘따뜻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MBA 시절 같은 섹션에서 덴마크 총리실에서 근무하다 온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너희 나라의 주된 산업이 뭐니?(정말 궁금했다. 덴마크 하면 떠오르는 회사가 별로 없는데, 왜 이렇게 잘 살까?)
낙농업과 농업인데.
낙농업과 농업은 사람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인데, 너희는 인건비도 높을 텐데 어떻게 그걸 어떻게 감당하지? 경쟁력이 있어?
낙농업과 농업이 사람이 많이 필요한 건 사실인데, 1년 내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아, 그때그때 필요할 때만 고용하면 돼.
어 그래? 그럼 그렇게 사람을 쉽게 자르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 그 사람들이 파업이나 나갈 때 문제가 없지 않아?
나라에서 실업급여를 월급만큼 주기 때문에 쿨하게 그만두고 기업도 그걸 알기 때문에 마음 편히 인력을 조절할 수 있어.
MBA 오기 직전까지 실업 급여를 받았던 나에게 이 대답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본주의가 가질 수밖에 없는 모순점을 국가가 책임을 지는구나. 그리고 그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기업은 새로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거구나. 이게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진국중 사회적 안전망이 가장 취약한 미국조차도 실업급여가 1년이고, 월급의 80% 정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업이 망해서 방황하던 시절 금융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실직했을 때 내가 다니던 LA 교회 청년부에서도 심심치 않게 Lay off 된 사람들이 있었다. 우울한 상황이었지만, 몇몇은 실업 급여를 받아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어렸을 때부터 사업하다 망하면 온 가족이 망하고 영원한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는 스토리를 들어왔다. 실제 그런 사람들을 보았다. 친구 사업에 보증 섰다가 망한 가족, 기업이 망한 후에 연대보증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된 대표, 경쟁력을 상실한 대기업의 구조조정 속에서 실직 이후에 도시 빈민으로 추락하는 가족들,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청년은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고, 공기업에 들어가려고 한다. 직업 선택의 기준이 내가 좋아하고 나를 발전시키고 도전할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안 망할 것 같은 회사, 안 잘릴 것 같은 직업을 원한다. 상황은 이런데 소위 엘리트 보수 정치인들은 우리나라 청년들이 도전정신이 없다고 개탄한다.
난 여전히 ‘창조적 파괴’를 믿는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자원도 없는 나라에는 ‘창조적 파괴’가 더욱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 파괴’에 따른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따뜻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흔히 보수 정치인은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한다. 난 오히려 튼튼한 복지 정책이야 말로 창조적 파괴와 사회의 혁신을 만들어내는 기본 틀이라고 생각한다.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안심하고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고, 기업은 새로운 혁신을 위해서 구조조정을 하고, 노동자는 그 구조조정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혁신의 장애물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자기 책임을 방기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기업’과 ‘노동자’는 언제나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스타트업을 하려는 청년들의 부모님은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공무원 시험을 종용할 것이다. 난 우리나라에 언젠가 ‘따뜻한 자본주의’가 실현되는 날을 기대한다.
원문: 반호영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