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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교사와의 소통

2017년 7월 4일 by 이성우

교대 동기 모임에 나갔다. 이런 곳에 잘 다니는 체질은 아니지만, 대학 졸업 후 30년이 지난 지금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궁금하고 해서 참여했다. 삼사십대 때와는 달리 지금 우리가 어떤 불순한 이해관계를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저렴한 집단의식을 경계한다.

새로운 관계망 속에서 내가 제일 관심을 두는 부분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품고 무슨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문화인류학자가 되어 그들을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인간적인 흠결의 소유자로서 나도 모든 가식을 벗어 던지고 수다에 동참한다.

사람들의 이런 면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가 갈등사태에 대한 소회를 늘어놓을 때이다. 선생인 사람이 모이면 학교 이야기가 전부이고 학교 이야기는 학교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엔 어김없이 교장/교감이나 동료 교사와의 갈등에 관한 나레이션이 담겨 있다.

흔히 뒷담화라 일컫는 것인데, 나는 뒷담화 자체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뒷담화의 사실성과 진정성이다. 자신의 이해관계나 옹졸한 주관적 심사에서 한발 물러나 공평무사한 시각으로 상대를 대상화하는 뒷담화는 바람직하다. 그것은 유익한 정보의 공유이자 인간적인 연대의 소박한 토대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우리가 나눈 뒷담화 주제 가운데 내 흥미를 끌었던 것은 젊은 후배교사들에 대한 평론이다. 젊었을 때 우리는 선배교사들과 관리자들을 비난했는데, 지금 우리 수다떨기의 메인 이슈가 후배교사들에 대한 평론이니 이것은 우리가 나이를 먹었음을 말해준다.

건강한 뒷담화를 구성하는 두 축, 객관성과 진정성이 벗들의 평론 속에 얼마나 담겨 있을까?

최소한 진정성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후배교사들에 대한 우리의 평론은 교직에 대한 우려가 전부이다. 다만, 그 우려가 얼마나 객관적인가 하는 것은 논하기 어렵다.

우리 또래의 중장년의 교사들이 후배교사들에게 품는 불만은 ‘개인주의’나 ‘교직에 대한 헌신성의 부족’으로 요약될 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 젊었을 때도 그렇고 어느 시대 어느 집단에서도 이기적이고 성실하지 않은 구성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때에 비해 지금 그 정도가 얼마나 더 심한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 나도 벗들의 평론이 객관성을 많이 벗어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우리 꼰대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젊은 교사들의 경향성이나 가치관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하는 ‘인과관계’에 주목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어떤 경우에도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는 법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삶의 물적 조건에 터해 판단해야 한다. 지금 젊은 교사들은 우리 때와는 달리

  1.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기의 전체주의 문화를 경험하지 않았다.
  2.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시대의 아들/딸이었기 때문에 많은 형제자매 틈바구니 속에서 이런 저런 상처나 결핍을 우리보다 훨씬 적게 경험하며 자랐다.
  3. 동네나 마을에서 또래집단과 부대끼며 자란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 빌딩 숲 속의 아파트에서 자랐기 때문에 ‘공동체 생활’에 대한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결정적으로…. 교사인 젊은이들은 교대/사대에 들어가기 까지 죽도록 공부만 하고 또 교단에 서기 위해 임용고시를 통과하기 위해 피폐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반면 우리는 “사회의 진보”를 염원하는 자부심으로 매일 데모만 하며 돌아다녀도 졸업만 하면 쉽게 교단에 설 수 있었다. 설령 그들 영혼 속에 우리가 가진 신념이나 이상 따위가 적게 자리하고 있다 않더라도 우리가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이 피폐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 지독한 생존경쟁의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 것은 우리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우리가 옳고 그들이 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뒷담화만 까댈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앞담화의 장에 초대해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자세를 낮추고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그들의 정서에 비추어 너무 거북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들과 손잡고 연대의 마당으로 향할 일이다.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젊은 교사들과 소통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보다 덜 추한 사회와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결국 ‘지금 여기 . Now & Here’일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 속의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

그런 시각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괜찮은 후배교사,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은 사랑스러운 후배들이 더러 보인다. ‘정말 괜찮은 후배교사’ 근처에 ‘괜찮은 그의 벗들’이 있고 그 근처에 또 ‘덜 나쁜 벗들’이 있다. 이들과 연대하여 덜 나쁜 학교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유념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그들을 가르치려 들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파울루 프레이리의 말을 빌려서 말해보겠다.

for the people도
to the people도 아닌……
with the people 해야 한다.

원문: 필인의 꼼뮨

Filed Under: 교육, 사회

필자 이성우 twitter facebook

1988년부터 지금까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오고 있다. 교육철학으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교조 칠곡지회장, 경북지부 교육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사단법인 지역문화연구 사람대사람 상임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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