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기업에서 조직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 특유의 고질적인 상명하복이 강한 문화가 아닌, 수평적이고 눈치 보지 않는 실리콘밸리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구직자들을 유혹합니다. 기업 광고 모델 대부분이 대학생이나 신입 사원이듯, 기업 홈페이지에서도 젊은 친구들이 항상 먼저 나옵니다.
기업들은 ‘늙은 것’이 요즘 선호하는 조직 문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꼰대 이미지를 떠올리면 40대의 차장 이상의 이미지를 막연히 생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새로운 조직 문화의 상징과 같이 내세워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젊은 꼰대’가 더 무섭다는 거 아십니까? 기업에 젊은 직원이 대부분이며,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앞세우는 기업 홍보를 볼 때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젊은 사람밖에 없을까?
정확히 표현하면 젊은 직원과 임원급의 장년만 남아 있고 중간 허리층 연령대가 없는 기업 말이죠.
기업에서 흔히 허리급에 해당하는 대리급 직원이 행복하지 않은 기업은 보통 안 좋은 회사일 확률이 높습니다. 회사 내에서 아직 기득권은 아니지만 실무를 잘할 수 있는 직원이 대리급입니다. 이런 직원들이 기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일이 고되면 기업의 미래는 어두운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의 미래가 밝아서 고용이 안정적이고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혹은 높은 연봉과 복지가 있다면, 회사 내에서 기득권이 될 희망이 보인다면 이직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먹을 치즈가 있는데 이 자리를 옮기면서까지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중 한두 가지 이상 결핍되어 있고 본인이 능력이 있다면 다른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즉 대리급 직원의 이직은 기업에 대한 평가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대리급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 보통 좋은 직장일 것입니다. 이미 일을 알고 산업이 돌아가는 것을 아는 연차에서 가고 싶은 회사는 모든 걸 종합한 우수한 기업입니다.
하지만 이런 디테일이 기업 인사에서는 잘 반영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직원 유지 비율이나 퇴사율 정도만 목표 관리가 이루어집니다. 정확하게 누가 그만두고 누가 그만두지 않는지는 세심하게 모니터링되지 않습니다. 전체 숫자를 보고 있다가 그만둔 직원이 나쁜 직원이라고 평가하면 그만입니다.
회사마다 기득권이 되는 직급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과장 이상이 되면 잘 그만두지 않습니다. 어디 갈 데도 없고 여기 있어도 어느 정도 더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저마다의 계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사 지표에는 이런 기득권 직원이든 비기득권 직원이든 모두 한 지표에 관리 됩니다. 다들 아는데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러기에 지극히 시장 경제로 이루어지는 이직과 구직이 주는 사인(sign)을 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커리어 앞에서 개인은 지극히 실리를 추구합니다. 말로는 애사심을 외치고 바른말을 할 지 몰라도 매일매일 모두 계산기를 열심히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미래가 될 허리급이 왜 이탈하는지 알지 못하면 기업 문화의 변화 동력은 매우 희미합니다. 잘해봐야 단순히 경영자가 하라고 하니까 하는 시늉 정도에만 그칩니다. 회사는 젊은 직원이 많다고 말할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압니다. 신입급 직원과 연차 높은 기득권만 남아서 회사가 매우 정체된 상황이라는 것을요. 물론 기득권은 당장 아쉬울 게 없지만 결과는 시간으로는 천천히 실적으로는 급진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소셜 리테일 기업의 위기가 시장을 강타한 적이 있었습니다. 젊고 활기찬 기업 문화를 앞세우지만, 실상은 매우 위기이며 내부적으로 곪고 있는 상황인 것을 현직자들 중 상당수가 증언했습니다.
거기뿐만이 아닙니다. 청년을 앞세워 홍보하던 기업은 청년인 직원을 잘라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변화를 말하지만 이런 겉으로 드러내기 식의 흉내는 진정한 변화가 아닙니다. 무엇이 진정한 혁신적 문화입니까?
사실 젊은 사람들이 맨 앞줄에 서는 이런 문화 홍보는 한국에나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북미의 글로벌 기업은 산업에서 연차가 오래된 전문가를 맨 앞에 세웁니다. 보통은 그런 사람이 임원이죠. 젊은 문화, 활기찬 직장 이런 표면적인 것을 앞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 뭔가를 이루어 나가겠다는 것이 맨 처음 드러내는 메시지가 되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무슨 가슴 뛰는 비전이 회사에 있겠습니까? 어차피 옆 회사랑 차이도 없는데, 문화가 다르다는 것만 내세우면 실제적 변화를 어떻게 도모할 수 있을까요? 야망에 눈먼 청년들을 부실기업에 손짓하는 모양새입니다.
기업은 지금 가장 일을 많이 하고 있고 번아웃의 위기가 오는, 말할 시간보다 일하기가 더 빡빡한 직원을 찾아서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대표가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 그런 거 하지 말고, 정말 청년 같은 유연한 문화가 만들어지려면 말입니다. 인사 KPI를 다시 수정하고 현상에 솔직해져야 합니다. 아니면 이런 스탭부서부터 바꾸어야 하겠죠.
원문: Peter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