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털털한 연예인의 전성시대다. 잘 먹고 허허 웃으며 ‘초긍정’ 자세를 취해야만 사랑받을 최소한의 자격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TV에는 털털한 성격의 연예인들이 자주 보인다. 좀 뜬다 하는 연예인들은 입이 터질 듯 먹방을 찍고, 이상한 얼굴 표정의 사진이 돌고, 불쾌할법한 상황에서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수억 명의 서로 다른 취향과 선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중이 되고 연예인은 그런 대중의 시선을 받으며 산다. 털털함은 그런 각양의 시선이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몇 안 되는 희귀 아이템이다. 그래서 그들이 ‘(성격이나 하는 짓 따위가) 보기에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라고 정의되는 ‘털털’을 놓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흔한 리얼 버라이어티는 그런 털털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통과의례인 것처럼 보인다. 털털한 성격이 모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라면 대중의 사랑을 더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들의 성격이 강요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들의 털털함을 사랑하는 건 대중의 시선을 받으면서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자신감과 당당함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자연스러움, 그러니까 대중에 의해 목숨이 좌우되는 직업의 세계임에도 연예인 본인이 가진 스스로의 가치관과 행동이 그대로 굴복하지 않는 데 있다.
털털함이 본래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 사랑받는 것이라면, ‘털털하지 않음’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불편하고, 불쾌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싫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털털함이 더 이상 강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털털’의 사전적 의미가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 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털털’을 사전적 의미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을 사랑하고, 그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을 사랑하고, 그 행동의 당당함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날 것의 예술과 창작의 아름다움이 제멋대로 절단되지 않고 날카롭게 원석으로 빛나며 주변을 긁어낼 때, 문화는 비로소 살아 숨 쉴 수 있다.
원문: 로디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