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정말 카페가 많다. 일본인은 퇴직 후 라멘집을 할 거라는 답이 많다는데, 한국에서는 그 답이 한때 치킨집이었고 이제는 카페인 듯하다. 그런데 나는 한국의 카페에 실망한 적이 잦다. 열 군데를 가보면 돈이 안 아까운 곳은 한 군데 정도다. 주인들이 카페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느낄 때가 아주 많다.
내 불만은 분명하다. 카페들은 상당수가 불편한 의자를 비치하고, 비전문성이 넘치는 커피를 비싼 가격으로 팔며, 내부 인테리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구조적으로 소리가 울려서 혼자 있는 경우가 아니면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는 데 너무 방해된다.
커피의 비싼 가격은 카페를 자주 방문하는 것을 돈 아깝게 만드는 주요 이유지만, 요즘은 빽다방처럼 싼 커피도 많으니 가격 문제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또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 인테리어 비용을 생각하면 커피가 마냥 쌀 수 없는 이유도 있다. 그러니 주인이 만들건 점원이 만들건 전문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커피를 비싸게 파는 것은 억지로 이해해준다고 하자.
커피값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공간 대여료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의 가격을 구성하는 부분에서 인건비, 가게 임대료, 인테리어 투자비와 유지비를 제외하고 원두가 차지하는 부분은 얼마 안 된다. 그렇다면 공간은 값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대다수 카페가 커피뿐 아니라 인테리어에도 전문적이지 않다.
스타벅스 커피를 개인적 취향으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나마 외국 체인은 차라리 좋았다. 가본 몇몇 곳은 공간 구성이건 가구건 전문가가 관여했다는 티가 난다. 다르게 말하면 고민의 흔적이 있다. 그런데 많은 커피숍이 그렇지 못하다. 대충 만든 비전문적 커피를 비전문적 안목으로 꾸민 장소에서 팔면서 아메리카노 한 잔에 3,000-4,000원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나의 불만이 무엇인지는 대개 카페의 의자가 잘 보여준다. 보통 카페를 살필 때 무엇을 보는가. 내부 장식? 테이블? 내게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의자다. 못생긴 테이블은 기능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지만 불편한 의자는 내가 카페에 들어가는 이유의 상당 부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의자가 불편한 이유가 나를 더욱더 불편하게 만든다.
카페 의자가 불편한 이유는 분명하다. 좋은 의자는 비싸다. 탁자처럼 몸 바깥에 있는 가구와는 달리 의자는 옷처럼 몸에 접촉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충 만든 것과 장인의 솜씨로 만든 것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 의자야말로 과학이다. 겉보기에는 별거 아닌 의자가 앉아보면 너무나 편한 경우가 있고, 화려하고 멋져 보이지만 앉으면 고문이 따로 없는 의자도 있다. 사실 후자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좋은 의자는 만들기 쉽지 않다.
게다가 탁자는 하나에 2-4명, 8명씩도 앉을 수 있지만 의자는 사람 수만큼 필요한 법이다. 카페를 하려면 앉을 곳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아름다우며 편안한 의자를 사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 예를 들어 인기 있는 가리모쿠의 1인용 의자는 개당 가격이 45만 원쯤이다. 한 테이블에 4개씩이라 치면 겨우 다섯 테이블의 의자값만으로 900만 원이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페를 어떻게 유명 외제 가구로 채우냐고 말할 수 있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 카페는 종종 겉모양새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가격을 타협해서 좀 더 싼 의자를 구입하려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게 의자의 안락함이고, 개당 10만 원대의 카페 의자들이 등장한다. 세상에는 참 의자가 많은 것 같지만 실은 한국 카페의 의자들은 천편일률적이다.
카페 전문 가구점에 가서 구경해 본 사람은 대부분의 카페에서 그 목록의 의자들을 본다. 우리 부부는 집을 카페처럼 꾸미고 싶어서 카페 가구 목록을 본 적이 있고 실제로 고민 끝에 몇 개인가의 의자를 사기도 했다. 그 덕분에 카페에 갈 때마다 한동안 아내는 “아, 이 의자는 얼마짜리”라고 즉답하곤 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종류가 많지 않다.
대개 유명 디자이너의 의자들을 베낀 중국제 의자들이라고 한다. 종종 내구성이나 안락함이 아주 많이 떨어진다. 겉보기는 그럴듯하지만 오래 앉으면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보다 앉아 있기가 더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다. 생김새는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의자 같은데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에 자세가 안 나온다. 이런 의자의 선택에서는 주인의 취향과 고민이 느껴지질 않는다. 그냥 하루 이틀 만에 결정한 듯한 느낌이다.
물론 모든 카페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간 동네의 한 카페는 기본적으로는 서양풍이나 몇몇 좌석은 아예 평상 위 좌식탁자 앞에 앉는 구조였다. 엉터리 의자로 몸 상하고 마음 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런 곳이 좋다. 등을 기댈 곳만 있다면 바닥에 방석 깔고 앉는 게 훨씬 편하다. 한국 카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양풍 카페의 문제는 전통 찻집을 보면 좀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형식이 훨씬 안정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전주 한옥 마을에는 차보다 팥빙수가 더 유명한 ‘외할머니솜씨’라는 전통 찻집이 있다. 이 전통 찻집의 테이블과 의자는 우리가 보통 만나는 서양풍과 물론 전혀 다르다. 한쪽에는 온돌 바닥 위에 좌식 테이블을 놓고 전통 찻집이 흔히 그렇듯 단순한 구조에 나무의 결을 살린 투박한 의자와 테이블로 채워져 있다. 모양만 보면 이런 투박한 의자가 불편할 것 같지만 실제로 앉아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이런 테이블에 앉아서 오랫동안 차를 마시고 책을 읽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
서양풍보다 전통적인 분위기 쪽이 좋다는 게 아니다. 다만 공간도 하나의 작품이어야 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인 가구, 그중에서도 우리가 앉는 의자에 대한 고민을 살펴보면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다.
집에서도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시대고 이제 우리는 카페의 커피가 일종의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커피 전문점에 가면 우리는 바리스타의 커피를 기대한다. 그만큼 카페의 공간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완성도를 따질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아직 그만 못한 것 같다.
카페 의자, 나아가 카페 인테리어를 보고 있으면 한국의 많은 카페가 ‘도대체 이곳의 주인은 어떤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알 수 없는 곳이 많다. 마음속에 주제가 없고 어설픈 흉내만 내다보니 거품만 잔뜩 낀다. 알지도 못하고 투자도 못 하는데 겉모습만 흉내 내려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엉터리 공간이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불편한 의자는 주인이 실제로 그 카페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에 별로 고민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려주고, 통일감 없는 인테리어가 다시 한번 알려준다. 그런 공간은 어쩐지 만들다 만 곳 같다. 공간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가게에 비싼 공간 대여료를 요구하는 것이 옳을까.
흔하디흔한 전통 찻집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여러 사람의 노력 끝에 완성된 나름의 완성도를 가진다. 마찬가지로 서양에 있는 카페도 그런 식으로 완성된 공간이다. 단순하게 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로 된 공간도 오랜 입식 생활을 통해 만들어졌다. 테이블의 높이와 의자의 높이가 어때야 하는지, 팔걸이가 있어야 하는지, 테이블의 모양과 면적이 어때야 하는지 전부 문화적 진화의 결과이며 당연히 서구인의 생활 문화, 체형 등과 관련 있다.
요즘은 인테리어를 향한 관심이 전보다 높다.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도 많아서 어설픈 서양풍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것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모든 문제를 집약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카페의 의자다.
젓가락 하나도 잘 만들려면 예술이 된다. 그런데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카페를 하나 만드는 것이 예술이 안 될 이유가 없다. 공간은 그저 공간이지 좋은 공간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면 옷은 그저 천으로 몸이나 가리면 그만이지 좋은 옷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국에서 작품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고민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