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운동해야 되는데… 하아…”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운동해야만 한다고 누가 시키거나 강요하지도 않았을 텐데요. 어쩌다 운동은 하기 싫은데 꾸역꾸역하는 활동이 된 것일까요. 사실 즐겁게 건강하게 살려고 운동하는 건데 말이죠. 직업 트레이너로서 이런 아주 원론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한 회원님은 정말 이유 없이 자주 아팠습니다. 또 다른 회원님은 몸에 큰 문제가 없었고 움직임도 좋았는데 본 운동을 시작만 하면 몸이 말을 안 들었죠. 또 다른 분은 정말 열정적으로 사는 분이었고 운동도 최선을 다했지만 몸의 변화가 없었어요.
고민이 안 될 수 없었습니다. 이 고민을 하며 자책도 하고 비난도 하고 하다가 제가 오히려 우울증을 앓고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몸만 생각해선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제게 오는 분들의 일상을 대충 상상해보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끼어서 가듯 대중교통을 이용해 회사로 달려가죠. 가서 산더미처럼 쌓인 일에 압박감이 밀려오는데 회의는 또 있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도처에 있죠. 눈치 보고 신경 쓰고 서두르고, 그러다 보면 밥때가 됩니다. 메뉴를 내 맘대로 정하기를 하나요?
점심 먹고 햇살 좀 쏘이려 하면 시간 돼서 다시 들어가 앉습니다. 또 모니터에 머리를 맞대고 일을 합니다. 저녁에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개인 여가 생활도 챙겨야 하는데 눈치 없는 부장님이 회식하자고 하면 어쩌나, 야근각 서는데 오늘의 일은 어쩌나 신경이 또 쓰입니다.
좀 과장을 보태서 생각해보면 대략 이런 일상 아닐까요. 그 와중에 정말 이젠 몸을 살펴야겠다고 생각해서 찾아오신 분들이겠죠. 그런데 과연 그동안 나의 수업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고민해보니… 딱 이런 모습.
이런 모습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을까 싶더군요. 정말 효과적인 운동 시간이 되려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데 그 시작이 어디부터야 할지.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조금이라도 정리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라고 나옵니다. 운동의 첫 번째 시작은 ‘의식’을 나에게 가져오는 것부터여야 합니다. 회사일, 집안일, 연인과의 다툼, 운동 끝나고 할 일 등 이런 걸 생각하지 말고 몸을 움직이려는 ‘나’ 자신을 생각하고 느끼는 겁니다.
케틀벨 스윙을 하는데 눈이 계속 분주히 움직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할 때 워낙 바쁘고 한 번에 많은 사람을 상대하느라 눈치 아닌 눈치를 보는 분들. 그런 분들이 케틀벨 스윙을 할 때 저는 멀찍하니 앞에 서서 말합니다.
“제 눈을 보세요.”
놀랍게도 케틀벨 스윙이 훨씬 힘 있고 견고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운동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이죠. 의식이 나에게 없는 활동은 또 다른 의미의 ‘스트레스’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뇌는 온종일 일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결정을 내립니다. 운동은 어떨까요? 운동을 근육으로만 하나요? 아닙니다. 근육도 뇌의 지배를 받죠. 케틀벨 스윙, 데드리프트, 스쿼트 같은 복합적인 동작엔 정말 다양한 근육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뇌가 할 일이 그만큼 많습니다.
그 와중에 회사에서 있었던 짜증 나는 일, 운동 마치고 가야 할 약속 등을 생각하면 운동도 또 다른 뇌의 일거리가 될 뿐 내게 도움 되는 활동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반복되는 좋지 못한 동작, 누적되는 미세 손상이나 부상, 운동은 역시 힘들고 아프기만 하다는 왜곡된 경험…
내 몸을 움직이는 순간 내 의식이 놓여야 할 곳은 나 자신입니다.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디를 움직이려고 잘 움직이지 않는지,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내 의도와 달리 어떻게 되었는지, 이렇게 하니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심지어 내가 지금 숨을 제대로 쉬고 있기는 한지.
의식을 나에게 두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레슨 시작 전에 회원님과 대화를 합니다. ‘컨디션 어떠신가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처럼 형식적인 질문이지만 많은 것을 듣습니다. 오늘 하루가 바빴구나. 어제 잠을 많이 못 잤구나. 날씨가 갑자기 더워서 지치는구나. 여기에 맞추어 운동의 시작이 달라집니다.
너무 바쁘고 숨 가쁜 하루를 지나온 분은 가만히 누워서 호흡 패턴을 정리하고, 어제 잠을 많이 못 자서 지친 분이라면 천천히 몸을 깨우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더위로 지쳐 몸이 늘어지는 분에게는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가벼운 마사지를 하기도 합니다.
나 자신의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오늘 어떤 몸 상태구나. 마음은 어떻구나. 나와의 대화를 합니다. 평이하다면 늘 해오던 비슷한 루틴대로 준비하지만 특이사항이 있다면 그곳에 맞추어 준비운동도 달라져야 합니다.
운동하는 동안에도 달라집니다. 의식이 나에게 있다면 무게를 더 올려도 될지, 더 소화할 수 있는 세트 수가 얼마나 될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게 정말 힘든 것인지 아니면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지도 구분할 수 있어요.
‘원래 계획이 A이니 어떻게든 A를 해야 한다’는 방식은 의식을 플랜에 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앞선 세트에서 어떤 부분에서 놓친 게 있는지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나에게 내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줍니다. 그냥 “아! 끝난다! 5분 쉬고 다시!”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렇게 1시간 운동하면 잠시라도 세상만사 복잡한 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잠깐이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얼 할 수 있는지 작은 부분에서 느끼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운동이 강도가 높든, 어렵든, 혹은 너무 쉽든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여지가 줄어듭니다. 나와 잘 맞고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을 찾아서 하기 더 쉬워질 테니까요.
너무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나요? 기회가 된다면 내가 운동할 때 어떤 모습인지 영상을 찍어보세요. 세트 사이에 무얼 하고 있는지. 본 운동 들어가기 전엔 무얼 하는지. 보고 나면 많은 생각이 들 겁니다.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지금 의식이 여기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