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한 건 언제부터일까? 뉴스 기사에서 이 말을 점점 더 심심찮게 본다. 어떤 대기업 간부와 회장은 보석금을 내거나 나라에서 특별 사면을 해주지만 일반인보다 좀 더 열악한 환경의 사람은 때때로 가중 처벌을 받는 일이 반복된다.
경제적 밑바탕이 풍부할수록 좋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두 번째 기회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밑바탕이 열악할수록 변호사 선임은커녕 기회는 완전히 박탈당한다. 경범죄 가중처벌로 인한 문제는 늘 안타까운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안타깝다고 말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판결은 오로지 법대로 내려지는 경우가 많고, 평범한 시민이 왜 저게 죄가 안 되느냐고 따져도 변호사 변론을 통해 증거와 상황이 달라질 때가 많다. 그래서 좋은 변호사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재판 때만 하더라도 이름조차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변호사가 붙었고, 최순실과 정유라 또한 한 이름 하는 변호사가 붙어 있다. 이렇게 변호사를 통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최대한 징역을 작게 받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금수저밖에 없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에 개입한 박 모 양의 변호에 무려 12명의 변호사가 붙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정체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부장 판사와 부장 검사 출신을 포함한 변호사팀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법정 재판에서 판사 출신 변호사와 부장 검사 출신 변호사를 앞에 세워두는 일은 피고인에게 큰 이익이 될 수 있다. 한때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던 법조계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법정에서 발휘하는 힘의 규모가 평범한 사람과 너무나 다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은 사람은 부장 판사 출신과 부장 검사 출신 변호사를 고용하여 재판 자체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도 있다. 그들은 영향력이 강한 사람을 곁에 둘수록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런 일이 평범한 사람에게 가능할까? 절대 불가능하다. 지방에서도 판사 출신 변호사를 고용해서 사건을 처리하는 데에 적지 않은 금액이 든다. 평범한 수준보다 좀 더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은 가능하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사건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영장마저 기각된 정유라, 10대 로펌 변호사가 붙은 박 모 양. 우리는 이 두 사람이 법적으로 죄의 책임을 면제받을 가능성에 분노하지만 도덕적으로만 비판할 수 있다. 법적 처벌을 피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러한 부조리에 더욱 화를 내는 것이다.
정유라를 구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의 피해자 부모는 엄격한 처벌을 바라는 호소문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나 여론은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일 뿐이다. 여론에 따라 판결이 더욱 엄격하게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값비싼 변호인단의 변호를 과연 여론이 이길 수 있을까? 그저 유전무죄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일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