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를 발칵 뒤집을 만큼 천재성을 보였던 아이가 대한민국 입시미술을 겪으면 생기는 일」이라는 글을 봤다. 나는 전전 직장에서 입학처장을 했다. 그렇다. 입학처는 입시가 주 업무다.
공정함을 유지하고 부정의 개입을 막기 위하여 미술, 디자인, 무용 등 실기 입시의 관리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또 미술 실기 입시는 경쟁률이 낮을 때에도 보통 40:1은 되므로 규모도 크다. 40:1이란 평균적으로 강의실 두 개에서 실기 시험을 본 수험생들 가운데 한 명만 합격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디자인 계열 미술 실기의 경우 어떤 사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그림, 전공에 따라 그 사물을 모티브로 하는 상상도를 그린다(사실, 상상, 발상 등의 종목이 있으며, 학교, 전공마다 다 다르다). 대상 사물은 꽤 오래전에 학생들에게 공개된 수십 개의 사물 후보 리스트 가운데 하나로, 실기 시험 전날 정도에 (경찰이 입회하지는 않지만) 비밀리에 선정하여 아래 사진처럼 포장해서 준비한다.
사실 표현은 보통 단색으로 그리고, 상상 표현은 컬러로 그리는데, 상상 표현 그림은 가끔 지하철역에 집단으로 전시되는 ○○학원(예: xx의 아침)의 그림들을 생각하면 된다. 뭘 그린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하게 뭘 그렸는지는 잘 모르겠는 그런 그림들… 바로 그거다.
실기 시험 때, 학생들은 비교적 오픈된 공간(교실이나 강당)에서 오래 그림을 그린다. 시간이 길어지면 빵과 우유도 준다. 또 오픈되어 있으므로 다른 수험생 그림을 볼 수 있다. 다른 그림을 보고 베끼는 것으로는 원본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에 옆 그림을 본다해도 별 문제가 안되는 거라고 이해한다. 다만 미리 준비한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그릴 수는 없다. 또 시험장 안에서는 자기 또는 다른 수험생의 그림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경쟁률이 높은 만큼 채점은 엄청난 일이다. 부정 방지를 위해 채점을 위한 심사위원 선정은 여러 학교가 공동으로 하며,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맡게 되는 그해의 주관학교가, 거의 모든 사람이 대학교수인 심사위원 풀에서 랜덤 선정하여 심사일 직전에야 심사를 하게 되었다고 통보한다. 이때 전화를 받아야 하고, 심사 날에 별일이 없으면 선정된다. 물론 이렇게 공동관리를 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 곁다리로 미술 입시 부정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한다.
- 위 심사위원 선정 결과가 사전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 또 그릴 대상 물건이 사전에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이건 당사자 또는 내부자가 유출하거나, 물품의 경우 대량의 물품구매가 실기 전날 이루어지므로 이 구매 담당 직원을 미행해서 알아낼 수 있다.
- 또는 눈치 빠른 도매 시장(장사하는 사람도 아닌 두세명이 와서 새우깡, 수세미, 고무장갑, 뭐 그런걸 1,000개씩 사니까) 직원도 이 시기에 이 물건이 어디에 사용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흔히 예상하는 심각한 부정은 특정 누구의 그림에 대한 점수를 의도적으로 높게 부과하는 것이므로 특정 누구의 그림인지를 하여간 인식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그림 채점 때 이름, 수험번호등 개인 정보는 철저하게 가려진다. 일부러 뒤집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뒷면에 이름/수험번호/바코드 등을 기록하며, 그림 수거 때 그 위에 포스트잇까지 붙여 ID를 가린다. 또 그림 안에 이름이나 번호, 특정 표식을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상상 표현에서는 아무거나 그릴 수 있으므로 특정 표식(예를 들면 다리가 세 개인 빨간 새)을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또 심사위원에게 전달될 것을 우려해서 실기 시험장에서는 절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지만 학생들이 시험 후에 자기가 그린 그림을 다시 한번 똑같이 그린 후 심사위원 후보들에게 사진 찍어 전달하기도 한단다.
이런 행위는 조직적인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실제 그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또 미술 전공 교수들이 직접 미술 학원을 할 수 없으니 그 배우자 동생 사촌 쯤 되는 분들이 학원을 운영하면서 이와 같은 검은 커넥션을 만들기도 한단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떠다니는 소문들이다.
실제 평가는 체육관 같은 넓은 장소에 모든 그림을 바닥/책상 위에 깔아놓고(20명 정원의 전공에 50:1이면 그림이 무려 1,000장이다),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되는’ 그림을 고르는 과정이다. 미술에 전혀 조예가 없는 내가 봐도 무지하게/독보적으로/정말/완전/천재적으로 잘 그린 그림이 몇 장 있다. 그런 그림들은 보통 ‘되는’ 그림으로 선택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 그림의 이유(설명, 스토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순전히 심사위원으로 오신 전문가들의 안목에 의존한다. 이 부분이 약간 애매하다. 전문가들의 안목에 모종의 일관성이 잘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각자가 모두 전문가이기 때문에 어떤 분이 이 그림은 ‘된다’고 주장할 때 다른 분이 ‘아닌데요’라고 힘주어 주장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전가의 보도인 최고점 최저점을 뺀 나머지의 평균이 그 그림의 점수가 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인의 안목에 치중되지 않도록 기술이 들어가는데, ‘되는’ 그림도 다시 상중하로 나누고, 상급의 되는 그림은 80점-100점, 중급의 되는 그림은 70점-90점, 하급의 되는 그림은 60점-80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주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특정 전문가의 과도하게 좋은 또는 나쁜 평가를 상당히 상쇄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기술적인 점수 부여 방법이 아니라 사실 표현, 발생 표현, 상상 표현 그림이 과연 미술이나 디자인 전공을 하려는 지원자의 예술적 감각이나 역량을 오롯이 평가할 수 있는가인데, 평가위원 가운데 동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또 적지 않은 분들의 의견은 ‘아닐 수도 있다’ 였다.
스토리가 같이 가지 않는 그림이 의미가 있을까? 예술과는 하나도 친하지 않은 나조차 알아볼 수 있는 예외적으로 잘 그린 그림이라면, 그 그림을 본 사람 자신이 느낀 것을 마치 그 그림을 직접 그린 사람이 의도했던 것처럼 이야기해도 말이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예술에도 역시 기술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높은 예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리기-색칠하기-깍기-파기가 잘 안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범상한 또는 상당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도 있고, 전문가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의 천재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자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할 방법을 차단당한 채로 평가를 받는다면 슬픈 일이다. 입시미술을 전형에서 폐지한 학교도 있지만 아직도 큰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상대평가 수능/내신 만큼이나 슬픈 일이다.
원문: 쉽게 살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