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을 보러 간 김에 같은 건물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을 다녀왔습니다. 별마당 도서관은 지난 5월 31일 스타필드 코엑스 메인 광장에 개관한 도서관으로, 화려한 모습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직접 책을 읽어보며, 생각해 본 인사이트를 정리해두고자 합니다.
1. 한국판 ‘리딩 엔터테인먼트(Reading Entertainment)’ 의 레퍼런스가 될 듯.
리딩 엔터테인먼트란 신조어로, 책을 읽고 즐기는 문화를 일컫는다. 책을 매개로 문화가 만들어지고 각양각색의 문화 행위들이 책을 중심에 두고 펼쳐지는 현상. 누구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앉은 채로 잡지를 보기도 하고, 누구는 노트북을 들고 와서 작업을 하기도 하고, 다른 누구는 가족들끼리 함께 와 옹기종기 모여 책을 읽는 등. 이런 문화적 행위들이 공간의 가치를 더해주는 듯.
사실 이런 리딩 엔터테인먼트의 선구적인 국가는 바로 일본. 책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곳으로 잘 알려진 ‘츠타야 서점’, 인구 5만 소도시에 위치해 있지만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다케오 시립 도서관’ 등 ‘책’을 주제로 도시 내 문화 시설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음.
츠타야 서점 관련 참고 :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을 팝니다 / 서점에서 ‘제안’과 ‘편집력’이 가지는 힘
2 .목적성 없이 ‘여분의 시간’을 가진 잠재적 쇼핑 소비자를 노린 듯.
코엑스는 대대적인 리뉴얼 이후 재오픈을 했지만 예전만 한 명성을 얻지 못함. 이를 타개하고자 코엑스를 인수한 신세계는 ‘스타필드’라는 복합쇼핑몰 브랜드를 코엑스에 붙였고, 이와 함께 ‘별마당 도서관’을 오픈 함. 별마당 도서관이 있는 곳은 그야말로 코엑스의 황금 싸라기 땅. 모든 통로가 만나는 메인 스퀘어임. 이 곳의 1, 2층을 ‘돈’ 안되는 도서관으로 만들었지만 결국 이 선택은 코엑스의 공간적 가치를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짐.
쇼핑몰의 기본적인 역할은 ‘쇼핑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원하는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잘 받아주는 곳’ 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코엑스는 별마당 도서관을 통해 ‘특별하게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책을 보러 올 수 있는 곳’으로 역할을 변경함.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상에서는 쇼핑을 목적으로 잡은 시간보다 할 일 없는 잉여시간이 더 많음. 이 시간만 코엑스가 잡을 수 있다면 공간 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음.
3. 규모감있는 서재로 인스타그래머블 장소로 만듬.
사실 서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생각보다 매우 크다. 손에 닿지도 않는 부분이 많다. 이 공간을 만약 일반 도서관 서재처럼 만들었다면 훨씬 더 많은 책이 수용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규모감 있는 서재로 인증샷 찍기 딱 좋은 곳으로 만들어서 특별한 이벤트나 행사 없이도 자체적인 바이럴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이 곳에서 사진 찍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4.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들었을 생각. “근데, 책을 누가 가져가면 어떻게 하지?”
여기 별마당 도서관은 누구나 책을 열람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 가게 처럼 상품을 결제 없이 들고 나갔을 경우 경고음이 울리는 보안 시스템도 없다. 그냥 읽다가 가방에 넣고 나가도 모른다. 책마다 RFID칩이 심어져 있지도 않다. 신세계 측은 이런 책 도난의 위험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감수 하겠다고 발표했다.
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럴까? 생각해보니 신세계는 “여기 별마당 도서관에 있는 책이 모두 없어져도 된다” 라는 결정을 내리고 도난에 의한 손실까지도 운영비에 포함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얻고자 하는 건 ‘오픈형, 개방형 공간’ 이라는 점. 누구나 쉽게 책에 접근하고, 어느 자리에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함이 아닐까? 그 의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만들려는 것 같다.
5. “왜 하필 책일까?” 고민해보면 사실 책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적합한 콘텐츠이다.
코엑스를 방문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젊은 층이지만 젊은 층만 사로잡기에는 새로 생긴 복합쇼핑몰들이 너무 많다. 파주 아울렛, 스타필드 하남, 그리고 새로 생기는 스타필드 일산까지. 젊은층 뿐만 아니라 가족, 중장년층 등도 품을 수 있는 문화 시설로 만들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
6. 왜 1층은 잡지섹션이고 2층은 일반 서적 섹션일까?
아마도 1층을 잡지섹션으로 만든 이유는 다양한 분야의 잡지를 통해 트렌디해보이려는 것과 동시에 회전율을 빨리 하기 위함인 것 같다. 일반 책보다는 잡지를 훨씬 더 빨리 읽고,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매체적 특성때문인 것 같다. 이에 반해, 2층을 일반 서적 섹션으로 한 건 오랫동안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도서관’ 다운 느낌을 만들 수 있기 떄문인 것 같다.
7. 책은 거들 뿐, 이 공간을 의미있게 만드는 건 휴먼 인프라(Human Infrastructure)적 요소.
별마당 도서관의 책상과 좌석에는 콘센트가 구비되어 있음. 얼마든지 오랫동안 앉아서, 전자 기기를 가지고 생산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의미임. 그 덕에, 노트북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사람, 휴대폰 충전을 하면서 인강을 보는 사람 등의 모습을 이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일반 카페들이 ‘카공족(카페 공부 족)’을 몰아내기 위해 콘센트 구멍을 없애버리는 것과 비교하면 ‘의외’이다.
아마, 스타필드는 이 곳에서 다양한 모습이 연출 될 수 있도록 인프라적인 지원을 충분히 하고 이를 활용하는 ‘휴먼 인프라’를 통해 문화적 파워가 느껴지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 같다. 책은 거들 뿐, 이 곳의 방문객 모습이 진짜 별마당 도서관의 모습이 되길 바란 게 아닐까 싶다.
누구나 이곳 테이블에 자유롭게 앉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