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아마추어인 제가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것 자체가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주제넘은 짓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야기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이것…
사진의 평가방법
입니다. 일단, 예술적 철학적 그리고 사회 문화적 사진의 평가방법에 대해서는 까놓고 말해, 제가 논할 방법이 없습니다. 뭘 알아야 하는 건데 제가 모르니까요….
진정한 예술 사진이나 전문가다운 사진 평가에 대해 정말 본격적으로 알고 싶으신 분은 진동선 교수님, 신수진 교수님 같은 전문가분들의 저서나 기고 글, 롤랑 바르트 같은 해외 저명 인사들의 글을 읽으시는 게 좋습니다.
제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정말 정말 얕은 단계… 하지만 그 얕은 단계에서나마 수년에 걸쳐 어느 정도 정립된, 저같은 아마추어들의 사진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워낙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시작하면서도 겁부터 납니다. 이런 민감한 부분에 대해 저 같은 아마추어가 조금이라도 잘못 말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어디선가 누군가들에게 돌려 까이기 마련인지라… 뭐,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저 대신 이런 글을 적어줄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기 때문에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제 하고 싶은 소리를 용기 내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단, 이하의 사항들은 ‘기본’에 해당하는 부분들입니다. 보다 더 큰 목적성과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고의적으로 어겨도 상관없는 부분들이란 의미죠.
1. 초점이 맞아야 합니다.
별거 아닌 듯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초점 원하는 부분에 맞출 줄 알면 이미 중수라고 생각합니다. 심도가 깊지 않은 사진일수록 초점이 정확히 맞아야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2.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별거 아닌 듯 가장 어려운 부분 중 둘입니다. 적절한 셔터속도를 어떻게든 확보하여 사진이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3. 가급적 입자가 깔끔해야 합니다.
별거 아닌 듯 가장 어려운 부분 중 셋입니다. 감도를 낮출수록 깔끔하기 마련인데, 감도를 낮춘다는 건 결국 셔속 확보를 위태롭게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게 삼각대나 플래시 같은 건데 귀찮다고 느끼시는 분이 많아서…. 보정을 할 때 질감 강조나 샤픈을 너무 심하게 주어도 픽셀이 뭉쳐 보기 싫게 됩니다.
4. 수직 수평이 어느정도 맞아야 합니다.
특히 풍경 사진에 있어 어지간히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수직 수평이 어긋나는 순간 보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평가할 때 가장 감점요소가 되기 쉬운데 주의하지 않으면 찍을 땐 잘 모르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5. 계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소위 말해 명암이 계단처럼 떡지는 사진입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출력한 후입니다. 이런 사진을 출력해보면 들여다보기도 싫을 만큼 사진이 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6. 다이나믹 레인지가 좁고 컨트라스트가 지나치게 강하다.
5번과 연관성이 깊은 부분입니다. 가장 밝은 영역과 가장 어두운 영역 사이의 간극이 좁고 그 대비가 급격하고 가팔라서 보는 이의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7. 심도가 지나치게 깊고, 필요 이상의 정보가 프레임 속에 존재한다.
바꿔 말해 제대로 덜어내지 못한 사진들을 의미합니다. 사진이 괜히 덜어냄의 미학이 아니니까요. 무엇이 주가 되는지 알 수 없는 난잡한 사진들을 말합니다.
8. 외부 조명을 사용했다는게 지나치게 티난다.
위에서 플래시나 삼각대 사용이 중요하다 했지만, 중요하다고 해서 장비를 쓴 티를 지나치게 내면 오히려 감점입니다. 자연스럽게… 쓴 듯 안 쓴 듯 알아채지 못할정도로, 그러나 쓰지 않은 것과는 확실히 완성도에서 차이가 존재하는.. 그정도가 딱 좋습니다.
9. 심도가 지나치게 얕고, 주피사체 말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선 매우 바람직한 케이스라 할 수 있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그저 비싼 렌즈의 얕은 심도를 자랑만 할 의도로 찍은 사진은 평가의 대상조차 되기 어렵습니다. 거리에 따라 피사계심도를 ‘적절하게’ 확보하는 것이 바로 실력입니다. 특히 접사 등에 있어서는 어떻게든 심도를 깊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10. 주제를 표출하기 위한 적정노출이 이뤄지지 않았다.
적정노출은 그냥 노출계가 18% 그레이에 있을 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사가 전달하길 원하는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진 전체의 균형 잡힌 노출이죠.
11. 프레임안에 다크홀과 화이트홀이 많다.
RGB 값이 0 혹은 255에 수렴해 색정보를 잃은 영역에 해당하는 다크홀과 화이트홀이 사진에 특별한 의도 없이 존재하면 아무래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보통방법으론 보정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뒤늦게 수습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12. 색상, 채도, 명도 각 파라메터값이 과도하게 높거나 낮다.
낮은 건 차라리 나은데, 높으면 촌스러움이 두드러지는 것이 이 값들입니다. 그렇다 해서 의미 없이 낮기만 하면 그것도 결점이 됩니다. 뭐 채도가 낮으면 흑백이 되는데 그게 무슨 결점이냐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흑백사진을 만들 때에도 채도를 빼기만 하는 것이 상책은 아닙니다…
13. 주변부광량저하, 배럴/핀쿠션 디스토션, 고스트, 플레어, 상면만곡, 색수차가 많다.
때로는 사진에 있어 감칠맛을 더해주는 것이 이러한 광학 결함들이지만, 감칠맛에 이르지 못한 결함은 그냥 결함일 뿐입니다. 단순히 광학장비의 성능이 부족해서라기보단 그 부족함을 메꿀 실력이 부족한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니까요.
14. 인물사진에 있어 캐츠아이, 배경분리, 크롭실패
눈에 광택이 없어 죽은 동태인 양 생동감이 없고, 배경과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인물이 전혀 돋보이지 않는데 억지로 하는 크롭은 관절이 잘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좋은 평가는 듣기 어렵습니다.
번외. 목적달성 여부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아무리 아마추어 사진이라 할지라도 셔터를 누르는 데에는 목적이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대표적으로 찍는 사람 혹은 찍히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던가, 공모전 같은데 내서 상을 타는 데 성공했다던가, 대가를 받고 고객의 추억을 담아 기쁘게 해준다던가, 온라인 상점용 옷이나 악세사리 상품사진을 찍었다면 매출이 증가한다던가.
그도 아니라면 자기 혼자 모니터 보며 ‘오 내가 찍었지만 대단해~’ 하고 자기만족을 한다던가, 페이스북이나 게시판 등에 올리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좋아요를 많이 받는다던가 등등…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바로 그 셔터 누른 목적의 달성 여부. 그것을 달성했다면 사실 누군가의 평가는 거의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다만 달성조건 중 상당한 부분이 누군가의 평가로 결정 된다는 것이 적지 않긴 하지만 말입니다.
물론 결함이 없는 사진이 좋은 사진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답은 없어요. 예술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역시 위의 요소들은 언제든 무시될 수 있고, 의도적으로 바꿀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했듯, 이것은 사진의 표면만 놓고 볼 때의 이야기들입니다. 해당 사진이 건드리는 사회적 문화적 테마, 인간이나 자연에 대한 고찰… 철학적 그리고 예술적 해석과 해설등은 이와는 또 별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요.
사진에는 바로미터가 없는 만큼, 제 글은 참고로만 삼으시고 자신이 즐거운 사진을 찍으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취미 생활 되시길 바랍니다.
원문: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