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 이유가 있다. 영원성, 생명, 현실의 놀라운 구조를 숙고하는 사람은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매일 이러한 비밀의 실타래를 한 가닥씩 푸는 것으로 족하다. 신성한 호기심을 절대 잃지 말라. – 아인슈타인
1. “질문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다 보니 가장 빈번하게 받는 질문이다. 일단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내 답이다.
무엇인가를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시작을 막는다. 일단 시작하고 지속하다 보면 실력은 늘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실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곤 한다. 좋은 질문을 하려고 머뭇거리다가, 질문이 필요한 순간을 놓쳐버리는 것을 우리가 자주 범하는 실수가 되곤 한다.
잘하지 못해도 좋다. 일단 이렇게 질문을 시작해보자.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글을 쓰려면 퇴고를 거듭해야 한다. 하지만 퇴고를 하려면 먼저 무언가를 써야 한다. – 바바라 애버크롬비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2.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일까요?”
질문 형태로 제시되는 주장을 조심하라. – 대니얼 데닛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일단 질문을 시작했다면 좋은 질문을 할 때도 있고, 나쁜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물음표만 붙였다고 좋은 질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은 언제 하지?’, ‘취직은 됐니?’, ‘공부는 언제 할 거니?’, ‘이번 달 매출목표는 잘 달성되고 있나요?’ 이런 류의 질문들을 받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피곤해진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주장을 강요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은 답답하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은 가짜다.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질문은 가짜다. 호기심이 없는 질문은 가짜다. 그것들은 질문을 가장한 오만이다.
로마 황제 마루크스 아우렐리우스가 평생 스승으로 흠모했던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배울 수 없다.’ 고 단언했다. 질문하는 것을 그토록 어려워하거나, 질문받는 것을 기피하게되는 이유 중 하나는 학창시절부터 ‘정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질문들’에 고통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가지 정답에 익숙해지도록 자랐지만 좋은 질문의 답은 하나 이상이라는 점을 종종 망각하곤 한다.
좋은 질문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인가? 우리는 언제 질문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가 함께 당면한 과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은 무엇인가?
현재까지 답을 찾지 못한 것,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나누기 위해 필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먼저 끄적여보자. ‘그리고, 또?’. 좋은 질문이든 나쁜 질문이든 고민하고, 탐구하고 소통할만한 가치 있는 질문들이 나올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비결이다.
그리고, 또 어떤 질문이 필요할까?
남다른 질문을 찾을 때까지 질문하기를 뒤로 미루겠다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사무엘 바케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를 키워주는 것은 더 나은 실패뿐이다.’ 나쁜 질문이라도 좋으니 일단 질문을 계속해보자. ‘혁신가의 질문’을 탐구하며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수없이 많은 시도와 실패라는 기반이 없이, 단 한 번의 시도로 이루어지는 혁신 따위는 없다. 기억하라, 혁신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3. “어떤 질문이 답할 가치가 있는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배울 수 없다. – 에픽테토스
좋은 질문이 나올 때까지 이렇게 물어보자.
-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 “그리고, 또 어떤 질문이 필요할까?”, “그리고, 또….. ”
- “이 질문들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본다면?”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걸작인 다비드상을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에, 그저 대리석에서 다비드가 아닌 부분을 제거했을 따름이라고 답했다. 수없이 많은 질문들 중 나쁜 질문들을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좋은 질문이 드러난다. 질문을 혁신하려면, 더 많은 시도와 실패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질문이 답할 가치가 있는가?’이다.
어떤 질문이 답할 가치가 있을까?
원문: 질문술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