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내부 필자의 글도 본지 편집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나가던 편집위원 1: 그런데 본지 편집방침이 뭐죠?
편집장: 본지에 편집방침 같은 건 없습니다.
지나가던 편집위원 2: 본지 편집방침에 대한 제보 받습니다!!!
글-김용길(<편집의 힘> 저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전력생산 능력을 앞세우고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표방하며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도입했다. 반세기가 지난 후 김일성수령주의만 남고 3대째 세습독재만 횡행하고 있다. 남쪽은 최빈국 농업국으로 참으로 가난하게 출발하였다.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6.25 폐허 위에서 시장경제의 씨앗을 뿌렸다.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를 쉴 틈 없이 밟아왔다. 세계 8위의 무역대국으로 압축성장한 한국은 싸이의 말춤처럼 세계로 질주하고 있다. 건국 65년 만에 북쪽은 암흑이고 남쪽은 불야성이다. 역사는 편집이다. 역사의 공간인 한반도는 향후 어떤 편집력으로 디자인될 것인가.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스스로 편집하지 않으면 외부의 힘에 의해 편집당한다.
일본 최초 에디토리얼 디렉터(Editorial Director)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 편집공학연구소 장은 지식독서법의 대가다. ‘지(知)의 편집공학’ ‘지식의 편집’ 등의 저서로 한국에도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의 관심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편집공학’(Editorial Engineering)이다. 마쓰오카 소장은 신문·서적·텔레비전·영화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편집’의 의미와 용법을 더욱 확장시켰다.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서 정보를 얻을 때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두 편집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삶에서 편집의 순간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일기를 쓰는 것도,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저녁 식단을 짜는 것도, 축구경기 하는 것도 편집이다. 생각하는 것이나 쓰는 것도 편집이다. 심지어 생명체 활동의 본질 자체가 정보 편집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는 편집이란 “대상의 정보 구조를 해독하고 그것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생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나아가 일본이란 나라를 아예 ‘편집국가’로 정의 내렸다. 이 개념을 기반으로 편집력을 재정의 해본다면 “산재한 팩트와 스토리를 취사선택 가공하여 완결된 콘텐츠로 종합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왜 편집력이 필요한가
과거 현재 미래가 3각 파도로 덮치고 있다. 지난날은 씁쓸했고 오늘은 버겁고 내일은 불확실하기만 하다. 못 다한 회한이 쌓여서 그런가. 과거는 열등감으로 깜박거린다. 전전하는 생계의 굴레에 갇힌 현재는 변화의 급물살에 허둥대고 있다. 모든 게 흔들리고 불안정하니 미래는 잿빛이다. 국가가 체제가 시민사회가 지역공동체가 회사가 학교가 내게 진정한 행복과 위안을 줄 수 있을까. 사실 모든 것은 개인 스스로 말미암고 스스로 절차탁마할 몫이다.
눈앞의 한 권의 책을 두고 읽을지 말지를 판단해야 한다. 영화 한편 연극 한편 TV드라마 한편을 감상할지 말지를 분별해야 한다. 새로 소개받은 만남의 인연을 지속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 지식과 지혜라고 일컬어지는 정보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세상을 다 얻은 듯 컴퓨터 화면을 여러 개 켜놓고 둘러보아도 삶은 제대로 조망되지 않는다. 오늘 내가 지켜본 모니터화면의 개수가 도대체 몇 개였던가. 수백 수천 장의 디지털 정보 화상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판단 분별 선택이란 행위가 나의 하루를 채웠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바쁜 현대인. 스스로 좋아서 바쁜 것이 아니라 변화의 쳇바퀴에 갇혀 무작정 내달린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변화의 파도가 밀려온다.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뉴스 업데이트를 알려준다. 오전 뉴스는 오후 뉴스에 쫓겨 몇 시간 살지 못하고 사멸한다. 디지털 미디어 기기들이 끝없이 신제품의 얼굴로 들이닥친다. 다매체 다채널 SNS 시대. 정보 업데이트 중독증에 빠진 현대인은 점차 경중완급을 분별하지 못한다. 진지함에 둔감해지고 변화의 속도에 치인다. 일상의 사리분별력도 희미해진다. 내가 정보의 주인인지 정보의 노예인지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다.
바로 이때가 편집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편집력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고 무작위로 널려진 것을 재배치 재배열하여 질서를 부여한다. 여럿 중에 핵심을 선택하고 먼저 세울 것과 나중 세울 것을 분류한 다음 제각각 본질에 걸 맞는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편집이다. 즉 편집의 3대 기능은 ① 선택 분류 ② 가치 부여 ③ 이름 짓기다. 선택-분류-명명의 작업과정은 따로 떼어지지 않고 물과 물고기처럼 밀착되어 있다.
삼라만상을 편집하다는 것은 그 존재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행위다. 개체는 생존을 위협하는 외부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시 하며 생존능력을 최적화시킨다. 최적화는 넘치는 것은 줄이고 부족한 것은 채워 타고난 기질과 개성을 바탕으로 생존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상태다. 존재는 끊임없는 편집의 결과다. 일상은 편집의 연속이다. 우후죽순 얽힌 만남을 가지런하게 가닥 잡고 소중한 인연은 더욱 도탑게 다독이는 과정이 관계의 편집이다.
편집력을 갖춘 조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비즈니스 성패도 편집력에 좌우된다. 고객의 미래를 내다보고 수요처와 공급처를 선점한다. 범용 시장이 아닌 차별화된 시장을 지향, 고객의 니즈에 맞는 특화된 서비스와 콘텐츠를 발굴하는 능력이 비즈니스 편집력이다. 일이 터지면 오히려 강해지는 조직은 뭔가 다르다. 유형무형의 정보창고를 양적으로 많이 확보한 조직이 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산재한 지를 파악한 조직이 문제 접근, 문제 분석, 해결책 제시, 실천 돌입, 방법론 평가 순으로 내부 순환이 원활하다면 편집력을 갖춘 조직이다.
문제를 개념화할줄 알고 실천가능한 방법론을 일목요연하게 추려내는 조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편집 감각을 갖추고 있으면 위기대처능력이 증강되고 평범한 것에서도 고부가가치를 뽑아낼 수 있다. 동시에 편집력은 결단력이기도 하다. 위중한 시기에 분리된 것을 이어붙이고 애매모호한 것을 두 동강 내 확연히 가르는 것도 편집력이다.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타인들의 눈치만 보는 비겁한 형국에서 먼저 공익적 가치를 간파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명쾌하게 설파하는 리더십은 결단력의 요체다. 비전 제시 리더십은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교감을 주고받는 편집력의 핵심이다.
종합일간지에서 뉴스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뉴스는 우리 사회를 기록하고 감시한다. 뉴스와 떼려야 뗄 수없는 세상을 늘 ‘편집의 눈’으로 봐라봤다. 따로따로 떨어진 것들을 묶는다면 어떤 의미변화가 생길까. 유사하게 보이는 것들을 어떤 본질적 공통점으로 추려볼 수 있을까. 발생한 사건과 사고를 어떤 이름으로 명명해야 사회적 메시지가 제대로 담길까. 보편타당한 기존의 개념 정의 말고 전혀 다른 차원의 관점은 없을까. 뉴스는 쉬지 않고 발생한다. 취재기자는 24시간 달리며 뉴스를 생산한다. 동시에 뉴스편집자도 잠들지 않고 크고 작은 뉴스를 변별하고 분류하여 의미부여를 한다.
세상은 분야가 있고 순서가 있다. 어떤 장르의 과업이든 매뉴얼이 있고 비법이 있다. 문제해결의 첫 단추는 벌어진 사태를 차분히 응시하면서 흥분된 현장 속에서 본질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사실의 조각 진실의 조각을 하나하나 수집한다. 동시에 먼저 해야 할 것, 나중에 할 것을 선별한다. 장황한 것엔 진실과 허위가 섞여있다. 틈새 사이로 쓸모없는 것이 끼여 들여 있다. 헛것을 추려내고 거품은 꺼뜨려야 한다. 바로 압축이 필요한 이유다. 본질만 남기고 몸집을 줄였다면 군더더기 없는 태그를 달아라. 명료한 깃발에 새겨진 태그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최고의 헤드라인이 된다.
2013년 8월에 발간된 이 책은 독자의 편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쓰여 졌다. 일상의 곳곳에서 편집의 힘을 발견해본다. 편집력 비결을 익히고 나면 보고서 하나 작성할 때도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무대에 설 때도 남은 인생 이모작 설계를 할 때도 허둥대지 않고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지금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일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헤아려보는 것이 편집마인드다. 한 권의 책을 무작정 늘릴 수 없다. 책 한권에 담을 만한 적정 콘텐츠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편집자이다. 정보가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넘쳐나서 문제가 생기는 시대다. 무시해야할 정보와 버려도 될 뉴스를 즉각 판단하는 힘이 편집력이다. 시사 상식을 넓히고 시사 이슈를 잘 선별할 수 있으려면 편집자 마인드를 익혀야 한다. 편집자는 무슨 사건이 뉴스가치를 지니는지, 어떤 일이 보도할 가치를 갖는지 즉각 판단해야 한다. 동시에 100개의 뉴스에서 꼭 먼저 보도할 10개의 뉴스를 추려낼 줄 알아야 한다. 최종적으로 미디어 전면에 내세울 톱뉴스를 결정하며 뉴스가치를 증명할 뉴스 상품력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민첩한 뉴스콘셉트 파악은 기본이고 강력한 헤드라인은 필수다. 편집자 마인드를 키우려면 다음 세 가지를 중시하고 평소 내공을 길러놔야 한다.
1. 뉴스를 경청하고 세상을 스케치해보라
스마트폰이 세상 모든 이에게 시시각각 뉴스를 알려주는 시대다. 자신의 이해관계만으로 뉴스가치를 변별하면 뉴스의 맥락을 따라잡지 못한다. 개별뉴스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큰 뉴스와 작은 뉴스 사이 숨겨진 맥락을 잡아채야 한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를 간파하는 실마리는 뉴스 맥락 잡기가 첫 단추다. 지겨운 뉴스라지만 세계 스케치의 필수도구다.
2. 선별 압축해서 키워드를 달아라.
세상은 분야가 있고 순서가 있다. 초급자가 단번에 고수가 될 수 없다. 어떤 장르의 작업이든 매뉴얼이 있고 비법이 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벌어진 사태를 차분히 감당할 줄 아는 것이다. 즉 먼저 해야 할 것, 나중에 보완 할 것을 선별한다. 장황한 것엔 진실과 허위가 섞여있다. 틈틈 사이로 쓸모없는 것이 끼여 들여 있다. 헛것을 추려내고 거품은 꺼트려야 한다. 바로 압축이 필요한 이유다. 본질만 남기고 몸집을 줄였다면 군더더기 없는 태그를 달아라. 명료한 깃발에 새겨진 태그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최고의 헤드라인이 된다.
3. ‘편집 명품’ 신문 읽기가 지름길이다.
인터넷을 떠도는 모든 뉴스의 고향이 바로 신문이다. 세상을 이끄는 리더는 모두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다. 신문은 무엇이 가장 시급하고 어떻게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고 미래의 비전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시사해준다. 신문은 심층기획, 집중취재, 입체편집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브리핑을 해준다. 아직까지 신문처럼 확연하게 의제설정(agenda setting)기능을 수행하는 미디어는 없다. 오늘의 의제를 알고 싶은가. 신뢰 가는 신문을 집어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