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은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최고의 전성기였다.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비단 프로야구뿐만이 아니였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여유와 풍요로움으로 넘쳐났다.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여 탄탄대로만 달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 맞춰 탄생한 공룡 같은 구단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못 가진 자의 설움에 시달려야 했던 인천 연고팬들의 한(恨)을 시원하게 씻어내줄 만한 구단이 탄생한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에 이어 인천 구단의 바통을 이어받은 구단의 주인은 다름 아닌 당시 재계 1위의 거대 기업 현대였다.
역대 인천 연고 구단 중 가장 탄탄한 재력과 지원을 바탕으로 한 구단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금액은 무려 470억 원. 지금 시세로 전환한다면 700억 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현대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할 당시 프로야구는 사상 최초로 500만 관중 시대(1995년)를 열었고, 평일에도 빅게임이 펼쳐지는 날이면 모든 구장이 만원 관중으로 빼곡히 들어찰 정도였으니 프로야구 진출에 적극적이었던 현대로서는 거침없이 배팅을 감행할 만한 금액이었다.
현대 유니콘스는 태평양 돌핀스라는 모체 위에 ‘현대 피닉스’라는 분신을 더하여 전력의 업그레이드를 감행한다. 94년에 창단된 실업 야구팀 현대 피닉스는 당시 아마야구의 대어급 선수들인 문동환,안희봉,문희성,김재걸,조경환 등을 싹쓸이한다. 이미 이때부터 현대는 프로 진출을 위한 포석을 둔 셈이었다. 아마야구팀 현대 피닉스의 금전 공세에 기존 프로야구단들은 대어급 유망주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거액의 계약금을 베팅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현대 피닉스에 위약금을 물어주면서까지 빼오는 무리수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95년 삼성에 입단한 김재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그의 계약금은 95년 신인 최대어였던 LG 심재학의 계약금과 동일한 2억 1천만 원. 당시로선 파격적인 액수였다. 그러나 2억 1천만 원 중엔 현대 피닉스에 물어줘야 할 위약금 1억원이 포함된 것이었다.
이후 현대 피닉스는 95년에도 박재홍과 강혁이라는 대어급 선수들을 수급하며 프로야구단 못지 않은 전력을 갖춘 공포의 팀으로 군림하기 시작한다.
현대 피닉스의 존재는 96년 현대 유니콘스 창단 당시 선수 공급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특히 95년에 영입한 박재홍을 끝까지 붙잡으면서 연고구단인 해태 타이거즈에게 투수 최상덕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감행한다. 해태 타이거즈는 박약한 구단 살림으로 인해 박재홍을 눈앞에서 놓치게 되는 아쉬움을 감수한다.
태평양 돌핀스는 만년 약체팀의 이미지였지만, 94시즌에는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만만찮은 전력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90년대 초반부터 정민태,김홍집,위재영 등의 대어급 투수들이 연이어 신인 1차 지명으로 뽑히면서 투수진 강화의 기반을 다져나간다. 여기에 아마공룡 현대 피닉스를 통해 수급한 박재홍이라는 대형타자의 가세는 현대의 마스코트인 유니콘스 뿔을 한층 강하게 다져주는 원동력이 된다.
기존의 약체 이미지를 훌훌 벗어버리고 프로야구의 새로운 강자로 군림하게 된 현대 유니콘스는 기존의 인천 연고구단이 보여줬던 나약함과 설움의 이미지하고는 너무나도 상반되었기에 이 팀의 MOST IMPRESSIVE SEASON을 따로 다루기로 결정하였다.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말년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게 프로야구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던 현대 유니콘스의 12시즌(1996-2007)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시즌을 회고해 본다.
그때 그 선수들
1995년 11월 본격적으로 프로 무대에 입성한 현대 유니콘스의 초대감독에는 태평양 돌핀스 코치 김재박이 내부 승격을 통해 취임하게 된다. 현역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라는 닉네임을 지녔던 김재박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의 조직력을 짜임새 있게 다듬는 데 중점을 두는데, 이후 김재박 감독과 함께한 11시즌 동안 현대 유니콘스는 8개 구단 통틀어 가장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난 공격진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96시즌 시작과 동시에 유니콘스는 4월, 5월, 6월 내내 선두권을 유지하면서 창단 첫해 돌풍을 몰고 온다. 시즌 전만 하더라도 94, 95시즌 챔피언을 나눠 가진 서울 라이벌 LG트윈스와 OB 베어스, 그리고 백인천 감독을 새로 영입하며 전력을 추스린 삼성 라이온즈 그리고 95시즌 준우승을 차지했던 롯데 자이언츠 등이 상위권을 꼽혔으나 간판을 완전히 바꾼 유니콘스 및 또 다른 ‘꼴찌 라이벌’ 쌍방울 레이더스가 김성근 감독의 지휘 하에 완전히 바뀐 모습으로 돌풍을 몰고 오면서 시즌 전의 예상은 말 그대로 예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해 7월 이종범이 복귀한 타이거즈가 신들린 듯한 12연승으로 선두를 탈환하기 전까지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유니콘스의 돌풍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공격진의 업그레이드이다. 두터운 투수진에 비해 허약하기 그지없었던 타선은 ‘괴물타자’ 박재홍에 의해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아마 시절부터 ‘리틀 쿠바’로 불리며 괴력을 과시했던 그는 프로 입단 첫해 도무지 신인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을 활약을 펼친다. 양준혁, 이종범, 김기태, 장종훈 등의 기라성 같은 타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친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30-30′(30홈런-30도루) 클럽에 오르는 금자탑을 이룬 박재홍은 30홈런(리그 1위), 108타점(리그 1위), 36도루(리그 4위), 타율 0.295(리그 9위), OPS(장타율+출루율) 0.929 (리그 4위)에 오르는 등 공격 전부문에 걸쳐 상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그의 공격력이 얼마나 영양가가 높았는가를 입증하는 부분은 타점 2위 양준혁이 87타점을 기록했는데, 홈런은 박재홍에 불과 2개 뒤진 28개를 쳐냈다. 그만큼 홈런 대비 타점 생산력이 상당히 높았음을 입증한다.
박재홍이 중심타선에 자리하면서 기존 선수들에 대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 ‘인천야구의 간판 거포’ 김경기는 2년 만에 20홈런을 달성하면서 중심타선의 무게중심을 잡아주었으며, ‘중거리 타자’ 이숭용은 입단 3년차만에 풀타임 주전을 꿰차며 특유의 날카로운 타격을 과시하였다. 1번 타자 자리는 입단 8년 차 중고참 김인호가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면서 훌륭하게 메워 주었다.
96시즌의 유니콘스는 ‘괴물’ 박재홍 외에 팀의 10년 농사를 좌지우지할만한 또 다른 대형신인을 얻는 소득을 누리게 된다. 인천고를 졸업하고 고졸 우선지명으로 입단한 박진만이다. 김재박-류중일-이종범의 계보를 이을 만한 대형 유격수로 지목받은 그는 공교롭게도 대형 유격수의 원조 김재박 감독을 스승으로 맞이하며 진화를 거듭한다. 입단 첫해부터 풀타임 주전을 꿰찬 그는 6홈런 38타점, 타율 0.283의 성적을 기록하며 공, 수 양면에서 팀에 큰 공헌을 한다.
박재홍의 활약은 시즌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다. 사상 최초의 정규시즌 최우수 선수 및 신인왕 등극이 조심스레 점쳐지기도 했으나, 92시즌 송진우 이후 4년 만에 다승과 구원왕을 석권한 한화 이글스의 구대성에게 최우수 선수 자리를 내준다.
정확히 10년 뒤인 2006년, 이번에는 타자가 아닌 투수에서 대형 ‘괴물’이 등장하게 되는데,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이 입단 첫해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을 석권하며 사상 처음으로 최우수 선수와 신인왕을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1996시즌의 박재홍의 활약은 2006시즌의 류현진 못지않은 화제였음에는 분명하다.
유니콘스 돌풍의 두 번째 요인은 확실하게 안정된 마운드이다. 92시즌 입단 당시 인천야구의 미래를 환하게 비춰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부상으로 인해 기나긴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정민태는 돌핀스에서 유니콘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었다. 96시즌 마침내 팀의 1선발로 자리 잡으면서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리수 승수(15승)를 거뒀으며 가장 많은 이닝(210.1 이닝) 소화, 2점대의 빼어난 평균자책점(2.44)을 기록하며 아마시절의 명성을 확실하게 회복한다.
정민태의 재기의 이면에는 92시즌부터 95시즌까지 돌핀스 사령탑을 맡았던 정동진 감독의 각별한 보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만약 눈앞의 성적에 급급한 나머지 재활이 덜 된 정민태를 무리하게 가동 시켰으면, 훗날 대한민국의 대표적 우완 에이스로 거듭난 정민태의 모습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95시즌 무너진 마운드를 홀로 지켜내던 위재영은 ‘2년 차 징크스’를 보란 듯이 날리며 꾸준한 활약을 선보인다. 정민태와 더불어 원투펀치로 마운드의 높이를 형성한 그의 성적은 12승 7패 평균자책점 2.72 – 2선발로서 손색없는 성적이었다. 최창호(8승), 가내영(8승), 전준호(6승) 등이 3~5선발로서 꾸준한 활약을 보였으며, 중간 계투진은 시즌 최다 경기(68경기)에 등판한 조웅천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1990년 입단 이후 6시즌 만에 프로야구 인생의 꽃이 만개한 것이다. 이후 그의 활약은 역사에 남을 만한데, 투수로서 역대 최다 경기 출장기록을 여전히 수립 중이다. 돌핀스 시절부터 뒷문을 지켜온 정명원은 변함없이 뒷문단속을 확실히 하며 8승 5패 26세이브 평균 자책점 1.58의 호성적을 거둔다. 항상 맨 끝에 나와서 던지던 그가 10월 대한민국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고를 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해태 타이거즈와의 대접전
시즌 초반 1위를 질주하다 후반기에 힘이 달리는 모습을 보이며 시즌 4위 (67승 54패 5무)로 가을 무대에 진출한 유니콘스는 포스트 시즌에서 새로운 드라마를 써간다. 구대성이 버티고 있던 이글스를 상대로 15-0, 4-2 의 완승을 거두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유니콘스는 창단 후 처음으로 가을 무대에 진출한 쌍방울 레이더스와 맞붙게 된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1차전 마무리 정명원이 박철우에게 끝내기 솔로 홈런을 내주면서 서전을 내준 유니콘스는 2차전마저 1-3으로 내주며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러나 위기의 유니콘스에 구세주 역할을 한 투수는 다름 아닌 좌완 최창호이다. 2패로 몰린 3차전에서 무실점 역투를 펼친 그는 3-0 승리를 이끌며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고, 플레이오프 역사상 처음으로 2패 뒤 3연승이라는 기적을 연출하며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올해로 36년째를 맞이한 KBO리그 플레이오프에서 2패 후 리버스 3연승을 기록한 팀은 1996년 현대가 처음이었으며, 이후 2009년 SK 와이번스가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리버스 스윕을 기록한 것이 유이한 사례로 남아 있다.
한국시리즈의 상대는 리그의 최강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이 일본으로 진출하고 중심타자 김성한이 은퇴했지만, 에이스 이대진을 위시하여 이강철, 조계현, 김정수 등 어느 팀에 가도 에이스 대접을 받을 내노라하는 이름들로 구성된 투수진에, 1번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4번타자 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준 ‘바람의 아들’ 이종범을 비롯 홍현우, 이호성, 이순철, 이건열, 박재용 등이 주축이 된 타선은 좀처럼 빈틈이 보이지 않는 막강 전력이었다. 94시즌 돌핀스 시절에 이어 2번째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유니콘스는 신임 김재박 감독이 과연 ‘백전노장’ 김응용 감독을 상대로 얼마만큼 선전을 펼칠지의 여부가 관심거리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여우’는 ‘백전노장’을 홀리면서 그로기 직전까지 몰고 갈 뻔 하는 대접전을 연출한다. 96한국시리즈 최고의 백미는 역시 4차전이다. 1승 2패로 몰리고 있던 유니콘스는 마무리로 줄곧 활약해온 정명원을 선발로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포수 마스크를 쓴 김형남은 경기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였고, 한국시리즈라는 큰 경기에서 과연 제대로 리드를 펼칠지가 의문이었다. 그러나 페넌트레이스에서조차 나오기 힘든 노히트 노런이라는 기록이 한국시리즈에서 수립되는 기적이 연출된다. 당시 한국시리즈 7회 우승이라는 위업을 보유한 최강 해태 타이거즈로서는 믿을 수 없는 굴욕이었고, 시리즈는 2승 2패로 팽팽하게 균형을 맞추면서 잠실벌로 양 팀은 향하게 된다.
하지만 그냥 앉아서 당할 타이거즈가 아니었다. ‘백전노장’ 김응용 감독은 시리즈 내내 특정 지역 출신 주심들에 의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심지어는 시리즈를 보이콧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고도의 심리전술을 펼친다. 고비에 몰릴 때마다 극한으로 몰고 가는 김응용 감독 특유의 심리전이 선수들을 4차전의 충격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게 한 것이다. 별명은 코끼리였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 ‘여우’ 김재박 감독을 능가하는 ‘여우’ 전술을 펼친 김응용 감독은 선수들의 투지를 불사르게 한다.
홈구장이나 다름없는 잠실구장에서 펄펄 나는 타이거즈 선수들 앞에 유니콘스는 더 이상 힘을 펼치지 못한 채 2승 4패로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게 된다. 잠수함 이강철 공략에 실패한 것과 믿었던 중심타자 박재홍이 시리즈 내내 침묵을 지킨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창단 첫해 기적 같은 행보를 펼치면서 리그 최강 타이거즈를 상대로 접전을 펼친 유니콘스의 선전은 강한 인상을 남겼고 매 시즌 최약체로 꼽히던 인천 연고 야구팀에 대한 선입견을 확실히 떨쳐내게 하였다.
사라진 구단, 그리고 그 이후
96시즌 이후의 유니콘스의 행보는 야구팬과 야구계 사이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재정이 어려운 쌍방울 레이더스의 주축 선수 박경완과 조규제를 현금으로 영입하면서 마침내 98시즌 우승을 일구어내지만 창단 당시 현대 피닉스를 이용해 대어급 선수들을 영입했던 행보와 맞물리면서 ‘돈으로 일구어낸 우승’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결국 재계 라이벌 삼성을 자극하게 되고 99시즌부터 삼성 또한 재정이 어려운 쌍방울과 해태의 주축 선수들인 김기태,김현욱,임창용 등을 트레이드에 거대한 웃돈을 얹어 영입하며 리그 내에 팀 간의 심각한 전력 불균형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선수단의 전력에 가장 필요한 선수들을 보강하고 투자하는 측면에서 당시 김용휘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의 적재적소 지원능력은 국내 프로구단의 프런트에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였다. 2000년 시즌 압도적인 위용을 과시하며 우승을 차지할 당시만 하더라도 80년, 90년대의 해태 타이거즈 이후 2000년대에는 현대 유니콘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모기업의 자금난이 겹치면서 유니콘스 왕조는 서서히 쇠락의 기운을 보이기 시작한다.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 당시 서울 연고지로 이전을 시도하면서 ‘과도기적 연고지’로 택한 수원 팬들에게조차 ‘홈구단 대접’을 못 받은 유니콘스의 어정쩡한 신세는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모기업의 자금난 악화와 더불어 처량하게 변해간다.
결국 자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유니콘스는 2007시즌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만약 2000년 연고지를 과감하게 목동구장으로 이전하고 당시 ‘왕회장’ 정주영 명예회장의 특유의 추진력으로 목동구장 리모델링을 시도했다면 당시의 유니콘스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낱 가정법에 불과할 뿐이다.
2007시즌을 마지막으로 현대 유니콘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유니콘스가 사용했던 황량하기 그지없던 수원 야구장은 제10구단 KT 위즈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는 중이고, 국내 야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22,000석 규모의 쾌적한 야구장으로 탈바꿈하였다. 신생팀 위즈의 성적은 좀처럼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수원 KT위즈파크로 이름을 바꾼 야구장은 수원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단과 프런트를 이어받아 재창단한 히어로즈는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모기업의 지원이 아닌 스폰서십 유치를 통해 자생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창단 초기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 및 FA를 통해 팔면서, 구단 운영에 대한 불안한 우려도 많았지만 히어로즈는 2010년부터 중견 타이어기업 넥센을 네이밍 스폰서로 유치한 이후 구단 운영에 안정을 기하면서 2012년부터는 팀의 주축이었던 이택근을 FA로 다시 영입하고 메이저리그 출신의 김병현을 깜짝 영입하면서 구단 운영의 전환점을 마련한다. 2008년 프로야구에 합류한 이후 2012년까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넥센 히어로즈는 2013년부터 구단 프런트, 코치를 역임했던 염경엽 감독 체제로 바뀐 이후 매 시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신흥강호로 자리매김한다.
단순히 성적 상승뿐만 아니라 구단 운영에서 넥센은 국내 프로야구에 새로운 모범사례를 지속 창출하였다. 특히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박병호는 구단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의 히트상품이 되었고, 팀 내 주축 타자였던 강정호와 함께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구단에 막대한 부를 안겨다 주었다. 넥센 히어로즈는 2012년 이택근 이후 단 한 차례도 외부 FA를 영입하지 않았다. 대신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돋보였던 탁월한 신인 스카우트 및 체계적인 육성을 통해 한현희, 조상우, 김하성, 고종욱, 신재영, 최원태, 이정후 등 새로운 신인 자원들을 스타급으로 육성하는 수완을 선보이고 있다. 신고선수로 입단해 역대 최다안타 기록을 세우면서 2014시즌 MVP에 등극한 서건창은 넥센이 아니었으면 탄생하기 어려운 신화라 할 수 있다.
또한 올 시즌을 앞두고 염경엽 감독이 물러난 이후 넥센 히어로즈는 구단 운영팀장 출신의 장정석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하는 파격을 단행한다. 그리고 신임 코치진도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얼굴들로 메워졌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넥센 히어로즈를 하위권으로 예상하는 목소리가 훨씬 높았다. 그러나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입수한 세이버메트릭스 분석 시스템을 내재화한 넥센 히어로즈는 철저한 분석 및 분업야구를 통해 올 시즌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또한 기존의 KBO리그에서 볼 수 없었던 사례라 할 수 있다. 좀처럼 경기에 간섭하지 않는 장정석 감독의 야구 스타일은 넥센 히어로즈의 체계화된 시스템 속에서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현대 유니콘스가 전성기 시절 모기업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리그를 평정했던 것과 달리, 모기업의 지원 없이 새로운 자생모델을 일구어내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의 모습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이젠 자주색 유니폼이 훨씬 더 익숙하지만 여전히 현대 유니콘스의 깔끔한 진청록 유니폼은 강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특히 만년 최약체라는 딱지를 떼고 리그를 호령하는 강호로 새롭게 거듭난 1996년의 현대 유니콘스의 여운은 여전히 기억의 저편에 자리하고 있다.
원문: 나루세의 不老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