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시즌 창단과 함께 당시 타 구단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팀 로고 송, 소개 음악을 최초로 시도하여 신선함을 불어 넣었던 LG 트윈스. 당시 프로야구 구단 중에서는 최초로 사이보그 이미지의 마스코트를 도입했던 LG트윈스는 마스코트와 로고의 역동성만큼이나 트윈스만의 다이나믹한 팀 컬러가 느껴지던 빵빠레 음악을 사용했는데, 이는 항상 묘한 기대감과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다.
창단 당시의 파격과 신선함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KBO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충성 팬들을 탄생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서울의 자존심을 심어준 ‘신바람 야구’
프로야구 개막 이래 가장 큰 시장을 가지고 있는 서울 연고 구단이 페넌트 레이스를 지배한 적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들어서는 아마야구의 우수한 자원이 대거 포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넌트 레이스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은 2000년대 들어서는 전무하며, 1990년대에도 1995 시즌의 OB 베어스가 서울 연고 구단의 마지막 페넌트레이스 1위팀이었다. 그 외에는 2016시즌 두산베어스가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며 KBO리그 역사상 최다승인 93승을 기록하는 업적을 수립했다. 하지만 2016시즌 두산베어스의 위용이 탄생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서울 연고 구단 역사상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로 기억되었던 팀은 1994시즌의 LG 트윈스였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타이거즈라는 팀이 내뿜는 포스 앞에 타 팀은 주눅 들기 마련이었고, 설사 그들이 중위권을 맴돌지라도 언제 치고 올라갈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발동하게 만들었을 만큼 타이거즈의 지배력은 강력하였다.
그러나 94시즌은 예외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 연고 구단이 투, 타에서 압도적인 포스를 발휘하며 인구 1000만의 서울 연고팬들을 신바람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트윈스의 94시즌은 트윈스 팬들의 뇌리 속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어쩌면 그 당시의 포스는 트윈스 팬들과 선수들 그리고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 무형의 강박관념을 심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90년대 후반 이후 트윈스는 당시의 신화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매 시즌마다 풀기 어려운 수학 정석 최고급 레벨 수준의 숙제를 받아들고 시즌에 임하였다.
과감한 트레이드 + 신구의 기막힌 조화
90년 창단 첫해 우승을 차지한 트윈스는 91, 92시즌 연속으로 하위권에 머물러 예전의 청룡 모드로 돌아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92시즌부터 팀을 맡은 이광환 감독이 마침내 자신의 야구철학인 ‘자율야구’ 와 ‘분업 시스템’을 정착시키면서 팀의 전력은 몰라보게 상승하였다.
93시즌 14타자 연속 탈삼진의 대기록을 세우면서 당시 역대 신인 사상 최다 계약금(1억 8천 8백만 원)을 받고 입단한 ‘삼손’ 이상훈은 호남의 선동렬, 영남의 최동원, 경북의 김시진 등과 같은 대형 투수가 드디어 서울지역에도 탄생한다는 설레임과 흥분을 팬들에게 안겨다 주었다. 기존의 정삼흠, 김태원, 김용수 등이 부활하고 김상훈, 노찬엽, 김동수, 박준태 등이 분전하며 트윈스는 3시즌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아쉽게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힘과 잠재력은 사상 첫 100만 관중 돌파를 기록한 서울 연고팬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94시즌에 거대한 괴력과 흥분을 팬들에게 전달하리라고는 예상도 못하였다.
94시즌을 앞두고 트윈스는 타이거즈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개편을 단행한다. 트레이드의 중심은 팀의 간판이자 ‘미스터 LG’로 통하던 김상훈을 타이거즈의 4번타자 한대화와 맞바꾼 것이다. 당시 팬들의 반발을 맞은 것은 물론이었거니와 전문가들조차 ‘바람직하지 못한 트레이드’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김상훈은 팀의 간판타자였지만 4번타자다운 클러치 능력이 다소 부족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선수였다. 그래서 꾸준한 기록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매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한대화를 선택한 것이다. 한대화 또한 팀 내에서 홍현우, 이호성 등에 밀리는 상황이었고, 김응용 감독과의 원만치 못한 관계로 인해 타이거즈에 대해 마음이 반쯤 떠난 상태였다.
그러나 영원한 LG맨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던 김상훈은 트레이드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결과론적으로 타이거즈에서는 이전에 보여준 정교한 타격을 상실하였다. 반대로 한대화는 특유의 클러치 능력을 한껏 발산하며 트윈스 중심타선의 무게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트윈스팀 역사상 제일 성공한 트레이드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대화의 팀 공헌도는 눈에 보이는 기록 그 이상이었다.
- 유지현 경기수 126 타율 0.305 안타 147 홈런 15 타점 51 도루 51 (94 신인왕 수상)
- 서용빈 경기수 126 타율 0.318 안타 157 홈런 4 타점 72 도루 6 (싸이클링 히트 기록 작성)
- 김재현 경기수 125 타율 0.289 안타 134 홈런 21 타점 80 도루 21 (20-20 클럽 가입)
‘신인 3인방’의 활약이 워낙 돋보인 탓에 기존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94시즌의 트윈스의 타선은 1번부터 9번까지 만만하게 다룰 타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최강의 파워를 과시하였다. ‘해결사’ 한대화 (타율 0.297, 10홈런 67타점), ‘검객’ 노찬엽 (0.279 10홈런 59타점) 외에 주로 대타요원으로 나서는 최훈재(타율 0.324) 김영직(타율 0.293) 등 2명의 좌-우 대타 듀오가 각각 자신의 ‘커리어 하이(Career High: 역대 최고 기록을 기록한 시즌) 시즌’을 기록하였다. 팀타율 0.282는 역대 트윈스 사상 최고 팀타율이기도 하다. 한때 은퇴 기로에 놓였다가 극적으로 팀에 남게 된 김선진은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가장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포스트 시즌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공격뿐만 아니라 트윈스의 막강한 선발진과 든든한 배터리는 그야말로 다른 구단을 압도할 만한 막강 그 자체였다.
- 이상훈 189 2/3 이닝, 평균자책 2.47 18승 8패 (완투 6, 완봉 2)
- 김태원 190 2/3 이닝, 평균자책 2.41 16승 5패 (완투 6, 완봉 3)
- 정삼흠 186 1/3 이닝, 평균자책 2.95 15승 8패 (완투 9, 완봉 2)
- 인현배 124 2/3 이닝, 평균자책 4.19 10승 5패 (완투 3, 완봉 2)
이상훈-김태원-정삼흠의 막강한 원-투-쓰리 펀치는 모두 한 시즌 180이닝 이상을 소화해내는 ‘이닝이터’로서 맹활약을 펼쳤다. 이상훈은 입단 첫 해 9승으로 기대에 다소 못 미쳤지만 이듬해 그야말로 만개한 기량을 한껏 과시하며 다승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한다. 서울 연고 구단의 에이스를 넘어서서 전국구 에이스로 발돋움한 시즌이었다.
김태원과 정삼흠은 MBC 시절부터 연투형 투수로 활약했지만 승수 쌓기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트윈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 트윈스의 초창기인 90년대 초반 든든한 선발요원으로 맹활약을 펼친다.
단국대 출신의 인현배는 입단 당시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신인으로 기록하기 힘든 10승대 투수 반열에 올라선다. 무엇보다도 인현배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은 당대 최고의 투수 선동열과의 맞대결에서 주눅 들지 않는 최고의 피칭을 과시하며 1-0 완봉승을 이끌어냈을 때이다.
하지만 그에게 94시즌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화려했던 시즌이었다. 그 후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한 채 은퇴하고 현재는 골프 티칭 프로로서 제2의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당시 트윈스는 선발진뿐만 아니라 불펜진도 탄탄하였다. 해태 출신의 노장 차동철은 중간 에이스로 맹활약을 펼치며 김용수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였으며, 강봉수, 민원기 등도 이광환 감독의 분업 시스템에서 원 포인트 좌완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매 시즌 꾸준한 활약을 펼치는 김용수는 93시즌부터 본업인 마무리로 전환하며 트윈스의 뒷문을 확실하게 걸어 잠갔다. 투수진의 맹활약 뒤에는 안정적인 투수 리드가 필수적이다.
트윈스의 전성기와 함께했던 ‘안방마님’ 김동수는 영리한 투수리드와 더불어 공격에서도 0.288 6홈런 42타점의 중심타자 못지않은 활약을 펼친다. 93시즌에 입단한 ‘한국의 후루타’ 김정민은 백업 요원으로 활약하며 최강의 배터리진을 구성한다.
마치며
94 미국 월드컵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2시즌 연속 10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을 불러모은 트윈스는 공, 수에서 압도적인 전력으로 페넌트 레이스와 포스트 시즌을 완벽하게 지배하였다. 1000만 명의 홈팬들에게 ‘서울의 자존심’을 확실하게 세워 준 트윈스. 비록 2000년대 들어서는 ‘한 지붕 두 가족’ 라이벌 두산에게 성적으로나 상대적인 전력에서 확실하게 밀리고 있지만 94-95시즌에 걸쳐 보여 준 포스의 영향력은 지금도 야구팬들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2000년대 기나긴 암흑기를 겪었던 LG트윈스는 2013시즌 지긋지긋했던 악몽을 끊고 무려 11시즌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4시즌 양상문 감독 부임 이후 트윈스는 체계적인 팀 리빌딩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올 시즌을 앞두고는 좀처럼 영입하지 않던 외부 FA 영입에 나서며 좌완 투수 최대어였던 차우찬을 95억 원에 영입했다. 또한 시즌 후반기 시작을 앞두고 부상에 시달리던 외인타자 히메네스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메이저리그 출신 강타자 제임스 로니를 영입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과연 올 시즌 과감한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는 LG트윈스가 1994시즌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올 시즌 후반기가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원문: 나루세의 不老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