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면 뭐가 좋은가?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는 동양의 지혜를 배우세요. 성공하고 싶으세요?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잠재력을 깨우는 수천 년의 지혜를 만나세요. 괴로울 땐 힐링을, 잘 살 때는 매니지먼트를, 더 큰 성공을 위해서는 자기 계발의 왕도를 제공해주는 전가의 보도, 지혜(Wisdom)로 가는 길.
그런데 도대체 지혜 또는 현명함이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의 접근법에 따르면 철학, 즉 지혜란 ‘사물을 탁월하게 다루는 기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대상을 탁월하게 다루는 기술은 이미 학문으로 발달해 버렸다. 전자기력과 중력을 탁월하게 다루기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한 건 물리학이지 철학적 명상이나 사변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지혜나 현명함이 탁월하게 다루는 건 무엇일까? 현명함은 왜 미덕일까? Wisdom이란 단어를 보면 게임 스탯부터 떠올릴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누가 지혜를 말하는 것일까.
현명함은 도가 아니라 과학
철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이지만, 정작 철학이 말하는 ‘지혜 또는 현명함’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탐구가 소홀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학문은 이전 세대가 ‘과학적’으로 다루기 힘들거나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던 것들을 진지하게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고,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그래서 지혜의 심리학, 현명함의 과학이 이제라도 소개되는 것이 다행스럽다. 사실 심리학은 대중적 이해와의 간극이 크다. 여전히 심리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프로이트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지난 반세기 동안 극적으로 변화했다. ‘지혜로 가는 길’이란 말을 들었을 때 ‘스승’이나 종교적 사상을 떠올리는 대신, 심리학의 연구에 귀를 기울여 봐야 할 때다.
“스승님, 현명해지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훈련하면 돼요.”
이 책에 따르면, 지혜 또는 현명함에 대해 과학적 접근이 이루어진 계기 중 하나가, 지혜를 일종의 전문적인 지식으로 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봄으로써 얻는 이점은 이렇다. 다른 전문지식에 대한 연구 방법을 지혜를 연구하는 데 끌어 쓸 수 있다는 것이 하나고, 전문적인 지식으로서의 지혜는 의식적으로 숙련시킬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다.
그렇다면 지혜는 어떤 전문적인 지식일까? 바로 ‘삶의 기초이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다. 삶의 기초이론이란 별 게 아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의 기초가 되는 전제들이나 가정들을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세상엔 믿을 사람 없다” “공짜는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게 낫다”라거나 하는 것들,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일반적인 명제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삶의 기초이론’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현명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학문으로서의 ‘지혜의 심리학’은 이러한 현명함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것들을 발달시킬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러한 접근법 덕분에 알게 되는 건, 나이와 지혜와의 관계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몸에 익힌 전문적인 지식은 오랜 숙련 기간을 거친다고 해서 저절로 뛰어난 성취로 이어지진 않으며, 때로는 이미 성취를 이룬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도 (손을 놓아서, 혹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해서) 퇴보할 수도 있다.
삶의 기초 이론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은 성장기(사춘기)가 끝날 무렵 대부분 형성된다. 그 뒤로 현명함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경험과 함께 좋은 태도나 성향이 필요하다. 아집으로 가득 찬 사람은 많은 걸 보고 듣는다고 해도 더 지혜로워지지 않으니까. 이 책은 <더 현명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태도는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지혜주식회사 ― 성별연령불문
모든 서평이 가져야 할 미덕은 적절한 독자들을 밝히는 것이다. 지혜, 현명함이라고 하면 장년이나 노년의 미덕으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책 역시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오인될까봐 하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다루는 이야기지만,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자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해소해야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노년이 되면 쇠퇴와 소멸에 대해 더 민감해지기 때문에 현재를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 사실 어느 쪽이건 과하면 좋지는 않다. 각기 경계해야 할 방향이 다를 뿐, 더 나은 삶의 태도라고 볼 근거는 없다.
저자가 말하는 지혜의 토대는 다섯 가지다. 순서를 조금 바꾸어 설명하자면 삶의 기초이론들을 수정하고 변화시켜나갈 수 있는 개방성, 감정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되 거리를 둘 수 있는 감정 조절 능력, 자신의 태도를 객관적으로 비추어볼 수 있는 성찰적 사고가 우선 필요하다.
그런데 현명함이 아무리 기술적으로 숙련시킬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이라 해도, 자신을 마음대로 조절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무리를 하면 안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게 통제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두 갖춰진다고 해도 이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만 쓴다면 우리는 원하는 목적을 위해 자신을 조절하고 타인을 착취하는 이기적인 괴물을 얻게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게 타인과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이다. 타인들과 적절하게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현명함의 기본 요소이니까.
이렇게 요약하고 보면 굉장히 뻔한 이야기들처럼 들린다. 하지만 원래 “삶이 주는 가르침은 스스로 겪지 않으면 진부하게 들린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와닿지 않는 격언과 우리를 변화시키는 깨달음 사이의 차이는 실제 경험에 달려 있다.” 이 책은 현장의 심리학자로서 저자가 만난 많은 사례들, 그리고 연구를 통해 얻어낸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언들을 담고 있다. 독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진솔하게 이 책과 대화할 자세만 갖추면 된다.
영어 사전 읽지 말고 이 책 봐요, 누나.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생각했던 건, (대중적인) 인문학의 가치였다. 책도 많이 읽고 강연도 많이 다니는 분들이 딱히 더 현명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기초이론’을 갖고 있다. 이것이 너무 연약해 자주 바뀌면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견고해도 성장을 저해하고 어리석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근본적인 태도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위기의 경험들이다. 하지만 많은 경험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개방적인 태도와 성찰적인 사고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경험으로부터도 배우지 못하니까.
자신과 생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스승과 책을 고르는 사람들은 이 책의 관점에서 볼 때 조금도 현명해지지 못하는 셈이다. 늘 자신의 틀을 깨야 한다는 강박도 병이지만, 자신의 세계를 조금도 바꾸지 않으며 ‘마음 공부’를 하는 것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수십 개의 나라를 다니고 몇 개의 외국어를 하고 남들이 하지 못할 특이하고 극적인 경험을 해온사람이 있었다. 그가 홀로 자신을 돌아보며 읽는 책이 영어사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 분에게 이 책의 한 구절을 바친다.
“어쩌면 이상한 것은 그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니, 그녀만 이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녀 또한 정말로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