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의 원내대표였던 4선의 현직 국회의원이 불특정 다수의 시민 대중으로 구성된 문재인과 민주당 지지자들을 ‘좌파 좀비’라는 일방적으로 부정적 가치판단을 담은 언설을 사용해 폄하했고, 더 나아가 경멸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시민 주권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가장 최신의 민주주의적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행태이기도 하다. 그가 ‘구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 모두가 지난 시절 동안 반민주주의적 행태를 일상적으로 너무 자주 경험해왔기에 그러한 작태에 대해서 무뎌졌기 때문이다. 이 익숙해짐에서 아주 조금만 벗어나서 이 사안을 바라보면 여당의 원내대표까지 지냈던 중진 의원의 이 발언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언론은 이 충격적인 발언에 대하여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여겨진 소위 ‘진보 언론’에서조차 이 사안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경향신문’이 아니라 ‘스포츠 경향’에서 연예인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기사화하는 것처럼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도의 내용으로 관련 기사를 썼을 뿐이다.
근래에 ‘진보 언론’의 기자들 가운데 자신들이 민주주의적 아비투스가 정진석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몸소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한겨레21의 편집장을 지냈던 안수찬은 “덤벼라, 문빠들”이라고 말함으로, 또 한겨레의 기자 하어영은 공중파 라디오에서 “문 대통령은… 아, 문 대통령’께서’라고 해야 하나요? 훗”이라고 비아냥거림으로 불특정 다수의 시민 대중에 대하여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냈다.
시민 대중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저으로 폄하하는 이들은 모두 우리들 주변의 ‘정진석들’이다. 그들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열정적으로 입에 올린다고 하더라도, 또 과거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하여 아무리 커다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성찰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민주주의의 적’일 뿐이다.
혹자는 시민 대중의 ‘집합적 움직임’이 갖는 물리적 괴력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예컨대 ‘집합적 참여정치 행위’를 인터넷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한국사회가 흔하게 경험했었던 ‘특정 개인에 대한 집단 린치’와 비교하며 평가절하한다. 그들의 우려는 ‘습관적 엘리트주의’에 기반 둔 것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근래 ‘문자 폭탄’이라는 담론으로 표상화된 집합적 참여정치 행위에는 최소한 두 가지 층위가 중첩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참여정치라는 차원에서 ‘주권자’가 ‘주권 대리인’ 혹은 언론과 같은 공공 권력체에 대하여 의사 표명을 하는 것에 관한 층위이고, 두 번째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화자가 청자에게 인신공격적 발언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층위이다.
두 번째 층위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예를 들어서 가족이나 친구 간의 대화라고 하더라도 윤리적 정당성을 얻기 힘든 만큼 이 지점의 문제의식은 정당하다. 하지만 ‘집합적 참여정치 행위’는 설령 청자 개인의 사적 맥락이 일부 언설의 소재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커뮤니케이션 맥락 하에서 청자는 ‘사적 개인’이 아니라 ‘공적 성격’을 가진 국회의원이나 기자, 혹은 언론 권력체다.
화자 역시도 익명성의 그늘 뒤에서 삐뚤어진 개인적 욕망을 마구잡이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실명성에 기반 둔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집합적 참여정치 행위’는 표상적으로는 ‘몰개인적인 집단적 움직임’으로 관찰되지만, 그것은 각각의 ‘개인적 실천’들이 공통적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기에 그 행위의 결과가 ‘집합적으로’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 일어난 착시현상일 뿐이다.
더불어 위에서 언급한 두 층위는 분명하게 구분해 인식할 필요도 있다. 후자의 부정적 속성, 즉 ‘집단 린치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경우 자칫 잘못하면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 즉 ‘참여정치 현상’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시절 우리는 정부 비판적 성격의 시위 과정 중에 일어난 폭력적 상황을 근거로 시위 자체를 ‘불법 시위’나 ‘폭력 시위’로 규정하며 시위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려는 노력을 실제로 경험했다.
시민 대중은 ‘옳은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정당성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당성은 그들이 ‘개인’이자 ‘시민의 일원’이라는 사실만으로 확보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내려진 판단이 설령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라도 그것을 ‘민주주의 사회’는 감수하고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