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패럴림픽, 손에 손잡고
오늘날 올림픽은 페어플레이 정신과 연대감을 목적으로 각국의 선수 간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심신을 향상하고, 문화와 국적을 아우르는 차이를 극복하는 화합의 의미를 새기고 있다. 패럴림픽 역시 또 하나의(Parallel) 올림픽(Olympic)으로서, 장애인의 체육활동을 장려하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대표적인 지구촌 축제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지금은 나란히 개최되지만 과연 처음부터 함께였을까?
올림픽은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열린 고대 올림피아 경기를 시작으로 본다. 이후 로마가 그리스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올림픽은 사라졌다.
그 후 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 1796년 프랑스의 ‘공화국 올림픽’과 1850년 영국의 슈롭서 주 작은 시골 마을 웬록에서 고대 올림픽을 표방한 작은 스포츠 대회 ‘웬록 올림픽’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이 대회는 단지 고대 올림피아 경기 때 행하는 종목을 다시 실천하고, 작은 규모의 대회를 펼치는 정도였기 때문에 이를 근대 올림픽의 부활로 완전히 해석할 수는 없었다.
이후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올림픽 부활 운동을 통해 이루어낸 1859년 자파스 올림픽을 시작으로, 2회 파리 올림픽을 거쳐 성공적인 올림픽의 부활을 알리고 지금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 2017 정선 세계장애인알파인스키 월드컵 파이널 슈퍼대회전2_헬로우 평창 테스트 누리집
한편 패럴림픽은 영국의 루드비히 구트만 박사가 2차 세계 대전 도중 장애와 후유증을 얻게 된 군인들의 재활운동을 위해서 1948년 런던올림픽 개최 시기와 맞춰 16명의 장애인 선수들을 위한 양궁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 첫 시작이다. 그 후 4년 뒤 1952년 네덜란드의 퇴역군인들이 합류하게 되었고, 1960년 로마에 이르러야 정식적인 패럴림픽을 개최하게 되었다. 당시 패럴림픽은 23개국 400여 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국제 수준의 스포츠대회로 큰 파장을 주었다.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로부터 유래한 올림픽과 패럴림픽, 과연 언제부터 함께 개최되는 지구촌 축제로 통합되었을까? 자랑스럽게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같은 도시에서 개최된 첫 통합올림픽의 시초다.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가 서로 다른 경기에 임하면서,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스포츠 매너를 선보임으로써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귀감을 보여주었다.
번 2018년, 평창 패럴림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전세계 장애-비장애 선수가 함께하는 최초의 대회가 만들어졌다면, 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한번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전세계의 장애-비장애 선수가 함께 손에 손잡고 펼쳐지는 지구촌 최고의 대회 사례로 남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나는 움직인다(Agitos), 특별한 장애인 국가대표들
패럴림픽의 상징 로고 ‘아지토스(Agitos)’는 라틴어로 ‘나는 움직인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로고는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전세계국기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3색을 필두로 하였다. 화합과 경쟁을 의미하는 패럴림픽의 아지토스가 그 본래의 뜻처럼 역경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일보함을 가리키듯, 전세계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 역시 인류의 화합과 선의의 경쟁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이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를
시대의 스포츠 정신으로
패럴림픽에 참여하는
전세계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감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들이 실천하는 스포츠에는 장애로 인한 고통을 인내하고 이를 초월하는 아지토스 정신이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지토스 정신에 어울리는 특별한 장애인 국가대표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해 9월 한 선수와 관련한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런던 패럴림픽의 금메달리스트 마리케 베르보트 선수로, 그녀는 리우 패럴림픽이 끝난 후 선수 은퇴와 향후 안락사를 고려한다고 고백해 화제를 모았다. 그녀는 척추질환을 앓는 장애인으로서 10분밖에 수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감내하는 장애인 운동선수다. 과거 이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철인 3종 경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숱한 좌절 끝에도 포기하지 않고 휠체어 스프린터 종목에 도전한 끝에 마침내 영광적인 금메달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전세계는 그녀의 체력과 정신력에 감탄했으나, 예상과 달리 그녀는 은퇴 후 언젠가 안락사를 고려할 만큼 여전히 힘든 장애의 고통을 견디고 있음을 털어놓았다. 이와 같은 사연을 통해 알 수 있듯, 패럴림픽이 전달하는 그 숭고한 경기력은 단지 체력적 조건으로 좌우되지 않고, 서로 다른 장애를 지닌 선수가 긴 시간 고통을 인내하면서까지 열망한 스포츠 정신 아래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특별한 선수가 있다. 평창 패럴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기를 희망하는 원유민 선수다. 원유민 선수는 장애인농구선수로 유명한데,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서는 노르딕 스키 종목에 도전하게 되었다. 농구부터 스키까지, 여러 종목을 오갈 만큼 원유민 선수는 뛰어난 운동신경과 열정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4살 때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겪으며 하반신 전체와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잃게 되었다. 그 후 3년간의 치료 끝에 캐나다에 이민을 갔고, 캐나다에서 국가대표 휠체어 농구선수로 실력을 인정을 받으며 리우 패럴림픽에서 캐나다 국가대표로 참가한 바 있다.
농구선수로서 큰 재능을 보인 그는 현재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기를 꿈꾸고 있다. 과거 캐나다에 이민을 가면서 자연스레 캐나다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지만, 고국인 한국의 국가대표로 출전해 좋은 경기를 펼치고 싶다는 그의 바람에 현재 문체부에서는 원유민 선수와 협조하여 귀화를 추진하고 있다. 원유민 선수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다수의 패럴림픽 출전 선수들의 경우 사고에 의해 후천적인 장애를 얻게 되었음에도 환경에 굴하지 않고 스포츠를 향한 꿈에 도전하는 열정을 볼 수 있다.
장애인에게 있어 패럴림픽이란
패럴림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는 경쟁이다. 패럴림픽에 참여하는 각 국가대표 선수들은 전 세계의 서로 다른 장애인 선수들과 경쟁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경쟁은 상대방을 누르기 위한 거친 경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선의의 경쟁을 의미한다. 정확히는 스포츠 정신에 입각하여 정정당당한 경기를 펼치고, 자신과 같은 종목에서 힘을 겨루는 장애인 선수들을 경기의 파트너로 인식하여 펼쳐지는 선수 집단 간의 페어플레이를 가리킨다.
이처럼 뜨거운 경쟁은 선수의 가슴을 뛰게 한다. 특히 장애인 선수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우위를 겨루는 경쟁의 대부분은 비장애인에게 해당되는 얘기였을 뿐, 장애인은 단지 사회에서 배려해야 할 대상으로, 경쟁의 주체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장애인 복지가 활발하게 논의될 수 있었다.
올림픽 경기장에서 관전을 희망하는 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대중교통수단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장애인 선수들을 육성하고 경기 참여를 크게 독려하는 데 시초가 되었다. 30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패럴림픽 종목에 참여하는 장애인 선수들은 땀 흘리며 상대와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페어플레이 정신과 성취감을 다시 한 번 느낄 것이고, 전 세계는 차가운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이 뜨거운 경기들을 주목할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경기를 접한 한국의 장애 청소년들은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국가대표 장애인 선수와 같은 장애인 스포츠 선수의 꿈을 꾸게 될 것이다.
패럴림픽에는 감동이 있다. 패럴림픽에는 땀이 있고, 눈물이 있으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경쟁이 있다. 무엇보다 패럴림픽에는 고립을 넘어 사회에 발을 내딛는 장애인 선수들의 열정이 있다. 내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이 모든 가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