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의 범주를 넘어섰다. 리들리 스콧은 영화 철학자다.”
“<프로메테우스>의 세계관은 사라지고 진부함만 남았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극과 극으로 갈린다. 보통 평이 갈릴 땐 평론가와 관객 사이에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엔 전적으로 호불호의 차이다.
이 영화의 서사구조가 어느 정도 미흡하다는 것은 다들 인정한다. 별다른 사연 없이 등장해 희생되는 등장인물들은 소모적이고, 마지막 반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래서 걸작까지는 아니지만 영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담기 위해 서사를 포기했다고 말하고,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해서 감독이 만들어낸 담론이라는 게 결국 자기복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극과 극의 반응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전작 <프로메테우스>(2012)에서 너무나 거대한 소위 ‘떡밥’을 던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 영화에서 그는 무려 인류의 기원을 탐사하기 위해 나섰고, 인간보다 덩치가 큰 ‘엔지니어’ 문명을 통해 어쩌면 인간이 먼 우주에서 왔을 수도 있다고 암시했다. 초고대문명 가설과 맞닿은 영화 속 빅 히스토리는 거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프로메테우스>의 11년 후를 그린 속편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방향을 완전히 틀어 에이리언 지노모프(Xenomorph)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그린다. 시리즈의 첫 영화인 <에이리언>(1979)과의 연결고리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프로메테우스>의 질문을 건너뛰고 에이리언이라는 우주 괴물의 존재에 집중한 것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전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엘리자베스 쇼(누미 라파스)를 어이없이 소모해버린다. 여기가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첫 번째 지점이다.
영화는 에이리언을 통해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에이리언은 뛰어난 번식력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하고 잔혹한 생명체다. 이에 비해 인간은 특정 기후 환경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연약해 지구를 닮은 행성을 찾아 수십 년 간 냉동 수면하며 이동하는 중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더 강한 생명체는 약한 생명체를 멸종시킨다. 그러니 창조주가 있다면 인간과 에이리언 중 선택은 자명하다는 것이 이 영화가 던진 새로운 ‘떡밥’이다. 창조와 진화란 결국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배신당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인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영화에는 두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에이리언’에는 매 시리즈마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름도 애쉬, 비숍, 콜, 데이비드, 엘덴 등 A,B,C,D,E 순으로 작명되어 있다. 이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알파벳 순으로 발표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작명 원칙을 깨고 새롭게 월터가 투입됐다).
데이비드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반면, 월터는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개조된 안드로이드다. 똑같은 악기를 연주해도 데이비드는 스스로 작곡하지만 월터는 정해진 음악만을 연주한다.
프로메테우스 호의 임무 실패 후 데이비드는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 하고 월터는 이를 저지하려 한다. 데이비드는 히틀러를 칭송한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남편인 퍼시 셸리가 쓴 고대 이집트의 왕 오지만디아스를 기리는 시를 낭송하며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는 한낱 포자일 뿐인 작은 생명체가 나약한 인간의 배와 등을 가르고 나와 네오모프(Neomorph)로 거듭날 때 그 순수한 생명력에 감탄한다. 지난 38년간 계속되어온 이 시리즈에서 에이리언은 공포의 대상이자 한편으로는 리플리를 임신하게 한 가족이었는데, 그 애매한 정체성의 시작을 데이비드라는 최초의 보호자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시리즈의 근원을 확실히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인간을 뛰어넘는 피조물이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는 이야기는 지난 수십 년 간 영화 속에서 반복된 테마지만,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이를 통합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립하려 했다.
하지만 영화의 메시지가 첫 장면부터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나 거부감도 상당하다. 영화 속 모든 등장인물들이 부부, 형제, 부자, 모자 등 가족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작위적인 설정, 데이비드와 월터가 창조력에 관해 나누는 대화 등은 너무 직접적이어서 오히려 감상을 방해한다. 여기가 호불호가 갈리는 두 번째 지점이다.
에이리언은 항상 여성 중심의 영화였다. 시고니 위버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리플리는 절대적인 존재감을 자랑해왔다. 1979년작 <에이리언>에서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아남았던 그녀는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강인한 여전사로 거듭나 2편에선 딸 같은 소녀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3편에선 무려 퀸 에이리언을 임신하기까지 했다. <프로메테우스>에선 새로운 인물인 고고학자 엘리자베스 쇼가 극의 중심에 섰다.
이들에 비해 존재감이 약하긴 하지만 <에이리언: 커버넌트>에도 여전사 캐릭터인 부함장 다니엘스(캐서린 워터스턴)가 있다. 리플리를 연상시키는 그녀는 우주선 갑판에서 혈혈단신으로 이족보행을 시작한 에이리언에 맞서 싸우지만 데이비드와 월터가 극을 주도하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여기가 호불호가 갈리는 세 번째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대한 평가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린다. <프로메테우스>의 속편으로 보면 허무한 용두사미지만, 에이리언 전체 시리즈의 연결고리로 놓고 보면 튼튼한 시작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이어지는 에이리언 프리퀄은 향후 2편가량이 더 만들어질 예정이다.
비록 영화의 메시지에는 호불호가 갈릴지라도 단지 공포영화로서 즐기기에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완성도는 부족함이 없다. 미지의 장소에서 낯선 살인마에 쫓기고, 샤워실 같은 안전한 장소에서 반전이 일어나고, 용감한 척하는 주인공이 가장 먼저 죽고, 끝났다고 생각될 때 반전이 벌어지는 등 영화는 호러영화 장르의 컨벤션에 충실하다.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사운드를 배경으로 한 미지의 LV-223 행성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에이리언이 등장할 때 들리는 사운드 효과는 소름 돋을 정도로 정교하다.
올해 80세인 노장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여전한 장르 세공술로 팬들에게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킬 또 다른 떡밥을 던졌다. 열광할 것인가, 실망할 것인가는 직접 보고 판단하시길.
줄거리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6번째 영화이자 <프로메테우스> 이후 두 번째 프리퀄이다. 시간적 배경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11년이 지난 2104년, 1979년 첫 <에이리언>의 배경인 2122년으로부터는 18년 전의 과거다.
동면 중인 2,000명의 이주민과 1,000개의 배아를 태우고 제2의 지구인 오리가에 행성을 향해 가던 커버넌트호는 불의의 항성플레어 충격파에 우주선이 파손돼 15명의 승무원들이 동면에서 깨어난다. 이들은 우연히 인근 행성 LV-223으로부터 구조 신호를 포착하는데, 이 행성이 지구의 대기와 96%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호기심에 목적지를 바꿔 LV-223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곳은 11년 전 우주탐사선 프로메테우스 호가 도착했던 곳이다. 승무원들은 이 행성에서 미지의 생명체와 마주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
무지막지한 야심. 빼어난 완성도. 식상한 메시지.
원문: 유창의 무비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