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성공은 가까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꾼 어릴 적의 꿈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자유를 손에 넣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어른이 되니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나 무겁게 삶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바라볼 때가 많다.
지금 어른이 된 사람들의 공통적인 꿈은 ‘성공’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10대 시절을 맹목적으로 공부하면서 보냈고, 또다시 성공하기 위해서 20대 시절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이름으로 흘려보내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그 결과를 손에 넣지 못했다.
우리는 항상 각자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왔다. 자고 싶은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거나 야근을 했고,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하는 순간에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자신을 눌러왔다. 내가 아니라 나보다 더 윗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사회의 미풍양속이었고, 더 잘 사는 데 필요했으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행복하지 못하다.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복=성공’ ‘성공=행복’이라는 공식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이고, 우리는 늘 마음 한쪽에 불만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내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 때문이라고 말하거나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대체 우리는 왜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걸까? 정말 우리 사회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글러 먹은 사회라서 그런 걸까? 내가 우리 사회가 바라는 인재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인 걸까? 아무리 몇 번이고 되물어도 도무지 그 답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지겹지 않니 청춘 노릇』이라는 책의 저자 안준희 핸드스튜디오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청춘들에게 물었습니다.
“열심히 여행 중이군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랬더니 청춘들이 대답했습니다.
“네, 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목적지도 없이 일단 열심히 가는 것인가요?”
청춘들이 대답합니다.
“네, 제게는 훌륭한 말(토익 점수)과 충분한 노잣돈(학점), 그리고 길을 잘 아는 마부(학벌)가 있으니 언제든지 목적지를 바꾸어도 된답니다.”
깜짝 놀라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지금 아무렇게나 가고 있는 이 길과 정반대에 있다면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지 않을까요?”
청춘 여러분,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 그 전에, 갈 곳은 정하셨나요?
– p85, 지겹지 않니 청춘노릇
우리가 성공이라는 말과 너무나 멀리 떨어진 이유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맹목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말하는 왕도를 가고자 했다. <비정상회담>에서 깜짝 출연한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최근 성공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안 좋게 정의되어버렸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을 말할 때는 항상 부자와 유명한 사람, 사회적으로 높은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성공은 높은 지위만 뜻하지 않는다. 성공은 자신이 뭔가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평화롭게 있는 것, 구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한 영역에서 성공하더라도 다른 영역에서도 성공할 수는 없다. 모든 영역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무엇에 성공하고자 하는지를 현명하게 선택하는 일이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성공’의 정의를 보자. 오늘 지금 우리가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부자는 되지 못했지만, 지금 하는 일을 통해 평화로움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 말을 글로 옮기면서도 나는 살짝 위화감이 드는 걸 지울 수 없다.
솔직히 마음의 평화로움을 얻는 데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을 폐지하기 위해서 싸우는 이유도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서다. ‘부가 성공의 전부는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부 없이 성공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건 어렵다고 본다.
알랭 드 보통 또한 샘 오취리가 물은 “인생 학교는 공짜인가요?”라는 질문에 “우리가 자본주의의 적은 아니잖아요.”라며 웃으며 답했다. 우리가 선망하는 많은 인물이 이미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부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리는 위화감을 드는 게 아닐까?
<비정상회담>에서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중 빌 게이츠의 사례가 무척이나 재밌었다. 흔히 사람들은 빌 게이츠는 대학을 중퇴하고도 성공했다고 말하는데, 빌 게이츠가 다녔던 학교는 하버드 대학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미 하버드 대학에 갈 정도로 그 인물이 뛰어났다는 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비판이 무척 타당하게 여겨진다. 우리 사회에서 종종 소개되는 성공한 젊은 사업가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다른 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경제적 지원이 있었다거나 명문대를 나왔다거나 어릴 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해왔다거나. 출발과 방향이 애초에 달랐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진정한 의미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정확한 방향을 향한 노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안준희 대표와 알랭 드 보통도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똑같이 강조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고 부단히 노력해온 사람과 이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는 사람은 출발선이 다르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부모님의 지원이 1억(보통 4년제 대학에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한다)밖에 없다면, 그 1억을 온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도 아닌 데다가 좋아하는 일도 아닌 곳에 1억이라는 비용이 들었다면? 우리는 1억이라는 비용을 깡그리 날려버린 셈이 된다.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의 의욕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방황할 수밖에 없다.
성공이라는 건 큰 부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성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는 게 성공이다. 그 평화로움은 막대한 부로 느긋이 사는 게 아니라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다. 마치 오늘 내가 여기서 열심히 글을 쓰는 것처럼….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심일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강한 바람은, 내가 그것을 계속 껴안고 있으면 반드시 나를 변화시키곤 했다. 그리하여 언젠가부터는 그저 가만히 쉬고 있을 때도 그 바람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도 내가 생각하던 것과 관련된 장면이 강렬한 인상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이 모인 연회장에서도 꿈의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한 인재에게 절로 눈이 가곤 했다. 강한 바람이 없었다면, 이러한 것들을 그만 놓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현상 속에 멋진 기회가 숨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강렬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 일이건 인생이건 궁극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늘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중도에 포기해서 되는 일이란 세상에 없다. 끝까지 꿈을 놓치지 않고 몰두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내 곁을 지나가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꽉 붙들어야 한다.
– 본문 44p
오늘 우리가 성공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분명한 목적의식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고, 성과 없는 듯한 노력의 과정에서 기회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왜냐하면, 목적의식을 갖고 하는 일은 늘 나와 주변을 즐겁게 하니까.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인가? 그 고민을 잠시 해보았으면 좋겠다.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