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권은 정권을 지킨다는 차원에서건 전체 국민을 위한 정권이 된다는 차원에서건 실패했다. 나는 그들이 실패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바뀐 정보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 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이것 때문에 노무현은 당선되었고 이것 때문에 이명박이 당선되었으며 이제 박근혜가 탄핵당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한국을 움직이는 큰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것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바로 인터넷 속의 사람들이다. 노무현이 당선된 대선 당시에는 인터넷은 완전히 진보의 세상이었다. 유튜브도 없어서 동영상 하나 올리기 어려운 시대였지만 인터넷이 없었다면 노풍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터넷 정당 건설을 외치는 사람도 이때 나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터넷의 풍경은 참여 정부 시기 동안에 급변하고 만다. 한국의 인터넷은 더욱더 다음과 네이버 중심이 되는 것 같았고 뉴스의 노출도 그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보수세력의 인터넷 역량은 훨씬 더 강화되었다. 어쩌면 이 경험이 국정원까지 동원되는 인터넷 댓글 사건들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즉, 인터넷에서 영향력을 잃으면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수세력은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한때 인터넷 아고라에서 글을 쓰던 미네르바가 국회를 뒤흔들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끝에 체포되었던 것을 기억해 보라. 인터넷의 힘은 막강하다. 그것은 누군가의 관점에 따르면 불행한 일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어떤 기자의 말보다도 어떤 교수의 말보다도 미네르바의 말이 더 영향력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거나 지원했던 정신적 혹은 담론적 중심에 있었던 것은 좀 구질구질했다. 그것은 우선 조중동이었지만 뉴라이트였고 무엇보다 일베였다.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구질구질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던 것이 일베라는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근혜 세력의 한계는 그들이 고작 일베 사이트 정도의 지지밖에는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에 있고 이것은 대개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점이다.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세상은 조중동에 대항하여 한경오가 싸우는 시대에서 일베에 대항해서 기타 네이버나 다음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이나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오유같은 사이트들이 싸우는 시대로 바뀌었다.
이것은 요즘 한경오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맹공격을 당하고 있는 현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중은 한경오가 조중동에 맞서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고 싸울 수도 없으며 심지어 조중동도 전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바로 그것이 지금의 현상을 만드는 중요한 원인중 하나다.
지금도 조중동과 한경오가 세상을 보수와 진보로 양분해서 싸우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상은 이미 더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점점 더 시대에 뒤진 마이너리그가 되어가고 있다. 신문에서 맘대로 쓰면 검증도 안 되고 정보가 퍼지던 시대가 더이상 아니다. 괜히 욕만 먹는다. 기자가 운신할 폭이 훨씬 줄어든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며 여전히 학벌 높은 엘리트 중심의 사고를 하면서 새롭고 거창한 언론의 중요성만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통상 사람들이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민주화되었고 민중의 힘은 훨씬 더 강화되었다. 다시 말해서 훨씬 더 보통 사람들의 힘이 강화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누가 탄핵을 주도했는가. 촛불 민중이다. 절대 정치가가 아니다. 이 말에는 당시의 여당은 물론 야당의 지도자조차 포함한다. 설사 어떤 정치인이 탄핵을 주장하거나 입에 담았다고 해도 탄핵을 끌어온 것은 민중 자체의 힘이었다. 이 때문에 탄핵에 대한 협상을 주도하여 자기들의 지배력을 증가시키려고 했던 국민의당 박지원은 지나치게 탄핵일정에 간섭하다가 국민의당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었다. 민중의 힘을 우습게 생각한 대가다.
노무현을 탄핵에서 지켜낸 것도 촛불시위였다. 그리고 이 촛불시위는 조중동이나 한경오같은 언론이나 특정 정치인들에 의해 조종되어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촛불시위의 영웅은 그냥 보통사람들이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처럼 어떤 야당 정치인이나 학생운동 조직의 수뇌부가 뭘 결정하면 움직이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결국, 지난 10년에서 20년을 되돌아보면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래 기성 언론과 정치인들 그리고 유명 지식인들의 영향력은 꾸준히 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지식인도 그렇다. 이제 대중 앞에서 석학 행세하며 권위 세우는 지식인은 인기가 없다. 새로운 시대에 인기를 얻는 지식인들은 민중 앞에서 훨씬 더 겸손하다.
물론 앞으로도 우리는 전문가가 필요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보다도 더 그렇다. 모든 분야가 전문화되는 시대니까 말이다. 그리고 특수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적인 측면에서 활동하는 비전가나 사상가들의 활동도 활발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사상가나 지식인이 민중의 정신적 스승 운운하던 시대의 역할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한다. 그들과 대중, 민중과의 관계는 전과 다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로 이뤄진 대중에게 겸손하며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할 뿐이다.
세상의 중심은 그래서 상당 부분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로 옮겨왔다. 이 무대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김어준같은 인물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자신의 지지자들을 재생산해내는 장소로 고작 일베 정도의 사이트밖에는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박근혜 정권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불가능했던 이유 중의 하나다.
이러한 일들을 그러니까 요즘은 SNS가 중요하다는 말이로군 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조선 시대에는 사대부들이 향교를 통해서 새로운 선비들을 키웠다. 그리고 그렇게 끊임없이 생산되는 인재들이 집권세력을 형성했다. 해방 이후 이 나라에는 지연이 있고 학연이 있었다.
재벌들이 장학금으로 인재를 키우기도 했으며 거대 언론사의 기자들은 인맥을 만들고 스스로 권력자가 되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사법연수원이나 조중동같은 언론사들은 단순히 교육기관이나 보도기관이기 전에 집권세력을 길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있었지만 육사 같은 곳에서 꾸준히 정치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한계가 컸다. 그러므로 결국 이 나라는 문민화되었고 앞에서 말한 곳들에서 길러진 사람들이 한국을 좌지우지해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조선일보 기자를 하거나 칼럼 쓰는 사람이 과연 미래에 중요정치인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점점 그냥 평범한 블로거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글 쓰는 사람과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단순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글 쓰다 보면 총리가 되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인재를 주목하고 발굴하고 키우는 시대라는 것이다.
단순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글만 쓰고 있는 것으로 누가 총리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새로운 시대에 매우 중요한 재능이다.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니라 기업가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유시민을 좋아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을 미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김용옥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김용옥을 폄하한다. 나는 누군가가 그들을 미워하거나 폄하하는 이유가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들을 미워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의 압도적 대다수는 대중과 소통할 능력이 없다. 그들은 대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분노를 끌어내고 만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즘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없다.
지난 정권에서는 일베가 국정원의 지원을 받았었다는 의혹이 있었다. 나는 현 정권이 정권을 이어가고 싶으면 특정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키우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건 옳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의 정권이 기성 언론과 대화하는 것 이상으로 인터넷을 통한 소통을 하는 것, 그리고 지금 정권의 철학과 관점을 인터넷을 통해 설득하는 것은 정권의 유지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나는 많은 사람이 이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 점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건 그냥 공무원 하나에게 SNS 계정하나 운영하라고 하는 정도에서 멈춰야 할 일이 아니다.
인터넷을 더 키워야 한다. 인터넷 상거래를 활성화하고 통신비를 인하하고 가장 첨단의 통신장비들을 싼값에 보급해야 한다. AR이나 VR 분야 혹은 인공지능 분야가 새롭게 크고 있다면 그걸 원조해야 한다. 앞으로도 세계의 최첨단 인터넷 기술이 시범테스트 되는 국가가 한국이 되게 돼야 한다. 한국이 가장 미래에 가까운 나라여야 한다.
한때 한국은 그런 나라였다. 그리고 그것이 노무현 정권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민주정권을 이어가려면, 그리고 한국이 진정 미래에 어울리는 국가가 되려면 이 부분에 대한 중요성을 좀 더 깊게 느낄 필요가 있다.
5년이나 10년 뒤에 뒤를 돌아보면 미래의 사람들에게 박근혜는 이렇게 보일지 모른다. 사람들과는 만나지도 않고 구식 신문이나 댓글조작단 그리고 일베한테나 의존하여 정권을 유지하려고 했던 사람. 미친 거 아냐?
원문: 격암의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