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19대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전의 투표율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이곳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는 장면이었는데요. 바로 ‘성심당’입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장소 또는 사건으로 꾸몄던 SBS의 지역별 배경 애니메이션에서 대전 지역의 대표 장소는 당당하게 성심당이 차지했습니다. 특정 상점이 지역 전체를 대표한 장면은 대전의 성심당이 유일했습니다.
성심당은 대전을 대표하는 60년 전통의 빵집입니다. 1955년 창업주 고 임길순 창업자가 허름한 찐빵 가게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대전에서 빵집 3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점 개수는 3곳에 불과하지만 연간 매출은 400억 원에 육박하고 직원은 400여 명이 넘는 로컬기업으로 성장하며 전국 3대 빵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뿐 아니라 국내 제과업 최초로 세계적 맛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 그린’에 수록되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는 성심당 빵이 교황의 식사용 빵으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성심당은 단순한 동네 빵집을 넘어 지역과 국가를 대표하는 빵집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요?
‘모두가 행복한 경제’를 꿈꾸다
성심당은 평범한 동네 빵집과는 달리 ‘존재’의 이유를 고민했습니다. “빵을 많이 팔아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여 부를 갖춘다”는 일반 자영업자적 마인드가 아니라 지역과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생각했죠. 이는 성심당의 시작과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고 임길순 창업자는 6.25 전쟁 직후 굶어 죽는 동포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대전역 앞에 천막을 세우고 찐빵을 팔았습니다. 그 때 세웠던 나무 팻말에 적힌 이름이 바로 성심당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성심(誠心)’의 의미가 반영된 이름이었습니다. 실제로 고 임길순 창업자는 찐빵 300개를 만들면 200개는 팔고 100개는 이웃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가 생각한 성심당의 존재 이유는 ‘어려운 이웃’이었습니다. 이런 창업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 성심당이 택한 경영 이념은 바로 ‘EoC(Economy of Communion), 모두를 위한 경제’입니다.
EoC는 포콜라레 운동 창설자인 키아라 루빅이 제안한 기업 경영 방식으로 경제 전반에 인간다움, 나눔, 친교 같은 요소를 들이는 관점입니다. 이 방식은 경제가 누군가를 착취하는 구조가 아니라 공동체의 공익을 위한 활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공동선’을 위해 기업이 존재한다는 관점이 바로 EoC입니다.
성심당은 철저하게 ‘모두를 위한 경제’를 실천했습니다. 성심당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이 공익을 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에게는 맛있는 빵을 제공하고,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는 수익의 15%를 항상 나누고, 협력업체에 ‘갑질’을 하지 않고, 지역 구성원들에게는 매월 4,000만 원이 넘는 빵을 기부합니다. 또한 아무리 가게 사정이 어려워도 정직하게 세금을 내며 수익의 10%는 항상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창업주가 전혀 부를 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업자가 부를 쌓게 되면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기게 되고 모두를 위한 경제가 해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대전 시민의 자부심이 되다
성심당은 연 매출 400억을 달성하는 기업이 되었지만 ‘확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극적입니다.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이라면 분명 전국 곳곳에 분점을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심당은 다른 지역에는 분점을 내지 않고 오직 대전에서만 3곳의 본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심당을 모시기 위한 유통업과 백화점의 유혹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성심당을 방문하기 위해 대전을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인 동기가 충분하기에 입점만 하면 손님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성심당은 60년 역사 동안 오직 대전만을 지켰습니다. 그 이유에 성심당의 안주인인 김미진 이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신의 도시 안에서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며 지역의 가치 있는 기업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의지랍니다.”
이미 대전의 대표로 자리 잡은 성심당이 다른 지역에 분점을 내 빵을 파는 것은 성심당의 존재 이유와 사업 본질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에 내린 결론입니다. 이미 많은 대전 시민들 가슴속에는 “성심당=내가 사랑하는 도시 대전의 가치 있는 기업”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전 시민도 성심당의 이런 모습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대전을 대표하는 로컬기업으로써 지역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그들의 노력을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관광객에게 지역 주민 모두가 성심당을 추천하고, 성심당이 있어서 대전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며 대전의 자랑이라 말합니다. 대전 시민에게 성심당은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대전의 자랑스러운 로컬기업인 셈입니다.
브랜드력을 가지게 되다
성심당의 대표 메뉴는 바로 ‘튀김소보로’입니다. 도넛츠, 소보로, 앙금빵을 합친 개념의 튀김소보로는 1980년에 출시한 후 하루에 1만 5,000개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총판매량은 무려 4,900만 개에 달합니다. 성심당의 히트 제품은 튀김소보로 말고도 더 있습니다. 1983년에는 포장 빙수를 출시해 큰 사랑을 받았고 1985년에는 생크림 케이크가 주인공이었습니다. 이처럼 성심당은 시그니처 메뉴에 집중하면서 단일 제품으로 성심당 알리기에 집중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본인들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일반 빵집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2016년에는 창업 60주년을 맞이하여 옛 충남도지사 공관에서 ’60년 나의 도시 나의 성심당’이라는 기념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성심당의 지난 60년의 스토리와 발자취를 대전 시민과 공유할 접점을 마련했습니다.
성심당이 브랜드력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다양한 스토리입니다. 밀가루 2포대에서 시작해 연 매출 400억 원에 달하는 로컬기업으로의 성장기, 2005년 화재로 인해 매장이 잿더미가 되었지만 직원들의 의기투합으로 6일 만에 다시 빵을 굽게 된 이야기, 하루 빵 생산량의 1/3은 무조건 기부한다는 이야기 등 스토리가 모여 성심당이 일반 빵집과는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많은 이에게 진정성 있는 로컬 브랜드로 다가갔습니다.
중소 로컬기업의 좋은 레퍼런스
세계적인 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심당의 철학과 경영 방식이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 100개의 중소기업이 생겨난다면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다.”
성심당은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지역’과 ‘모든 구성원’에서 찾았습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 성심당을 에워싼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방법을 찾기 위해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부를 쌓고 사업의 확장에 집중하기보다는 부를 나누고 사람에 집중했다는 점이 성심당이 다른 기업과 다른 점입니다. 이러한 성심당의 진정성을 알고 대전 시민은 성심당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누가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성심당 홍보대사가 되어 성심당을 추천합니다.
기업과 브랜드는 결국 사회를 위해 존재합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비전과 신념을 가졌는가, 아닌가에 따라 기업 존속의 가치가 정해집니다. 성심당은 부를 쌓는 대신 다양한 스토리와 대전 시민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성심당이 만약 경영위기를 겪게 되어 폐업해야 한다면 대전 시민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요? 아마 성심당을 지키기 위해 우선 행동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사랑받는 브랜드, 의미 있는 브랜드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