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Nautilus에 Richard G. Bribiescas가 기고한 ‘Why Men Don’t Live as Long as Women’를 번역한 글입니다.
수십 년 전, 박사과정 당시 진화를 연구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의 밀림 속 수렵채집 부족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교사가 선물로 준 듯한 낡은 야구모자를 쓴 한 남자와 마주쳤습니다. 모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남자의 삶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서는 남자, 안 서는 남자, 죽은 남자(Stud, Dud, Thud.)”
한 사람의 평생의 연구 결과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몇 달러에 살 수 있는 모자에 요약된 것을 보는 경험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과학이 가진 매력일 겁니다.
이제 젊은 남성이 사고와 위험한 행동에 의한 사망 사건을 자주 겪으며 특히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며 보험회사에게도 새로운 소식이 아닙니다. 또한 남성은 환경이나 생활습관과 무관하게 여성보다 일찍 죽으며 몇몇 암과 심장병에 대해 더 일찍, 그리고 더 많이 걸립니다. 실제로 남성은 미국의 사망의 거의 80%를 차지하는 사망 원인 순위 1위부터 15위까지에서 여성보다 더 높은 사망 확률을 기록합니다.
여기에 진화적 요인이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문제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연선택은 남자들과 어떤 계약을 맺은 걸까요? 이것은 학문적으로도 확실히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50대에 접어들고 흰 머리가 하나둘씩 늘 때마다 이 문제가 나와 직접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수컷의 짧은 수명과 높은 사망위험은 다양한 생물 종에게서 관찰됩니다. 자연선택은 건강이나 활력, 장수와 관련된 형질을 반드시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일생 동안의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형질을, 진화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적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수명을 줄이거나 건강을 나쁘게 만들어도 적합성이 높아진다면 진화는 그 형질을 선호할 겁니다. 이는 결국 섹스가 생일 케이크보다 좋다는 뜻입니다.
이런 수명과 번식 사이의 관계는 여성에게는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임신, 출산, 수유는 육체적으로도 고된 일이며, 에너지의 면에서도 많은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여러 연구에서 더 많은 아이를 가진 여성은 더 많은 산화 스트레스를 가지며, 이는 폐경 이후의 노화가 가속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시골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적인 2006년 연구에서 더 많은 자식을 가진 여성은 폐경 이후의 수명이 더 짧았습니다.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번식을 위한 노력이 수명을 갉아먹는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남자는 어떨까요? 남자는 임신을 하지 않지만 번식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이는 노년기에 치명적입니다. 이런 ‘번식에의 노력’은 위험한 행동에 참여하거나 몸집, 특히 어깨, 등, 팔 등의 남성에게만 발달하는 특정한 근육을 키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남자의 근육을 일생 유지하는데 드는 대사 비용은 여성의 임신과 수유에 필요한 대사 비용에 필적하지만 그래도 근육 자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심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신체 기능 사이를 관리하는 어떤 생리학적 기제를 진화시키는 건 필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충돌을 관리하는 가장 명백한 신체 요소가 바로 호르몬입니다. 남자에게 테스토스테론은 근육과 번식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처럼 여기에도 비용이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종종 남성 호르몬으로 불립니다. 여성도 이를 생산하지만 그 양은 훨씬 적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턱수염을 나게 하고 목소리를 깊게 만드는 등의 성적 효과 외에도 인간의 에너지 비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동화 호르몬입니다. 동화작용을 증진시키며, 곧 근육을 키우고 대사를 촉진하며 근육의 열량 소비를 늘입니다. 또한 지방 세포를 태우고 성욕을 키우며 기분을 고양시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이렇게 건강에 좋은 작용을 하는 듯이 보이지만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방을 태움으로써 더 근사한 모습을 가지게 되지만 야생에서 낮은 체지방은 식량부족과 감염에 더 취약해짐을 의미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의 증가가 번식에 도움이 되지만 다른 건강 요소에는 해를 끼치는 것은 여러 생명체에서 관찰됩니다. 호주 유대목의 하나인 북부주머니고양이(northern quoll)을 봅시다. 북부주머니고양이 수컷은 일생 동안 단 한 번의 짝짓기 시기에 극적인 테스토스테론 증가를 겪으며 이 시기의 수컷은 싸움과 지방 부족으로 인해 생존확률이 낮아집니다. 암컷은 3년을 살지만 수컷은 운이 좋아야 1년을 살 수 있습니다. 생태학자 제이미 하이니거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들(수컷)은 마치 죽음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 같다.”
인간에게 테스토스테론이 수명과 노화에 미치는 영향은 이보다 더 미묘할 뿐 아니라 이를 제대로 계산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겠지만, 적어도 남성의 짧은 수명에 이 호르몬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남성에세 테스토스테론을 변화시켜가며 이를 측정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실험이 될 것이기에, 연구자들은 보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과거의 자료를 들여다봅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 중국과 오토만 제국에서 특정 종파의 남자들은 성기만이 아니라 음경과 음낭을 포함한 전체 생식기를 절제했습니다. 전근대 대한민국의 왕궁과 17-18세기 유럽의 소년 합창단에도 그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거세는 다른 민족들에게서도 발견되지만 이 세 가지 집단의 특징은 이들의 수명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인과 소년 합창단의 거세된 이들은 보통 사람에 비해 특별히 더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시들의 수명은 더 길었습니다. 과학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이 세 집단에 대한 연구가 모두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이를 가지고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영양이나 사회경제적 위치와 같은 다른 요소들이 테스토스테론과 무관하게 수명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확실한 사실을 알기 위해 과학자들은 동물 수컷들에게 테스토스테론 보충제를 주고 그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조류학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의 증가가 수컷이 여러 둥지를 동시에 만드는 능력과 경쟁자를 쫓아내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보충제를 먹지 않은 새들에 비해 더 많은 자식을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원래부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수컷들 역시 이와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테스토스테론이 번식 적합성에 유리한 상황에서 왜 모든 수컷이 높은 수치를 가지지 못할까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비용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테스토스테론 보충제를 먹이로 먹은 새들의 생존력은 떨어졌습니다. 이들의 지방 비율은 낮아졌고 번식기를 힘들게 넘겼습니다.
테스토스테론 보충제는 오늘날 인간 남성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영양제이며 이들을 살펴보는 것도 테스토스테론이 번식과 수명 사이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데 도움됩니다. 물론 아직 테스토스테론이 수명을 낮추는지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이를 암시하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4년 이루어진 한 연구에서 테스토스테론을 섭취하는 나이든 남성은 섭취 이전에 비해 섭취 90일 뒤의 급성 비치명성 심근 경색 확률이 더 높음을 확인했습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상승은 근육을 키우는 데는 도움되지만 나이든 이의 다른 장기들이 늘어난 신진대사의 부담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은 신진대사의 변화만 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의 일생에서 이 호르몬은 면역능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일대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스턴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초는 몸에 나쁘다(Macho makes you sick).”
남자는 실제로 여자보다 감염에 종종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잠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남자는 여자보다 감염 기회를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또한 병균과의 싸움에서 남자가 화학적으로 더 불리하다는 가설이 있으며 이를 지지하는 증거가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면역 기능을 억제하지만 여성의 주된 성 스테로이드인 에스트라디올(estradiol)은 오히려 면역 기능을 강화합니다. 단 이 점 때문에 여성은 자가면역 질병에 더 취약하며, 이는 에스트라디올이 번식에 주는 이점에 자연이 여성에게 부과한 댓가이기도 합니다.
야생 조류, 파충류, 포유류에서 테스토스테론은 면역 기능을 저하시키며 감염의 가능성을 높이고 그 결과 생존확률을 낮춥니다. 인간이 이들에 포함될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지만 질병 감염 비율이 높은 지역에 관한 자료는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5년 온두라스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말라리아에 걸린 이들에 비해 걸리지 않은 이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더 낮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감염된 이들을 치료하자 이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감염되지 않은 대조군의 수치로 돌아갔습니다.
감염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질병 중 한 종류에 불과합니다. 테스토스테론과 다른 성호르몬은 높은 암 확률과 관련이 있으며 특히 전립선암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예를 들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집단은 전립선 발병률 또한 높게 나타납니다. 다시 한번 섹스는 케이크를 이깁니다.
그럼 남자는 왜 이런 부정적인 테스토스테론을 감내하는 것일까요? 다윈주의적 설명은 잠재적 번식 이득이 포유류 암컷에 비해 수컷에게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짝짓기 기회는 수컷의 적합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제한조건입니다. 이상적이라면 수컷은 1년에 다른 100마리의 암컷과 짝짓기를 할 수 있으며 100마리 이상의 자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암컷은 그렇지 않습니다. 포유류와 다른 영장류, 그리고 인류 사회에 일부다처제가 흔히 발견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수컷과 암컷 사이의 적합성 조건의 차이 때문입니다. 여성 역시 더 많은 짝짓기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더 많은 자식을 낳을 수는 없습니다. 즉 포유류 수컷이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고비용의 호르몬을 가지고 근육과 같이 유지하기 힘든 신체기관에 투자하고 또 위험한 행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잠재적 적합성의 대가가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이런 설명은 당신이 인류의 수백만 년 전 조상인 홍적세 인류라면 맞습니다. 오늘날의 남성들도 그럴까요? 아마 맞을 겁니다. 인간은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받지만 그렇다고 자연선택이 만든 유전적 특징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 사실이 인간이 다른 번식 전략을 진화시킬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록 위험한 행동과 수명을 깎는 고비용의 전략을 택하기는 했지만 남성은 또한 부성 투자(paternal investment)라는 다른 종류의, 영장류와 포유류 등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번식 전략을 진화시켰습니다.
부성 투자는 수컷이 자식의 성장을 돌보는 것입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건강과 수명이 다시 중요해지며, 이를 위해 근육과 위험한 행동은 뒷전으로 물려야 합니다. 실제로 남성은 아버지가 되고 양육에 참여하면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지고 체중이 늘어납니다. 즉 부성은 건강에 유익한 것입니다.
남자, 혹은 인간의 자연선택 과정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화가 우리에게 준 짧은 수명과 열악한 건강상태를 좀 더 견뎌야 할지 모르지만 진화의 핵심은 시대에 따라 바뀝니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의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유연성을 뒷받침하는 생리적 특징은 바로 크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뇌, 긴 수명, 긴 유년기, 많은 자원이 필요한 양육과정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이런 특성이 우리가 어떻게 지구상에 70억 명 이상의 수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인간은 부모의 양육과 같은 진화적 성공을 이끈 뛰어난 번식 전략을 진화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들이 우리가 여전히 번식을 위해 테스토스테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이 수명과 건강에 해를 입히지 않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북부주머니고양이 수컷보다는 인간 남성의 처지가 훨씬 낫지만 말이지요. 어쨌든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