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연구의 필수품?
사실 생물학 연구라고 해도 연구하는 대상이나 주제에 따라서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기자재나 테크닉은 크게 상이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생물학 연구실이라도 거의 빠지지 않고 발견되는 물건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 박테리아, 식물, 선충, 초파리, 바이러스, 맘모스가 되었건 무엇을 연구하든 실제로 물 묻히며 실험하는 생물학 연구실에 위의 기구가 보이지 않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생물학 연구실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면 으레 다음과 같은 사진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디에나 다 있는 마이크로 피펫과 이튜브가 생물학 연구에 등장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그전에는 입으로 빨았다, 레알
흔히 마이크로 피펫과 이튜브가 현대생명과학이 태동할때부터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각외로 마이크로 피펫과 이튜브는 최근의 발명품이다. 마이크로 피펫은 1950년대 말에 발명되었다. 그전에는? 그냥 입으로 빨았다-.-;;; 아니면 파스퇴르 피펫을 사용하거나.
구라 같다고? 아래는 1960년대 이전의 연구자들이 얼마나 마우스 피펫에 의존해서 실험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물론 아직도 마우스 피펫을 이용해 샘플을 핸들링하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입으로 피펫을 빠는 걸 금단의 기술처럼 여긴다. 하지만 불과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샘플, 즉 병원성이 심각하건 유독물질이건 동위원소건(…) 간에 대개의 샘플을 저렇게 입으로 빠는 마우스 피펫을 이용해 다루는 게 보통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현재 사용하는 마이크로 피펫의 원조는 어디인가? 이것은 1950년대 말의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제이이이일!
이전에도 세계 과학을 선도하던 독일이었으나 나치스의 도래로 많은 과학자가 독일을 탈출했다. 2차대전의 패전으로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전후 독일에서도 많은 과학적·기술적 발전이 일어났다. 마이크로 피펫이 탄생한 곳도 바로 독일이다. 마이크로 피펫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이렇게 생긴 사람이다.
하인리히 슈니트거(Heinrich Schnitger, 1925-1964)라는 이름의 이 과학자는 박사학위를 따고 마버그 대학(University of Marburg)에서 포닥으로 일했다. 공교롭게도 이 사람의 아버지는 발명가였다. 슈니트거는 소년 시절부터 발명을, 학위 시절부터 연구를 위한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를 즐겼다고 한다. 덕후네
포닥 시절 그는 매우 많은 샘플로 크로마토그래피를 하고 이것을 분석할 일이 생겼는데, 발명가의 아들답게 이 샘플을 처리하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했다. 그러다가 주사기 안에 스프링을 넣고 샘플을 채취하는 기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가 만든 ‘프로토타입’이 여러 액체를 지정된 양만큼 채취하는 데 유용할 것 같다고 생각한 그의 보스는 대학의 공작실에 의뢰해서 그의 프로토타입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들도록 의뢰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런 것이었다. 단 이때의 모델은 피펫에서 볼륨을 조절할 수는 없고 고정된 볼륨만을 취할 수 있었다. 슈니트거는 ‘액체 소량을 빠르고 정확하게 피펫팅하기 위한 장치(Vorrichtung zum schnellen und exakten Pipettieren kleiner Flüssigkeitsmengen)’라는 제목으로 1957년 특허 출원했고 1960년 특허 등록되었다.
이 기술은 에펜도르프(Eppendorf)사에 독점 라이센스되었으며, 에펜도르프사는 1961년 그의 제품을 상업화한다. 발명자인 하인리히는 큰 부자가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그의 발명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기 전인 1964년 독일 바바리아의 호수에서 수영하다가 39세의 젊은 나이로 익사했다.
길슨 피펫 Gilson Pipette
비록 마이크로 피펫이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상용화는 에펜도르프사에서 처음 이루어졌지만 이 제품이 독일 외의 다른 국가, 특히 미국에서 쓰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고정된 부피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피펫은 어디서 처음 만들었나? 이것은 요즘 피펫의 ‘산업 표준(Industry Standard)’이라고 여겨지는 길슨(Gilson)사에서 처음 만들었다.
길슨사는 위스콘신대학의 의대 교수였던 워렌 길슨(Warren Gilson)에 의해서 처음 창업되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실험용 기자재를 생산하던 회사였다. 볼륨 조절이 가능한 첫 피펫은 길슨사에 의해 1972년 특허 출원되었고 1974년 특허 등록되었다. 여기 나와 있는 피펫은 거의 현재 사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즉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볼륨 조절 가능한’ 마이크로 피펫은 1974년 이후의 발명품이며, 그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분자생물학/생화학 연구는 ‘입으로 빠는’ 피펫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실감이 나는가?
최초의 피펫을 상업화한 에펜돌프 사에서 왜 볼륨 조절 가능한 피펫을 출시하지 못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피펫을 처음 상용화한 회사는 에펜돌프지만 볼륨 조절 가능한 피펫을 만들어서 오늘날 마이크로 피펫터의 원조로 알려지는 회사는 길슨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튜브와 미니 원심분리기
에펜돌프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볼륨을 조절 가능한 피펫을 만들지 않은 것은 그네들의 실수이지만, 대신 이들은 생명과학 실험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을 만들었다. 그것은 1.7mL 미니 원심분리 튜브인 ‘에펜돌프 튜브(Eppendorp Tube)’, 흔히 말하는 ‘이튜브(E-Tube)’.
그전까지 생화학/생명과학 실험에서 작은 용량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던 건 볼 것도 없이 유리 시험관이었다. 그러나 에펜돌프의 최초의 피펫으로 샘플을 신속하게 분주하는 것이 가능해진 후, 여기에 어울리는 작은 용량의 튜브와 이것을 원심분리할 수 있는 탁상용 원심분리기가 개발되었다. 최초의 에펜돌프 튜브가 등장한 것은 1963년이다.
그렇게 에펜돌프는 ‘마이크로리터 시스템(Microlitter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1mL 이하의 시료를 다룰 수 있는 튜브, 원심분리기, 피펫을 세트로 팔기 시작했다. 이것이 1964년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시스템은 기존에 유리시험관에 들어 있는 시료를 마우스 피펫으로 입으로 빨아서 실험하던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편의를 가져온다. 특히 분자생물학의 도래와 더불어 1mL 이하의 소량 시료로 실험하게 된 것의 원동력은 1mL 이하의 시료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실험기구들의 등장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위원소 입으로 빨던 선배님들을 추모하며 (…)
이렇듯 우리가 지금 현재 실험실에서 필수품처럼 여겨지던 마이크로 피펫, 이튜브, 탁상용 원심분리기와 같은 것들은 모두 1970년대 이후에 보편화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 이루어진 모든 분자생물학적/생화학적 발견들, 가령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발견이라든지, DNA 폴리메라아제(Polymerase)의 발견이라든지, 온갖 잡스러운 대사관련 효소의 발견이라든지, 심지어 유전암호의 발견 같은 것까지 대개의 분자생물학책의 발견은 ‘동위원소를 마우스 피펫으로 빨아가며 실험하던’ (…) 선배 연구자들의 노고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좀 하루 피펫질 빡세게 했다고 ‘생물학은 왜 이리 노가다인 것인가!’ 하고 좌절하지 말라고
원문: Secret Lab of a Mad Scien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