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설명할 수 없으면, 이해하지 못한 거다.” 빌 게이츠의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설명할 수 있으면, 이해한 것이다”라는 뜻이다. 조금 더 확대하자면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이해했다”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과학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기관이다. 이곳에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라는 대형 실험장치가 있다. 50~170m의 깊이에 둥근 터널 모양으로 만든 LHC는 길이만 무려 27km에 달한다. 이 실험장치에는 보통 이런 설명이 붙는다.
양성자 빔이 지나가는 2개의 파이프가 있으며 각 파이프는 액체 헬륨으로 냉각되는 초전도 자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주 탄생 직후 상황인 빅뱅을 재현해 우주 탄생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
미국의 유명 과학 블로그(xckd) 운영자이자 『위험한 과학책』의 저자 랜들 먼로는 이런 어려운 설명이 과학을 더 어렵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LHC를 이렇게 요약한다.
아주 작은 물질을 때리는 아주 큰 기계.
‘쉬운 과학’은 과연 불가능한가?
과학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요청은 자신의 연구 분야와 기술을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거다. 과학 대중화, 과학문화 확산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면서 이런 요청은 늘고 연구자들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제 일전에 만났던 한 연구자는 ‘쉬운 과학’이라는 표현 자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과학은 원래 어렵다(그의 표현에 따르면 ‘어려우니까 과학이다’).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왜곡이 발생한다. 이러한 왜곡은 과학의 본질을 훼손한다. 그래서 쉬운 과학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그 연구자의 주장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과학자, 혹은 연구자에게 랜들 먼로 같은 사람은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어쩌랴. 과학을 전공했거나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 이상 과학은 여전히 어렵고 멀다. 상대성 이론, 빅뱅 이론, 슈뢰딩거 고양이와 양자역학과 같은 용어가 등장하면 과학의 ‘불가촉천민’이 된 듯한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랜들 먼로는 이런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는다. 학창 시절 어려운 수학 공식을 선생님보다 더 쉽게 설명해주던 친구와 같다. 실제 그런 친구가 있었다. 도저히 못 풀고, 정답을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수학 문제가 있다. 그때마다 그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선생님보다 더 쉽게 설명해주곤 했다. 물론 그 친구와 나의 성적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1,000개의 단어만 사용, 나머지는 그림
랜들 먼로의 후속작 『친절한 과학 그림책』에는 ‘간단한 단어로 설명하는 복잡한 것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림이 많은 책이지만, 동화책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복잡한 것을 간단한 단어로 설명하는 책이다.
원자력발전소와 국제우주정거장(ISS), 인체 기관과 주기율표에 이르기까지 전문 용어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했던 과학적 현상이나 사물에 관해 기발하고도 단순하게 설명한다. 그림도 표현 수단의 하나로 본다면, 가장 간단한 언어는 그림일지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그림을 선택했다.
랜들 먼로는 이 책을 쓰면서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1,000개의 영어 단어(번역판은 1,500개의 한글 단어)만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까지 저는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말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아주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 말하거나 책을 쓰곤 했어요.
이미 그는 『위험한 과학책』에서 재기 발랄한 입담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책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멍청한 질문은 답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에요. 멍청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에는 꽤나 흥미로운 곳에 도달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러고는 ‘멍청한’ 질문을 계속 쏟아낸다. 지구가 자전을 멈추면, 투수가 진짜 광속구를 던지면,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수영을 하면, 하늘로 계속 올라가면, 외계인이 우리를 보면, 인체에서 DNA가 사라지면, 바다에 구멍이 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등. 심지어 이런 질문도 던진다. 태양이 없다면? 물론 답은 전혀 멍청하지 않다. 과학적 이론뿐 아니라 실증적 실험을 바탕으로 한다.
어려우니까 과학이라고?
이런 방법은 『친절한 과학 그림책』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단 주제를 쉽게 요약하고 설명을 시작한다. 함께 쓰는 우주의 집(국제우주정거장), 우리 몸을 이루는 아주 작은 물 보따리(세포), 세상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조각들(주기율표), 불타는 물(석유), 하늘 보트(비행기), 손 안의 컴퓨터(스마트폰), 피를 내뿜는 주머니(심장), 에너지 상자(배터리) 등이 이어진다.
하지만 단어와 용어를 설명하는 책은 아니다. “세상에는 무언가가 뭐라고 불리는지 설명하는 책은 이미 널려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 사물이 무엇을 하는지 설명하려고 합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무언가가 뭐라고 불리는지가 아니라 그 사물이 무엇을 설명하는 책이다. ‘과학=전문용어’라는 통념을 바꿔보자는 거다.
이 책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 사물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만약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이 주된 관심사다. 이런 사물을 열어보면, 뜨겁게 하면, 차갑게 하면,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등의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 답의 설명은 쉽고 친절하고 흥미롭다.
첫 페이지를 열면 함께 쓰는 우주의 집(국제우주정거장)의 그림과 각 부위별 설명이 눈에 띈다. 우주 공간에서 물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볼 수 있는 베란다가 있고, 사람이 다니는 문, 우주 보트가 다니는 문이 있다. 사람이 다니는 문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우주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냥 나가면 죽습니다.
집게 팔에 관한 설명은 이렇다.
눈이 아주 많이 오는 나라에서 만들었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 팔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돈에 이것을 그려 넣을 정도랍니다.
어렵게 말하면 모른다니까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령이 필요하다.
- 사물의 이름보다 그것이 하는 일에 집중해서 읽기.
- 그걸 바탕으로 그 사물에 대한 자신만의 이름을 지어보기.
- 즐겁게 수수께끼를 풀어보는 마음으로 접근하기.
- 마지막 네 번째가 중요하다.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랜들 먼로 특유의 막대 캐릭터를 놓치지 말기.
다시 말하지만, 그림책이라고 우습게 보면 오산이다. 지은이가 웹툰 작가라고 무시하면 큰 착각이다. 랜들 먼로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로봇공학자로 일했다. 국제천문연맹(IAU)은 최근 발견된 소행성에 그의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다. 이른바 ‘4942 먼로’. 그래도 폼 잡지 않고 책 뒤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촛불 아래에서 하는 낭만적인 식사를 좋아하고, 해변을 따라 오래도록 걷는 산책을 즐깁니다. 아주 긴 산책 말이죠.
어디 과학뿐이겠나. 말끝마다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쓸데없이 엄숙하다(진지하다, 조용하다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 이유가 있다. 잘 몰라서 그렇다. 그 사실을 들킬까 봐 미리 엄숙한 척한다. 괜히 토 달지 말라는 거다.
『위험한 과학책』과 함께 읽기를 권한다. 랜들 먼로가 직접 그린 대형 그림을 책상에 붙여놓고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원문: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