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구는 매우 편향적이다. 30년을 대구에 살았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은 주말에 시간을 내어 방문하고, 가족과 처가, 친구들도 모두 대구에 살고 있다. 30년을 느꼈지만 박근혜 탄핵으로 보수진영이 분열되면서 더 크게 와닿는다. 대구는 참 편향적이다.
나의 대구 지인 대부분은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라고 한다. 이유를 물었다. 문재인은 아닌 것 같단다. 왜 아닌 것 같냐고 다시 물었다. 그냥 느낌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 문재인을 제외한 4인 중에서 왜 안철수냐고 물었다. 그냥 안철수가 이미지가 제일 좋다고 한다.
어이가 없고 기도 차지 않았다. 5년만다 돌아오는, 자신이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든든하며 소중한 권리를 ‘그냥’이란 이유로 잘 모르는 후보에게 행사하겠다는 그 발언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정치적 소견이 다르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건 그 소중한 권리를 위해 충분히 고심한 후의 선택일 경우에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대답을 했다. 너희가 문재인이 싫고 민주당 정권이 싫다면 굳이 문재인을 투표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나도 문재인이 100% 좋아서 투표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많다. 하지만 정말 ‘그냥’ 안철수를 찍는 거라면 심상정이나 유승민에게 투표해라. 너희는 노동자다. 노동자를 가장 잘 대변하는 정권은 정의당이고 심상정은 노동자를 잘 대표할 수 있는 후보다.
싫단다. 여자 대통령은 이제 싫단다. 그리고 메갈이라고 한다. 더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유승민이 있지 않냐. 유승민도 과거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스스로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보수라는 이미지에 잘 부합한다. 자유한국당이랑 홍준표와는 확연하게 다르지 않냐. 그리고 유승민이 이번 대선에서 선전한다면 대구와 경북 지역에는 대구와 경북을 잘 대변해주는 새로운 정치인이 탄생할 수 있지 않냐. 싫단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지 않고, 뭔가 이미지가 대통령보다는 국무총리나 장관 이미지란다.
그렇다. 나의 설득은 실패했다. 나의 경험에 비춘 매우 단편적인 에피소드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적어도 대구와 경북의 특히, 수성구에서 자란 내 또래가 가진 일반적인 사고와 성향일 수도 있다는 생각. 적어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지인은 위의 반응과 대동소이했다.
괴로웠다. 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은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결국 시민이 자신을 가장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인에게 표를 행사해 내가 정치적으로 원하는 것, 나에게 정치적으로 필요한 것을 쟁취하는 행위 아닌가. 다른 건 몰라도, 축구선수나 축구 산업에 종사한 사람이라면 2002년에 정몽준에 대한 지지가 매우 현명하고 일반적인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2.
내가 동성애자라면 매우 독실한 기독교 신자나 동성애 혐오론자에게 투표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재벌총수라면 법인세를 인상하거나 재벌개혁 등을 공약에 건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건 울며 겨자먹기다(그들은 결국 될 사람에게 줄을 서야 하니까).
TK의 내 친구들을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지역’과 ‘계층’이다. 이 친구들은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 있지만, 가장 직관적으로 대구와 경북 지역 출신에 현재도 여기에 거주하고 거기서 노동자로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워낙 보수적인 지역이다. 그래서 평생 지역에서 살았다면 노동자를 잘 대변하는 심상정이나 그와 유사한 문재인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지역’을 대변해주는 후보나 정당에라도 투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역주의를 조장한다고 하면 하는 수 없는 이야기지만, ‘지역’에 기인하여 문재인을 뽑지 않는 것이라면(평생 그런 분위기에 살았고, 그런 문화에서 살고 교육받았다면) 적어도 자신의 선택이 ‘지역’에 기인해야 한다. 이건 지역주의가 아니라 지역색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TK를 대변하는 후보와 정당이 아니다. 지역주의 논란에서 조금 더 벗어나자면, 그들은 TK의 정서와 문화에 대해 무지하다. 지역 기반이 없으니 TK의 지지자나 시민과 대화할 수 있는 창구도 없다.
일반적으로, 호남은 전략적 선택을 잘하는 지역이라 말한다. TK는 지금까지 전략적 선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1번 찍으면 됐으니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보수진영은 붕괴되었고 적어도 이번 선거에서 보수 후보가 대권을 잡을 일은 없다. 그러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문재인이 싫으니까 문재인을 막을 가능성이 있는 후보가 아니라, 문재인이 후보가 되더라도 내 지역과 내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난 유승민의 TK에서의 지지율을 보고 있노라면 늘 1번 후보만 찍으면서 지역이 파탄났던 그때보다 지금이 더 우려스럽다.
원문: 시시콜콜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