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시간이 없어서 정책이든 이슈든 며칠에 한 번씩 따라가는 게 고작이었다. 그냥 오다가다 생각한 내용들을 기록해둔다.
1.
한국에서 단기간의 정치적 전망을 예측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걸 감안하여 아예 누가 당선될지 예측하지 않고 있다. 가끔 이번 선거를 어떻게 전망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두 명 중 한 명이 되겠지”라고 답하고 야유를 받는 길을 택한다. 선거 결과 자체보다는 선거 뒤에 어떤 난점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쪽이 좀 더 이것저것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문재인 혹은 안철수, 누가 되든 간에 현시점에서 의회를 단일 정파/정당이 장악하기란 불가능하다. 동시에 두 당 모두 90여 석을 확보한 자유한국당과 협력을 공언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바른정당과 연정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좋든 싫든 두 정당은 서로를 파트너로 설득해야 할 과제를 떠안는다.
문재인이 당선될 경우, ‘친문(그런 것이 있다면)’은 가장 강력한 정파가 될 수 있지만 어차피 민주당 내 비문을 포섭하고 국민의당 혹은 바른정당과의 협력이 없이는 의회 다수파가 될 수 없다. 이 경우 한편으로 친문 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인물이 등장할 것인지(이미 있다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친문이 다른 정파들에게 ‘타협 가능한’ 상대로 인식될 것인지 여부가 중요해질 것 같다. 최악의 경우 친문이 느슨한 상호협력집단으로 돌아가고, 타 정파에게 (종종 386운동권들이 그렇게 인식되듯) 타협 불가능한 이들로 간주된다면, 다른 정파들이 ‘386운동권’의 비타협적 독재를 막기 위해 결속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직에 당선될 경우 강력한 도덕적 자기확신을 가진 386중도-진보 그룹의 영향력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안철수가 당선될 경우, 제아무리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한 한국이라고 해도 40석가량으로는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유한국당과 연합하는 건 너무나 정치적 리스크가 크므로) 민주당 내 비문파의 탈당을 유도하고 바른정당과 연합한다고 해도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기는 무척 힘들다. 이때 불확실성을 높이는 가장 커다란 요소는 과연 대통령직을 확보한 안철수가 과거 악명높은 비타협적 성격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 즉 얼마나 “정치적 인격”으로서 행위할 수 있을지일 것 같다. 국민의당이 여전히 소수 정파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비타협적 성격이 두드러질 경우 한국 정치의 혼란 정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누가 당선되든 의회 내에서의 타협과 조정 가능성이 정국의 안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각각의 경우에서 위험요소는 민주당 내 친노-친문 세력의 성향, 그리고 안철수라는 개인의 인격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달려 있다(역시 우리는 인격적 요소를 정치에서 배제할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2.
내 생각에 가장 제도화된 공식 정치에서조차 (도덕성을 포함한) 인격이라는 요소를 제거할 수 없는 까닭은, 다른 곳에서 짧게 언급한 적이 있지만, 선거란 단순히 현재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정책의 집합을 제시하고 선택하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태에 대응하는 결정권자를 선택하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집단 혹은 관료기구조차도 가장 나은 선택지를 제시할 수 없는 일들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후보자의 인격은 유권자로 하여금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혹은 적어도 예측 가능하다고 믿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다. 다시 말해 정치에서 미래라는 시간적 지평을 소거할 수 없는 한 우리는 마찬가지로 불확실성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격을 제거할 수 없다.
미래라는 지평은 단지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근원일 뿐 아니라 공식적인 정치행위자에게 중요한 과제를 부여하는 보다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즉 우리는 국가권력의 운용자를 선택할 때 단지 과거로부터 현재에까지 이어지는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를 기대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상을 적극적으로 현실화하기를 요구한다.
한국은 어떤 복지국가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발전과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가? 합리적인 정부, 합리적인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정치·경제적 국제경쟁력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등등의 물음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는 것은 정치에서 미래의 지평이 골치 아프지만 배제할 수 없는 요소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비록 토론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후보들이 과연 미래의 지평을 고민하는지를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가까운 지인들을 포함해 우리는 정치가 더 이상 주어진 문제를 제거하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더 빨리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어쨌든 우리는 2010년대 중반의 한국 정치를 말하면서 박근혜라는 요인의 중요성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 그는 한국의 가장 강력한 거대보수 여당을 일시적으로나마 무력화·분열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6년 10월 말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사태’의 난입이 보여준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이정현과 친박이 이끌던 거대보수 여당 새누리당이 정치적으로 매우 무력한 집단이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매우 간추려 말해서 우파정당의 작동방식이 공천권 등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통제구조가 있고, 중앙집권 및 내부경쟁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국가의 공적 자원을 보상·배분함으로서 해소하는 것이었다고 추측해보자. 박근혜·최순실의 위기는 중앙집권적 체제의 두뇌가 공격받을 때 정당 자체가 마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박근혜의 몰락은 선거를 통해 헤게모니를 획득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을 때 우파가 둘 혹은 셋으로 분열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파가 결속하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이 현실적인 보상 가능성이라면, 그것이 사라졌을 때 우파 또한 분열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127석을 점유한 거대보수 정당은 90여 석과 30여 석, 그리고 1석을 차지하는 세 개의 정당으로 분할되었다. 앞의 두 정당이 과연 규모에 걸맞는 정치적 효율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적어도 자유한국당은 경선 및 홍준표의 선출과정에서 90여 석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인상을 전혀 주지 못했다. 대선의 패배 이후 두 정당이 어떤 관계를 맺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지도자가 언제 등장할 것이며 그가 (특히 바른정당의 경우) 보상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제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앙집권적 통제구조를 재정립할 수 있을지 등등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또 하나 눈여겨보고 싶은 지점은 거대보수 여당과 결합해 있던 대규모 우파’시민’단체들의 향방이다. 87 이후 진보 운동권들이 대대적으로 시민사회운동으로 뛰어드는 걸 본 우파는, 여기서 뉴라이트의 역할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시민사회 곳곳에 우파적인 입장을 대변해 줄 단체들을 심는 데 주력했다. 이는 2010년대 중반에 이르면 우파 청소년단체, 우파 대학생단체(얼마 전 ‘우파 페미니스트’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가 한국대학생포럼, 즉 이쪽 계열 소속이다), 우파 청년단체, 우파 노년단체 … 등등 거의 모든 부분에 우파 단체들이 자리 잡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파정당 및 정권은 이들 단체에 전경련 등의 기업자본과의 네트워크 혹은 각종 공식적/비공식적 경로를 통한 자금 등을 제공했으며, 우파단체들의 구성원은 충성경쟁을 통해 주어진 보상을 획득하고 경우에 따라 예컨대 자유경제원의 전희경이나 ‘청년이 여는 미래’의 신보라 등이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들어가는 것처럼 노력에 따른 ‘신분상승’ 등을 하기도 한다.
현재의 선거전에서 각 지역의 우파단체들은 자유한국당을 지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자유한국당이 최종적으로 자원배분권을 상실하거나 매우 미약하게만 보유하게 될 경우 과연 그동안 축적되어 온 우파시민단체들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있다. 보상 가능성이 희박해질 때 이들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만약 이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없다면, 특히나 지역정치·선거를 위한 조직의 수요는 언제든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세력이 이들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 획득할 것인가(그럴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만약 국민의당이 TK에서 과거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우파네트워크 일부를 장악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4.
마지막으로, 나는 현시점 진보정당의 미래에 다소 비관적이다. 2010년 이후 한국의 주요 정당은 모두 복지정당이 되었고(2010년대 한국 정치 담론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두 가지만 꼽는다면 하나가 페미니스트들의 대대적인 대두, 다른 하나가 복지 담론의 대두일 것이다) 한국의 대중 정치는 점차적으로,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흐름으로 ‘합리적 중도보수’의 중력장 내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진보정당의 위기는 단지 더 많은 사람이 중도-합리주의의 스탠스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진보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진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제출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데 기인한다. 모두가 신자유주의에 이끌려가던 시절 진보정당은 사민주의와 복지국가를 이야기하면서 진보정당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복지정당이 되었을 때, 진보정당을 다른 정당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은 도대체 무엇인가?
진보정당은 지자체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상급식도, 기본소득도 더불어민주당에게 헌납한 셈이 되었으며, 더불어민주당과 비교해 더 나은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던 것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수년간 이루어진 인적자원의 유출, 더불어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 등을 떠올려보자). 최근 심상정이 보여준 순발력에도 정의당은 여성주의 이슈를 자기 걸로 삼는 데 실패했으며, 민주당에 실망한 중도진보 청년층을 공략하려던 전략은 역으로 민주당과의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정당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리스크를 떠안게 했다(정의당에서 이재명을 포기하고 심상정을 선택할 수 있는 당원은 얼마나 될까?).
곧 60대에 도달하는 노회찬과 심상정 이후 유력한 차세대 정치인을 재생산하는 것에도 성공한 것 같지 않다(다른 무엇보다도 재생산의 문제에서 한국의 진보들이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준 사례를 쉽게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서구의 좌파들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더 수입할 수 있는 의제도 이제는 많지 않아 보이는 지금, 진보정당이 스스로를 진보로 차별화할 방안이 무엇인지 명확한 답변이 주어진 것 같지는 않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진보정당은 어떤 근거로 진보정당이 될 수 있으며, 좀 더 나아가 오늘날 한국에서 진보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과거 진보적인 의제라고 불리던 것들에서 특정한 태도를 고수하면 자동적으로 진보가 될 수 있는가? 진보정치란 과거-현재의 오류를 시정하는 일인가, 아니면 미래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일인가? 후자라면 과연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개별적인 당원 몇몇이 아닌 하나의 결집된 정치세력으로서 정의당이 과연 어떤 답변을 제공할 수 있는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적어도 고등교육공약에 있어 정의당의 계획은 1980~1990년대에 머물러 있는 참담한 수준이다. 현재 정의당이 한국의 고등지식생산과정에 대해 유의미한 이해도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주요 정당에(예컨대 성 소수자 이슈) 실망해서, 혹은 과거 진보를 지향했던 관성에 의해 진보정당을 지망할 순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진보가 정치세력으로, 정당으로 유의미하게 존속하기를 기대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