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스물다섯은 아이유의 것이다. 아이유의 스물 셋이 그랬듯 아이유는 이번에도 자기의 스물다섯을 나눠줄 생각은 여전히 없다. 아이유의 노래는 아이유만의 것이고, 우리는 아이유의 스물다섯을 그저 그가 허락한 만큼만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소유하게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소유란 의미가 자기의 삶을 제 의지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삶을 수많은 타인들 속에서 지켜낼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다.
그래서 아이유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어른이었다, 어떤 어른이 ‘웃음을 던지면서, 슬픔을 부딪히며 찬찬찬’이라며 세상의 고통과 설움 다 진 듯 이야기할 때, 스물 다섯의 아이유는 ‘원래 세상은 그런 거야’라며 굳이 힘 빼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의미 그놈의 의미,
<잼잼, 아이유>
나의 스물 셋엔, 나의 스물다섯엔 내가 누군지 잘 몰랐다. 나는 누군가의 존재위에 규정됐다. 누군가의 칭찬에 기뻐하고, 비난에 잠을 못 이뤘다. 나의 세계랄 게 없었다. 종종 반짝이는 것을 쫓았고, 쫓던 그것이 빛을 바래면 금방 또 그렇게 싫증을 냈다.
내 것이 없었던 때, 그래서 남의 것을 탐내던 때. 모래성 같은 자아 위에 자존심이랄 것 몇 개만 움켜쥐며 살았던, 불안한 때가 있었다. 말 그대로의 불안이었다. 내가 내뱉는 이야기에 나의 것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만큼 똑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언제든 가짜인 내 것을 들춰내고 흉볼 것 같아 무서웠다. 서른이 조금 넘은 지금, 겨우 내 것들을 찾아서 내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이따금 그 때를 떠올리면 ‘참 어렸지’란 생각을 한다. 지금 내가 겨우 어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덜 자란 아이였다.
스물 셋의 아이유는 그때의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을 갖고 있었다. 스물 셋 어린 여자애를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공허한 의미일 수 있으며 우리는 때론 사랑받기 위해서 오히려 나를 감춰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진짜배기 나’나 ‘자아를 찾은 나’ 따위가 아니라 그것들을 아주 잘 숨길 수 있는 가면이란 것. 그리고 사랑받는 것이란 곧 살아남음과 다름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의 온갖 ‘진짜’는 결국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일 뿐이란 사실도.
발그레해진 저
두 뺨을 봐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그 안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제제, 아이유>
그걸 아는 스물 셋 아이유의 배려는 이런 식이다. 진짜 배려는 굳이 당신의 가면 뒤를 들춰보고 나서, 그걸 이해한다는 식으로 표정을 지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들추어보지 않는 것 그 자체다. 내가 당신에게 내 가면 뒤의 모습을 들키기 싫듯, 나도 당신의 가면 뒤 모습을 궁금해 하지 않겠다는 게 아이유식 배려다.
공들여 감춰놓은 약점을
짓궂게 찾아내고 싶진 않아요
그저 적당히 속으면 그만
나는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
누구의 흠까지 궁금하지 않아
<안경, 아이유>
사랑도 마찬가지다. 너나 나나 피차 가면을 쓰고 살 텐데, 우리가 사랑한다면 이유로 왜 굳이 적당히 추잡한 가면 속 민낯을 봐야 하냐는 거다. 믿음이란 당신의 가면 뒤 모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당신이 쥐고 있는 바로 그 예쁜 가면을 항상 꺼낼 수 있냐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한다고 해
입에 발린 말을 해 예쁘게
끈적끈적 절여서 보관할게
<잼잼, 아이유>
가면에 지친 사람들은, 꿈처럼 진짜배기를 찾아 헤맨다. 그런 건 사실 없고, 만약 있다고 해도 우리가 서로의 민낯을 보면 상처만 될 뿐이다. 그래서 아이유는 늘 연기한다. 진짜 같은 가짜, 혹은 가짜 같은 진짜를. 뭐든 상관없다.
그 어느 것도 가짜는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중요한 건, 내가 내민 게 진짜인지 여부보다는 이게 진짜라는 자기의 확신일 뿐이고,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기꺼이 달콤한 걸 집어 들겠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그게 진짜라고 믿는 것 뿐이다.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스물셋, 아이유>
지난 두 개의 앨범을 통해 아이유가 구축한 서사는 그 가면들 사이의 실루엣, 그걸 관음하게 하는 만드는 것이다. 이것저것 보여주고, 뭐가 진짜인지 계속 캐묻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에 다 진짜라고 이야기한다. 이번 앨범 <팔레트>의 동명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수많은 모습의 아이유가 등장한다. 어느 것을 보고 싶고 어느 것에 빠져들고 싶은지는 우리의 자유다. 다만 그것은 잘 포장된 것일 뿐, 네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미워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팔레트, 아이유>
아이유는 ‘어른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아이 흉내’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건 어설프기 짝이 없다. 그 어설픈 연기에 속아 넘어가서 ‘아이인 그녀’를 관음하며 열광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그녀는 또한 관음할 거다. 그 어설픔은 의도적 연출일 뿐이다. 온갖 가면의 향연들과 진짜를 찾아내려는 욕망이 얽혀 아이유의 서사는 완성된다.
아아, 이름이 아주 예쁘구나 계속 부르고 싶어
말하지 못하는 나쁜 상상이 사랑스러워
<제제, 아이유>
스물 다섯에 이런 완벽한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녀를 나는 다만 찬양하고 응원할 뿐이다.
원문: 백스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