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대선을 앞두고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인사들의 신간이 쏟아지고 있다. 소설의 형식을 빌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돌아본『오래된 생각』, 노무현의 비서관들이 말하는 청와대 이야기인『대통령 없이 일하기』, 노무현-문재인에게 덧씌워진 왕따 프레임을 분석한 『왕따의 정치학』이 그것이다. 세 책의 공통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언론’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진보 언론’에 대한 섭섭함과 아쉬움이 담겨 있다. 『왕따의 정치학』은 참여정부에서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썼다. 이 책은 ‘왜 진보언론조차 노무현-문재인을 공격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조 교수는 그 의문에 대한 답으로 다음과 같은 7가지 갈등을 들었다.
- 진보언론의 양심 결벽증
- 시간과 재정이 부족한 진보언론의 열악한 업무 환경
- 폐쇄적인 엘리티즘
- 비판의 효능감 혹은 스톡홀름 신드롬
- 언론의 특권을 이용한 킹메이커 바람
- 언론권력의 사유화
- 노무현과의 이념적 갈등.
조 교수의 주장을 다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폐쇄적인 엘리티즘과 이념적 갈등은 주목할 만하다. 엘리티즘이란 이른바 386 운동권들의 학벌 특권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대학을 안 나온 노무현이나 경희대 출신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실제로 정봉주 전 의원은 비주류 대학 전대협 의장 출신 국회의원인 본인이나 최재성, 정청래 의원 등이 운동권 엘리트들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다.이념적 갈등은 무얼 말하는 걸까. 서구에서는 20세기에 좌우 대립이 있었다. 영국에선 자유당이 보수당에 일부 흡수되면서 사라지고, 노동당이 좌파 정당으로 등장해 복지권이 확립됐다.
그래서 20세기에는 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면 좌파, 경제적 자유(사유재산권)을 추구하면 우파가 됐다. 경제 문제가 정당을 가르는 핵심 균열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68혁명이 일어났다. 68혁명은 경직되고 비인간화된 공산주의에 대한 염증을 표출했다.
20세기의 자본이냐 노동이냐 하던 경제적 균열은 둘 다 물질주의일 뿐이다. 물질주의는 빈곤과 전쟁 등을 겪은 세대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68세대는 2차 대전 이후 평화와 풍요 속에서 자란 중산층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전후 세대로서 배고픔과 전쟁의 위협을 모른다. 이들에겐 물질이 더는 중요하지 않기에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기본적으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좌우가 서로 싸우면서도 똑같이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을 혐오했다.
권위주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에 기초한다. 집단주의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유럽의 신세대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경제가 풍요로워질수록 인간은 개인주의적으로 변한다. 68세대에게는 물질보다 자아실현과 정의 같은 가치관이 더 중요했다. 예컨대 인권과 일상 속에서의 민주주의, 환경, 생태, 여성 등의 가치를 높이 사고 이를 위해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과정을 압축적으로 겪었다. 1987년 이전까지는 참정권을 위해 싸웠고,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까지는 노동권을 위해 싸웠다. 조 교수에 따르면,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를 서구의 68세대와 동일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진보 언론은 20세기 경제적 평등이라는 구좌파 이념을 추구했고, 노무현은 21세기의 진보라고 할 수 있는 탈물질주의 이념을 추구한 신좌파라는 것이다.
따라서 조 교수는 노무현 왕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보수, 진보가 아니라 우파, 좌파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보인 노무현과 좌파 언론이 갈등을 보이는 이유는 좌파 언론이 노무현만큼 진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탈권위주의적이었던 노무현에게 늦게나마 헌사를 바친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21세기 진보적 자유주의자였습니다.”
조 교수는 문재인이 훌륭한 인품이나 능력, 자질에 비해 압도적인 과반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좌우 언론의 공격이 그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문재인이 노무현의 왕따 유산을 상속했기 때문이다.
또한 조 교수는 이러한 언론의 왜곡과 공격에도 문재인이 지지도 1위를 유지하는 이유는 열렬한 지지자들이 받쳐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노무현의 가장 중요한 유산인 깨어 있는 시민을 지지자로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왕따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왕따의 피해자(문재인)이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다. 왕따의 고백이 가해자(구좌파)를 설득하진 못하겠지만, 수많은 방어자(신좌파)를 만들어내 다수가 되면 왕따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이제 대선이 열흘 밖에 남지 않았다.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언론의 프로파간다에 휘둘리지 말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한다. 『왕따의 정치학』에 담긴 조기숙 교수의 주장을 전부 수용할 순 없지만, 현명한 선택을 위한 길잡이가 될 것임에는 틀림 없다.
“결국 민주주의란 언론, 정부, 권력기관에 대한 시민의 통제를 어떻게 강화해갈 것이냐 하는 문제.” – 노무현
원문: 북클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