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난 감상문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부럽다”는 단어로 정리하겠다. 나 역시 경제에 관한 이런저런 콘텐츠를 만들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경제학의 내용을 재미있게 꾸며 볼까?’를 늘 생각해 왔다. 혼자서 생각하고 실행해 본 이런저런 스토리나 구성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질투와 함께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내가 해온 구상보다 훨씬 밀도 있게 짜였고, 내용 설명도 깊이 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제학 원론 교과서가 전공자에게 풀어내는 내용을 일반인들이 쓰는 쉬운 말로 풀면서 잘 구성한 정도로 그치는 책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현실의 상황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경제학의 이론을 저자 자신의 언어와 논리로 풀어낸다. 평범한 경제 교양서에서 보이는 지적 안일함이 없다. 경제학을 충실히 공부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한 사람만 풀어낼 수 있는 통찰이 가득하다.
사실 경제 교양서 시장에서 통하는 법칙은 매우 단순하다. 누가 가장 쉬운 책을 쓰는가의 경쟁이다.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경제’를 쓴다면, 다음 책은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경제’를 쓰는 것이 목표가 된다. 결국 누가 가장 쉬운(쉬워 보이는) 책을 쓰는가 경쟁으로 귀결되기에 십상이다. 서점에서 비전공자를 위한 경제 교양서들의 제목을 한번 훑어보시라. 거의 모든 책이 이 책이 가장 쉽다는 점을 제목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다. 그래야 팔린다는 것이 출판계의 강박 섞인 믿음이며, 현실적으로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쉽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책들은 평범한 성인들이 경제학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평이한 이해수준에 머무르게 한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그러나 이 책은 ‘누가누가 쉽게 쓰나’의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으면서 경쟁자들의 한계에 매몰되지 않는다. 경제학 교과서의 내용을 단순히 좀 더 쉽게 옮기는 수준을 훌쩍 넘어 경제학의 기본개념들이 어떻게 현실경제에서 적용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것이 가장 큰 미덕이다.
회사원 ‘안경제’ 씨의 작은 질문
책은 각 챕터마다 회사원 ‘안경제’ 씨의 일상을 간략히 보여준다. 출근길에 목격한 거리의 평범한 풍경이기도 하고, 본부장과 회사의 자원 배분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중국지사의 운영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 간단한 에피소드들은 본문 내용을 풀어가는 애피타이저 역할을 함과 동시에 실은 경제학 개념에 대한 좋은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슨 공부이든 마찬가지이지만, 경제학도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 절반 이상의 중요도를 가진다.
안경제 씨의 작은 질문 하나를 소개해 보자. 그는 아내의 생일선물을 고르면서 슬슬 자신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냥 현금을 주고 아내가 원하는 물건을 사는 것이 제일 합리적인데, 왜 나는 지금 백화점을 배회하고 있어야 하지?”
사실 나도 많이 경험한 케이스이다. 예전 회사에서 직원들 생일 선물로 백화점 물건을 주는 관행을 현금으로 바꿔 버린 장본인이 본인이기도 하다. 사실 현금 선물을 받은 직원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다. 괜히 백화점 가서 다시 다른 물건으로 바꾸는 수고를 덜었기 때문이었다.
현금보다 현물 선물이 여러모로 불편하고 불리함에도 선물은 역시 현물이라는 관념이 확고하다. 이 현상이 지속되는 데는 확실히 경제적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일견 불합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합리적인 경제인’들이 행하는 효용이 큰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경제학을 배우는가?
서평에서 책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요약하는 것은 저자에 대한 무례라 생각되지만, 최소한 첫 장만큼은 인용하여 소개하고 싶다. 저자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하는 것은 본인도 같은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는 왜 경제학을 배우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게 답하지 못한다면 일단 경제 교양서로는 실격이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모르는데 무슨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경제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 내가 드렸던 답변부터 먼저 소개해 보자.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꼭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 같은 건 없다고 말이다. 애담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출판하면서 경제학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는 고작 24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전의 지구인들은 경제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고 수십만 년간 생존을 이어왔고 수천 년간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 이후로도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연간 경제학과 졸업생이라고 해 봤자 대졸자의 몇%나 되겠는가? 그러니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무언가 큰일 날 것이라고 겁주는 것은 거짓말이라 해도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경제학 공부를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될 것이라는 말도 거짓말이다. 일단 세계적인 부자 랭킹에서 경제학자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빌 게이츠는 프로그래머 출신이고,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은 건축학과 출신이다. 워렌 버핏은 경제학도 잘할 것 같지만 캘리포니아 대학 경제학 석사가 마지막 학력이다. 또한 세계적인 경제학자들도 자신의 경제지식을 활용해서 돈을 벌기보다는 교과서를 써서 책으로 돈을 벌고 있다. 경제학이 돈과 관련된 일을 다루는 학문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돈을 벌게 해 주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럼 결론은 어떻게 되는가? 돈 잘 벌게 해주는 학문도 아니고, 인류가 공통으로 배워왔던 공부도 아니다. 꼭 해야 한다는 말은 사뭇 과장이 있었다면,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이겠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과정에는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익혀 나갈 수 있도록 배려가 되어 있고, 고등학교까지 꾸준히 사회과목에서 경제학을 배워간다. 틀림없이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경제학이 큰 역할을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경제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로 “세상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적 방법론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사람들의 생활을 숫자로 계량화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추상화시키고, 그 안의 내적인 논리들을 찾아 나가는 것은 경제학이 가장 잘하는 영역이기에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나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었기에 일단 반가웠다. 그리고 나의 허술한 언어보다 훨씬 명확하게 짚어 주어서 또 한 번 살짝 부럽기도 했다. 저자는 먼저 경제학은 이미 현대인의 필수적인 교양 상식이 되었음을 전제하면서, 결국 ‘일상의 합리적인 선택’을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모든 경제학 교과서는 서두에서 인간에게는 무한한 욕망과 유한한(희소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선택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 선택을 가장 합리적으로 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경제학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시험점수 올리기나 재테크의 한 방편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합리적으로 꾸려 갈 수 있음을 배워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선물의 예를 들어 보자. 현금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에 경제적으로 분명히 이익이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현물 선물로 인해 10-33%의 손실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일상의 우리가 현물로 선물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정서적 만족감이라는 더 큰 효용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임을 제시한다. 안경제 씨의 아내는 현금을 받았을 때 경제적 자유라는 효용과 ‘성의 없는 선물에 대한 한심함’이라는 정서적 비효용을 함께 경험하게 될 것이며, 결국 이 모두를 감안할 때 좀 더 백화점을 탐색하러 다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내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데도 분명 경제적 원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기회비용과 매몰 비용에 대해 논하고 있다. 바로 선택의 비용이다. 주어진 경우의 수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에다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매몰 비용 문제는 누구나 오해하기 쉬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각종 비용의 문제는 결국 경제 전체로 사고를 확장해도 이어지는 문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경제 씨의 구체적 일상과 경제학 교과서의 추상적 이론은 이렇게 행복하게 만나고 있다.
결론: 탄탄한 구성의 훌륭한 경제 교양서를 만나다
이제 책의 장점을 정리해서 나열해 보자.
- 첫째로 구성이 탄탄하다. 가상의 인물 안경제 씨의 하루를 따라가면서 마주치는 사건들을 제시하고, 여기에 숨은 경제학적 의미를 밝히는 방식의 구성은 같은 콘텐츠 생산자로서 질투를 느낄 만큼 훌륭하다.
- 둘째로 경제학의 본연에 충실하다. 단순한 용어해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의 기본 개념이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깊이 있게 풀어주고 있다. 교양서가 갖춰야 할 난이도 조정이 있지만 그렇다고 내용상의 깊이를 포기하지 않은 미덕이 있다.
- 셋째로 좋은 질문이 있다.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은 그 책으로부터 우리가 배움을 얻기 위함이다. 배움이란 결국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의 연속일 것이다. 이 책은 장마다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경제학을 배워야 하는지를 묻고, 합리적인 선택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를 묻는다. 사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묻고 있는 질문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를 매우 구체적인 우리 자신의 질문으로 묻게 만드는 것은 이 책이 가지는 특징적인 장점이기도 하다.
일독을 권한다. 속도감 있게 책장이 넘어가는 경험을 했다. 이는 서술이 편안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음 페이지가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제 교양서로 훌륭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