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친노-친문세력(이하 친노세력)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문재인을 지지할 수 없다는 의견이 여전히 눈에 띈다. 이런 의견을 가진 이들은 심지어 친노세력과 적극적 친박세력(이하 박사모)이 다를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적극적 친노세력과 박사모의 행태는 구조적으로 유사한 면이 없지는 않다. 예컨대, 해당 담론 내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정치 행위들이 특정한 상징에 대한 “애정”을 기반을 두고 있는 상태로 비교적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그렇다.
그런데 이들 양 정치세력이 가진 차별성 또한 분명할뿐더러, 오히려 이 차별성이 양 세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훨씬 더 유의미한 근거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 번째 차이는, 전자가 정당성의 근거로 도덕적-지적 우월성을 내세우는 데 반하여 후자는 권력을 근거로 실천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행동 양식에도 반영되는데, 그러므로 전자가 대체로 계몽적 태도를 보이는 것과 달리 후자는 자주 물리적 폭력으로 표출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 실천 동력에 있어도 양 세력은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제도 정치권의 개입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뉴미디어에 기반을 둔 개인들의 집합적 움직임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설령 근래에 자발적 참여층의 숫자가 늘어가는 추세라고 하더라도, 애초에 움직임이 생겨난 동인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제도 정치권의 선동과 동원이다.
또한,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전자의 지지대상이 되는 제도 정치권 내의 정치인들에게는 친노세력을 물리적으로 활용할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으나, 후자의 지지대상이 되는 제도권 정치인들은 여전히 후자를 선동과 동원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실제로 그렇게 활용하는 경우가 잦다.
세 번째, 진영 내 비판 여부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위 말하는 범야권 내에는 적극적 친노 세력의 과도한 계몽적 행태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표하는 부류도 다수 있으며, 양쪽 사이에 일종의 “진영 내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진영 내의 비판은 향후 친노세력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반면 소위 말하는 범여권 진영 내에는 박사모식 행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노력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그 행태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저쪽(친노)도 똑같다”와 같은 진영 외부를 언급하는 일종의 “진흙탕 싸움의 논리”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