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의 TV 광고가 공개되자, 매스컴에서는 ‘60초 전쟁이 시작됐다’며 소란을 피웠다. TV 광고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당락을 좌우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내용은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다. TV 광고의 역할이 무시할 만한 것은 물론 아니다. 마음을 정하게 할 수는 없어도,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는 있다. 유권자를 직접 만나 체온을 나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선 후보의 체온을 전할 수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재생될 수 있는 점을 생각하면, 다양한 활용도 가능하다. 당락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아니더라도, 정치 마케팅에서 역할은 분명하다.
대선 TV광고 1탄
박근혜의 ‘상처’ VS 문재인의 ‘맨발’
박근혜 후보의 첫 TV 광고는 옆얼굴에서 시작한다.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그녀의 얼굴. 어둡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지만, 턱선을 따라 선명하게 보이는 깊은 흉터가 무게감을 더한다. 얼굴의 흉터를 전면에 내세운 인트로 장면은 (마치, 흔한 전쟁 영화처럼) 상처를 통해 인생이 바뀌게 된 이야기로 이어진다. 지방 선거 유세 당시 피습당한 상처. 국민의 위로를 통해 치유를 얻고 보답하기 위해, 국민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내용이다. 뻔-하다. 뻔하고 촌스럽지만 드라마틱한 전개다.
누군가의 상처를 노골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달가운 일은 아니다. 허나, 의도가 뻔하다고 비웃을 사람은 없다. 어쨌든 여성의 얼굴에 난 한 뼘 길이의 상처 아닌가. 사건을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녀는 그날의 상처를 짧게 회상하며, 국민이 보내준 위로와 응원을 강조한다. 병원 앞에서 쾌유를 비는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일으켜 세운 것은 ‘진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이명박 정부가 치를 떨었던 촛불이었다? 눈에 띄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후보는 이야기가 풍부한 정치인이다. 첫 광고에서 꺼낸 그녀의 이야기는 상처를 통해 얻게 된 대선 후보로서의 다짐을 간명하게 보여 준다. 박근혜 후보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어느 컷 하나 새로운 것이 없다. (모델 또한 예스러운 외모의 소유자 아닌가) 그것이 연출 의도였다면,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내레이션은 보다 간결하고 세련되었어야 한다.
“크든 작든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했던 그날의 상처는 저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때부터 남은 인생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제 여러분께 저를 바칠 차례입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 기호 1번 박근혜.”
마음을 채는 문장이 하나도 없다. 리듬감도 없고, 그저 설명해 주기 바쁘다. 컨셉이 신파라 해도, 지나치게 구구절절하다. 상처와 힐링으로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시대 정서에 부합해 무겁고 진지한 감정이 아닌 따듯한 감성으로 풀었으면, 적당히 쿨한 신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문재인 후보의 광고 영상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면서 시작한다. 문소리가 부른 ‘네가 만일’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문재인 후보가 격정적인 목소리로 묻는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국가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터널을 빠져나가면, 노란 들꽃이 보인다. 이어, 문재인 후보의 오래된 가족사진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짧은 인트로를 설명하는 데 이렇게 많은 문장이 소비되었다는 건, 그만큼 재미없다는 뜻이다. 터널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무얼 상징하는 지 안다. 아는데, 와 닿지 않는다. 문소리 노래는 그저 흐른다. 컷들의 의미 없는 연결은 어떤 이야기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지루한 장면이 이어지다 드디어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컷이 등장한다. 문재인 후보의 잘 생긴 얼굴. 그는 거실 의자에 앉아 연설문을 읽고 있다. (출정식이라는 제목으로 짐작건대)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 대선 출정식을 준비하는 듯하다. 연설문을 읽던 그는 까무룩 잠든다. 그 모습을 보며, 부인은 다림질을 계속한다. (앞서, 남편에게 물을 가져다주는 컷에 이어, 그녀는 집안에서 일하는 모습만 보인다.) 편안한 이미지를 어필하고 싶었는지, 대통령 후보의 사적인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는지, 카메라는 ‘맨발’을 강조한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결론은 ‘발도 잘 생겼군!’ 정도다.
문재인 후보의 집을 빠져나온 카메라는 그의 출정식을 담는다. 컷들의 의미 없는 연결은 여전하다. 드디어 연설장에 도착한 그는 (집에서와 다른 모습으로) 강력하게 외친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첫 TV 광고엔 이야기가 없다. 그래 산만하고, 의미를 만들어 내지 못한 컷들은 지루함만 남긴다. 연설 장면을 보여주지만, 감동적인 연설도 없다. 클라이막스가 없으니 억지로라도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문재인 후보는 ‘이야기’가 없는 정치인이다. ‘출정식’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이야기’를 만들었어야 한다. 이야기보다 이미지에 충실해지고 싶었다면, 디테일에 신경썼어야 한다. 연설문 읽는 문재인 후보의 무릎에 고양이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름도 알려진) 찡찡이가 뛰어 올라, 함께 잠든 장면을 담았다면, 부인과 함께 연설 준비 하는 모습을 담았다면, 그의 ‘맨발’보다는 재미있었을 거다. ‘무엇이 사적인가?’ 에 대한 감각 없이 일상성에 접근한 결과, 이도 저도 아닌 (그저, 문재인의 의자로만 기억될) 광고가 탄생했다.
대선 TV 광고 2탄
국민의 ‘리더’ vs 국민의 ‘대표’
대선 TV 광고의 성공은 ‘광고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가 아니라 (그런 믿기 힘든 이야기보다는) 그 자체의 흥행에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TV 광고 1탄은 재미없다. 당연히 흥행 실패다. 후보 측은 서로의 광고를 지적질 하며 승리를 자처했지만, 속내는 달랐던 모양이다. 이어 내놓은 두 편의 TV 광고에서 급박함이 느껴진다.
박근혜 후보 측에서 내놓은 두 편의 TV 광고는 그녀의 정치 경험을 강조하며, 리더십에 방점을 찍는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위기의식’을 연출했다. 거친 풍랑을 만난 위태로운 배. 감정을 고조시키려는 배경음악과 남성(성우)의 묵직한 목소리가 깔린다. “경험 없는 선장은 파도를 피해 가지만 경험 많은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만이 파도를 이기는 방법임을 알기에…” 마치, 한 편의 국방부 홍보물을 보는 듯하다. 이어, 해외 정상들과 만난 박근혜 후보의 인증샷을 보여준다. 경험 많은 선장임을 증명하려는 의도는 알겠다. 허나, 무척 뜬금없다. 차라리 (거친 바다를 모험하는) 판타지 동화라도 보여주는 게 낫겠다.
또 다른 TV 광고에서는, 거친 파도 속에서 살고 있는 서민의 모습을 담았다. 오래된 세탁소 할머니는 일을 하다 박근혜 후보의 TV 연설을 보며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그랑께 여자가 돼야된당게~ 그래야 아 뭐라도 바뀔 거 아니여~ 확 바꿔부러~”라고 말한다. 손님 없는 가게에서 쌓인 먼지를 터는 할아버지는 (역시나) 박근혜 TV 연설을 보며 (이번엔)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그래 맞대이~ 맨날 조디만 갖고 하는 놈들은 안된다 마~ 이번엔 박근혜 니가 해뿌라 마~ 확 바까뿌라마~”라고 말한다.
연이어 내놓은 두 편의 TV 광고는 독립적인 컨셉과 이야기를 담았지만, (함께 요약하자면) ‘위기 극복의 리더십’을 겸비한 ‘서민 대통령’이 박근혜 후보를 수식해 준다. 첫 TV 광고에 이어 촌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관성은 있지만, 이야기는 산만해 졌다. (일보 후퇴다.)
문재인 후보 측에서 내 놓은 두 편의 TV광고는 ‘정권 심판론’을 강조하며, 국민과의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5년 동안 힘들었던, 대한민국의 모습을 담은 스틸 컷 위로 잔잔한 음악과 감성적인 여성(성우)의 목소리가 깔린다. “지난 5년, 너무 힘들었기에 등록금이 힘겨운 알바생이 출마합니다. 겨울이 무서운 홀몸 어르신이 출마합니다…..” 알바생이 홀몸 어르신이 워킹맘이 ‘문재인의 이름으로’ 출마한다는 ‘국민출마 민생 편’의 내용이다.
국민만 출마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출마 실정 편’에서는 포탄에 찢긴 연평도가 구석구석 썩어가는 4대강이 반값 등록금이 무한도전이 문재인의 이름으로 출마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차분하게 반복되는 스틸 컷에 이어지는 문재인 후보의 얼굴. 또렷한 눈동자와 굳게 다문 입술은 무슨 이야기든 들어 줄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인 톤과 분위기는 첫 TV 광고 ‘출정식’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섬세해졌다.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게 풀어낸 점이나 세련된 화법을 보면, 이번 TV 광고에서는 타겟을 정확히 한 듯 보인다. (일보 전진이다.)
노무현 광고 엉뚱한 회자…
이대론 ‘블록버스터급 흥행’ 없다
TV 광고 2탄에서 박근혜 후보는 ‘국민의 리더’로서, 문재인 후보는 ‘국민의 대표’로서 대통령을 해석하는 차이를 보였다. 허나, 새로운 정치든 정권 교체든 ‘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와 ‘서민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부분은 공통된다. 문재인 후보 측이 조금 더 세련된 감성으로 조금 더 다양한 ‘서민’을 보여주지만 ‘서민 컨셉’의 한계는 분명하다. 이번에도 블록버스터급 흥행은 없었다. 오히려 ‘TV 광고의 레전드’라 불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TV 광고가 다시 회자 되고 있는 상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TV 광고에서 서민들에게 막걸리를 따라 주고, 직접 통기타 치며 노래했다. 그렇다고 평범한 서민적 모습만 보여 준 것은 아니다. 서민들에게 막걸리를 따라주고, 정의를 위해 눈물 흘리는 영상 위로 흐른 노래는 ‘이매진’이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존 레논의 그 노래(!). ‘국민에게만 빚진 대통령이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그가 국민을 위해 불러준 노래는 양희은의 ‘상록수’다. 당시 3~40대와 소통 할 수 있는 음악으로 안정적 지지층을 붙잡고, 동네 아저씨 같은 (그러나 범상치 않은 아저씨) 이미지로 확장성을 추구했다. 1, 2차 타겟에 맞는 정확한 컨셉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이미지를 내세우든 이야기를 내세우든 컨셉은 확실하고, 장면은 짜임새 있어야 한다. 감성에 소구하는 광고라 해서, 감성만으로 만들면 안 된다. 지금까지 공개된 18대 대선 후보들의 TV 광고를 볼 때, 남은 광고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부디) TV 광고로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 주었으면 한다. 블록버스터급 흥행은 우연히 나오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