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빠’들과 사냥개(어떤 군소후보라고 쓰고 이렇게 읽는다)가 한 짓을 봐서는 쉴드쳐 줄 마음 눈곱만큼도 없다만, 참, 2017년 한국에 ‘주적(主敵)’ 논쟁이라…
아시겠지만 ‘국방백서’는 1988년부터 발간되었다. 이때는 ‘주적’이란 표현이 없었다. 그러다가 1995년 동해 잠수함 사건 등 남북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쯤 나중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한 모 인사가 국방부 정책기획관일 때 후다닥 추가했다가 2000년 백서까지 유지되었던 표현이다.
‘주적’은 “군사작전에 있어 어떤 임무를 맡은 군대가 제1차적으로 담당해야 할 상대”를 의미한다. 즉 원래 부대 간 전투를 상정해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우리 ○○사단의 주적은 북한군 XX교도사단이다” 등과 같이 엄청나게 세부적인 피아의 적대 상황에서 쓰는 콘셉트다. 솔직히 한 국가의 지도자가 쓰니 마니 할 사항이 아니다. 이걸 당시에는 나름대로 북한 갈군다고 백서에 쓴 거다. ‘주적 표현’이 없다고 해서 ‘주적 개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둘은 엄연히 구분된다.
북한이 현실적이고 분명한 우리의 위협이며, 만에 하나 전쟁이 벌어지면 맞서 싸워야 할 ‘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통X당 잔당 빼면. 다만 ‘적’이 될 수 있는 존재를 반드시 명시적으로 ‘적’ 혹은 ‘주적’이라고 불러야 안보의식이 투철하다는 발상이 문제일 뿐이다. ‘주적’ 표현을 공식 문건이나 문서에 실제로 쓰는 다른 국가는 거의 없다. 대만이 아주 우회적으로 표현한 적이 있으며 舊소련시대에 잠시 등장했다가 폐지된 것이 전부이다.
2004년 어간,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주적’ 표현의 존속 필요성 여부를 묻는 과제를 준 적이 있다. 당시에 한 건의도 개념은 유지하되 표현은 반드시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적을 적이라고 목놓아 소리치지 않는다고 해서 적이 아닌 것은 아니기에. 오히려 적을 보고 자꾸 “적이다”라고 소리치는 그 치졸함이 마치 X개의 용렬함을 나타내는 것이 될 수 있기에.
국회 국방위원장까지 지낸 그가 이 사실도 모를 정도로 단.무.지.라서 그 공세를 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여간해서 올라가지 않는 지명도에 대한 안타까움의 단말마겠지.
문득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나름 명대사가 생각나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 잊혀졌을 때다.
참… 이 선거판이 여러 사람 버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