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치와는 아무 연관 없던 안철수가 대권후보가 된 것은 안철수 개인의 능력과는 거의 상관없는 것이었다. 기존 정치판에 대한 불신과 정치 일련의 작동 구조의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안철수를 불러들였다.
안철수는 그것을 잘 알고 새 정치라는 (실체 없는)기치를 내걸었고 일련의 사건을 거쳐 원내 제3당의 대권후보로 문재인과 오차범위 안에서 비등비등하게 겨루고 있다. 그러나 안철수는 짧았던 정치경력 중에 새 정치를 보이기보다는 철저하게 현 정치 작동 과정에 충실했다. 그의 약진 속에 새 정치에 열광하던 개혁의 목소리는 옅어지고 보수층의 목소리가 짙어지고 있다.
안철수의 약진은 보수층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믿었던 박근혜가 탄핵당하면서 보수층들은 큰 상실감을 입었다. 설령 그들이 박근혜에게 지지를 철회하고 탄핵을 찬성했다손 치더라도 자신들의 가치를 대변하던 인물의 몰락은 곧 자신들의 가치가 경멸당하고 무시당한다고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가치를 대변해줄 후보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안철수이다.
보수를 자칭하는 두 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에게 표가 몰리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바른정당의 유승민은 배신자의 이미지와 따뜻한 보수라는 상당히 진보적인 대안을 내놓으면서 보수층의 마음과 멀어졌고 자유한국당의 홍준표는 지금까지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해온 친박의 잔당의 대권 후보라는 점과 그의 독선적 언행에서 보수의 신임을 못 얻고 있다.
둘의 지지율은 다 더해도 10%가 안 된다. 이 두 당은 사실상 대권의 승리에는 관심이 없고 누가 보수의 주도권을 차지하여 다음 지방선거 때 어느 당을 중심으로 보수가 재편될 것이냐 라는 것에 더욱 관심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후보군은 셋으로 줄여진다.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심상정은 뿌리부터 노동운동에 두며 진보적 색깔이 뚜렷해서 보수의 가치에 반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지난 대선 때부터 박근혜의 대척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계속해서 오르는 대세론에 불안한 보수층들은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라는 정서로 안철수에게 결집하게 된다.
즉, 안풍은 보수층의 집결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으며 안철수 지지층 사이에서 보수층이 주류가 된다면 거꾸로 진보적 염원으로 안철수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이 배신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보수층으로의 확장을 꾀해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프레임을 구축해왔다. 안보적으로 보수의 시각을 많이 차용했지만 새누리당과 동일하게 보이지 않게 노력한 것은 국민의당의 지지기반이 호남지역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는 초반부터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반대해왔으나 최근 들어 보수층 표심을 염두해 찬성 측으로 선회하였다. 그러나 THAAD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고도로 날아오는 북핵을 막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도리어 X-band 레이더가 중국의 베이징까지 파악해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관찰하는 중국 견제용라 볼 수 있다.
THAAD의 한국 배치는 미국 MD체계의 편입으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외교를 펼치지 못한다. 안철수가 주장하는 자강외교가 아닐뿐더러 자주외교의 심각한 침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진보적 경제라는 프레임과는 달리 경제정책 또한 보수적 시각을 많이 차용하였다.
안철수의 공약 중에 규제프리존법이 있다. 규제프리존법이란 지역별로 규제의 완화를 골자로 한다. 과거 안철수가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일 때 규제프리존법이 의료민영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규제프리존법은 시장의 원리를 맹목적으로 믿고 정부의 간섭과 규제는 시장을 어지럽히는 악이라고 생각하는 보수적 시각을 그대로 차용하는 법이다.
시장과 정부의 관계에 대한 안철수의 보수적인 시각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정부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안철수는 정부가 뒤에서 민간을 돕는다는 표현을 썼다. 이는 최순실 사태가 큰 정부로 인한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부의 시장개입이 시장의 원리를 어지럽혀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의 골자는 큰 정부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단합한 정경유착이다. 미르 재단과 K-sport 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대통령이 강제로 자금을 출현했다고 언론에서 보도하지만 사면권을 받은 SK와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손을 빌린 삼성과 같은 반증이 일방적 착취관계가 아닌 거래관계였음을 입증했다. 도리어 한국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큰 정부를 가져본 일이 없다.
박정희가 국가가 나서서 주도하는 국가 사회주의적 면모를 보이기는 했으나 국가가 너무 절대화 되어 독재적이었다는 것에서 제대로 된 큰 정부라고 보기 어려우며 ―민주주의를 해치는 정부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이 크든 작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또한 큰 정부를 실현하지 못했다. 도리어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기조를 받아들였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 자체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첫째는 그의 지지층에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와 진보를 전부 아우르는 정책은 있을 수 있으나 국정운영의 전체적인 방향은 둘 다를 아우를 수 없다. 전체적인 방향만큼은 뚜렷한 색깔을 띠어야 한다.
집권 시 진보 지지자들과 보수 지지자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든 지지자들에 대한 믿음의 배신이다. 보수적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는 안철수 후보가 진보적 지지자를 택할지는 미지수다.
둘째로 여소야대의 의회 상황도 문제가 된다. 우선 국민의당은 호남의 지역적 지지기반을 중시하는 세력과 중도보수로의 확장을 꾀하는 비례대표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다. 안철수의 당선은 개인의 집권만이 아니라 당의 집권을 의미한다. 뚜렷한 정책 방향도 없는 당이 집권하는 것은 국정에 혼란을 가중한다.
또한 연합정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호남을 두고 경쟁하며, 민주당의 2중대라는 비판을 의식하는 국민의당이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민주당과의 연합을 꺼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는 정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정의당이 남는다.
현실적으로 정의당과의 연대는 정권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 남는 두 당 모두 전신을 새누리당에 두고 있어 최순실 사태에 책임이 있다. 두 당 중 어느 당과의 연합도 이번 대선을 만든 적폐청산이라는 촛불민심에 부합하지 않는다.
안철수라는 선택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기우였으면 좋겠으나 그의 집권이 정국을 혼란케 하고 지지자의 일부를 배신하고 다시금 적폐세력의 부활에 일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원문: 이영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