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의 아주 특이한 점은 IT기술이 ‘4차 산업’으로써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때문에 정통부 부활론 이야기도 나오고, IT업계 출신인 모 후보까지 있으니 유리한 측으로 더 끌어오려는것 같다. 4차 산업혁명 같은 정부 IT정책에 직접 관여했던 SW정책연구소를 떠나 실제 스타트업을 하게 된 내게는 이제 이런 정책들이 더 실제적이고 더 피부에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1. 최고 정책 입안자가 기술 디테일을 알 필요는 없다
‘삼디프린터’ 논란을 보며 ‘과연 최고 정책입안자가 기술의 디테일을 아는 것이 도움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악의 결과를 맞은 박근혜 정부의 최대 실적을 들자면 스타트업 지원의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이고, 소프트웨어 교육 필수로 인해 소위 요즘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서점에 가면 심심치 않게 코딩과 소프트웨어에 관한 책을 볼 수 있으며 내가 만난 몇몇 아이들은 놀라움을 넘어 무서울 정도의 소프트웨어 실력을 갖추기도 했다. 나는 1980년대 말의 컴퓨터학원 키즈다. 생활코딩의 이고잉 님도 그런 발표자료를 만들었지만 그 세대 아이들이 사실 이 바닥의 괜찮은 이들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벤처 1세대와 2세대라고 불리는 이들도 KAIST에 컴퓨터가 들어오고 자유가 꽤 주어진 그 시절의 영향을 받은 덕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 부는 이 움직임대로라면 나는 10년 후가 기대된다.
그렇게 보면 정말 박근혜 대통령이 IT를 잘 알아서 이러한 상황이 된 걸까? 오히려 몰라서가 아닐까. 문체부가 최순실과 엮여서 탈탈 털린 데는 문화예술에 관여했던 육영재단의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미래부는 그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관여한 느낌이 있는데, IT기술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만약 잘 알아서 스타트업과 R&D에도 깊숙히 관여했다면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럼에도 결국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많은 전문가와 공무원의 숨은 노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정말로 IT 기술의 디테일을 아는 대통령이 IT를 잘할까? 액티브X와 exe의 차이를 기술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일까? 기업의 대표가 코드에 관여하면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는지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기술이 가진 잠재력과 방향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느냐’가 경영자의 능력이다.
2. 4차 산업혁명의 실체: 정보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그럼 얼마나 4차 산업이라고 말하는 것의 방향성을 인지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먼저 4차 산업이 뭔가? 흠…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와의 차별성을 이야기하라면 더욱더 모르겠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가 더 큰 개념으로 보인다.
1차 농업혁명과 2차 공업혁명은 잘 알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3차 산업혁명은 제조업 진화, 가상재화, 콘텐츠, 인터넷, 분산형 전력 네트워크, 3D프린터까지 이른다. 블록체인, 스마트그리드, IoT, 3D프린터… 4차 산업혁명 키워드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하나 딱 다른 거라면 인공지능 키워드가 빠진 정도인데 그거라면 차라리 미래부의 지능정보사회가 더 정확하지 않나 싶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4차 산업혁명 키워드 원산지라는 독일에서도 뭐 그럭저럭 이라는 소문도 들리고, 스타트업과 혁신의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듣보잡 취급이라 들었다.
그럼 4차 산업혁명은 없을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한 3.5차 산업혁명 정도? 아니면 2차 정보화혁명 정도가 적합하지 않나 싶다. 큰 패러다임은 3차 산업과 바뀐 게 없다. 다만 네트워크 인프라와 컴퓨팅 기술 가격 하락, 인공지능까지 갖춰지면서 지능화된 소프트웨어로 이제 3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1-2차에 비하면 3차 산업을 논하기 시작한 지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에 있다. 정보화혁명은 1차와 2차로 나눌 만하다. 아래는 예전에 만든 장표 중 하나다.
IT라고 다 같은 IT가 아니다. IT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전자를 이야기하는지 후자를 이야기하는지 보아야 한다.
전자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주로 중소기업 소프트웨어 산업을 보호하자고 하는 데 의의를 두며 특히 SI와 패키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의 출현에 거부감을 갖기에 MS 및 구글을 방어의 대상으로 본다. 그러면서 정작 소프트웨어 개발은 하도급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액티브X 퇴출에 대한 모 후보의 정식 답변을 보고 깜짝 놀란 게 바로 이런 지점이다.
“액티브X 퇴출을 위해 보안 산업 중소기업 업종 지정”
이렇게 되면 윈도우10 디펜더도 이제 국내에서 못 쓰는 거 아닌가… 규제를 해제한다더니 더 만들어 왔다. 또한 개발자를 머릿수로 생각하며 어떤 일을 하더라도 손쉽게 개발자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기는 하나, 한 가지 내가 최악의 업적으로 뽑은 건 저품질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학원에서 찍어낸 것이다. 전문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그렇게 쉽게 찍히는 게 아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3D프린팅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전문인력 공급이 부족해질 것. 청년 및 중·장년을 교육해 10만 명 전문가를 양성하겠다.”
같은 후보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이다. 기존 업무에서 소프트웨어를 학습함으로써 속한 도메인을 혁신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또는 2차 정보화혁명)의 핵심이다. 학원에서 좀 찍어내 10만 명 달성해서 재취업시키겠다는 발상이라면 다시 한번 한국의 SW 개발자를 부품으로 취급하겠다는 얘기다. 전 국민의 SW 교육과 확산을 주장한 박근혜 정부보다 후퇴한 정책이다.
적어도 이 분야에 있었다는 분이 이런 공약을 내놓는 게 짜증이 치밀어서 적었다. 그래서 어떤 기업이 몇 달 만에 주가가 2배가 오른 듯. 이건 MB의 재림인가.
3. 권력은 국민에게, 참여와 분산
시대는 변했다. 권력은 분산되었으며 협력과 공동개발, 각 분야의 전문성이 발휘되고 융합 결과물을 만드는 시대다. 소프트웨어는 이제 전문지식이 아니라 생활상식이다. 3D프린터도 앞으로는 그렇게 될 것이다. 요즘 워드자격증 있다고 하면 누가 거들떠나 보나? 하지만 디지털 문서를 잘 만드는 건 다른 이야기다. 미래의 소프트웨어 위치가 바로 그것이다.
오히려 ‘삼디프린터’라고 했던 모 후보의 사이트가 훌륭해서 놀랐다. 이런 사이트가 실제 정부의 정책플랫폼과 연계되는 구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가치다. 서비스 기획할 때 귀에 딱지가 앉게 듣던 말, “니가 하고 싶은 것 말고 고객가치를 찾아라.” 모든 대선 주자들에게 하고픈 말이다.
참고로… 스타트업 정책은 유승민 후보 정책이 가장 맘에 든다. 서로 좋은 정책은 계속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
원문: 숲속얘기의 조용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