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아내에게 미안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두고 세간에 말들이 많다. 며칠 전에는 안철수 후보의 보좌관을 그의 아내가 부려 먹은 것에 대해 갑질 논란이 있었다. 종편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안철수는 이 논란에 대한 물음이 나오자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책잡힐 만한 대답이다. 실제로 지지자나 국민에게는 미안하지 않냐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대통령 선거도 결국 세력과 세력이 서로를 들이받는 투쟁의 장이라 이런 일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다. 한쪽에서는 물고 뜯을 거리로, 한쪽에서는 이해할 거리로, 어떤 이에게는 별일 아닌 것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명색이 대선 후보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사람의 말이다. 저런 대답의 뒤에 그 사람의 지배적인 감정이 있지 않을까? 짐작에 짐작을 해봤지만 나온 대답이 워낙 동문서답이다 보니 실마리가 잡히질 않았다.
그러다 4월 13일 TV 토론 때의 안철수 후보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 토론에서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끝장토론을 제안했던 역발산 패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부자연스러운 미소, 당황한 표정, 잦은 눈 깜박임, 부산한 시선이 가득했다. 이는 뭔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때 나오는 표정과 몸짓들이다. 무엇이 안철수 후보를 당혹하게 했을까?
토론 직전 불과 2주 동안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문재인 후보의 턱밑까지 치솟았다. 안철수 후보가 고양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이 짜~ 하니 차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토론에 나가 보니 그 누구도 안철수 후보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고 경외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안철수 후보는 생각했을 것이다. ‘어… 이게 아닌데… 내가 이제 1위 후본데… 내가 대세인데… 내가 제일 잘났는데… 이 분위기는 뭐지…?’ 그렇다. 예상과 다른 분위기에 안철수 후보는 당황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표정과 몸짓으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온 것이다.
안철수의 자기평가
안철수 후보가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것은 ‘자기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다.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대세론, 치솟는 지지율, 유세 현장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자기평가를 했을 것이다. 물론 평가 결과는 낙관적 전망을 안겨다 주었을 테고. 그런데 그 평가에는 두 가지 맹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그런 것들이 전체의 평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세론은 몇몇 언론인이나 언론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언론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모든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지지율은 과학적 절차를 거쳐서 나온 정량 정보이긴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 통계 조사는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결정적인 것을 보여주진 않는 법이다. 유세 현장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지자다. 현장에 나오지 않은 지지자들도 많겠구나 생각하겠지만 현장에 나오지 않는 반대자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맹점 하나는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가 순수하게 안철수 후보 본인의 능력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오른 이유가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문재인 후보를 저지하기 위해 대안으로 안철수 후보를 택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여론조사를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미디어를 채우는 안철수 대세론 역시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입지가 좁아질 언론들의 저항이며, 안철수는 그 저항의 수단일 뿐이다.
이런 맹점을 가진 자기평가가 TV 토론 자리에서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고 말았다. 부조화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능력을 줄기차게 믿든지 지금까지의 자기평가를 포기하든지 해야 한다. 하지만 능력을 줄기차게 믿기에는 자신이 상대적으로 그리 대단치 않다는 사실이 너무 확연하고, 지금까지의 자기평가를 포기하려니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보니 어색한 표정과 몸짓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안철수 후보는 눈에 보이는 외부의 평가에 의존해서 자기평가를 한 결과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나 남을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자존감은 자기애의 방식에 따라 그 성격이 정해지며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 건강한 자존감을 지니게 된다. 건강한 자기애를 지닌 사람은 자기 자신을 현실적 기준에서 올바르게 평가한다. 자기의 장점도 잘 알지만 동시에 자신의 한계도 알고 있으며, 그 한계마저도 존중한다. 건강한 자존감은 그런 속에서 형성된다.
허약한 자기애
이런 시각에서 보면 안철수 후보는 건강하지 않은 자기애의 소유자다. 건강하지 않은 자기애를 가진 사람에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일이다. 아내의 갑질에 대해서 지지자나 대중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은 안철수 후보 본인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일인 것이다.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 있었던 차떼기 논란에도 해당자를 엄벌하겠다는 제3자성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면 사과해야 하고 그것은 건강하지 않은 자존감을 가진 그에게 상처가 된다.
그런 자기애의 뒤를 들춰보면 안철수 후보가 가진 감정을 알 수 있다. 그 감정은 바로 우월감이다. 우리는 우월감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지만 우월감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건강한 자존감에는 자신을 긍정하는 건강한 우월감이 속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우월감은 남을 이기고 남 위에 올라서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자신을 긍정하는 힘으로 작용을 한다. 반대로 건강하지 않은 우월감은 남 위에 올라서거나 남의 패배를 확인하는 것에 집중한다. 대표적인 행위가 바로 갑질이다.
건강하지 않은 우월감을 지닌 사람에게 갑질은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증폭하는 수단이다. 갑질을 포기하거나 갑질에 대해 미안함을 갖는 것은 우월감을 포기하는 행위이며, 그런 건강하지 않은 우월감으로 다져진 자존감에도 상처를 주는 일이 된다. 결국 건강하지 않은 자존감을 지닌 사람이 사과를 기피하는 데는 건강하지 않은 우월감이 작용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부의 인정과 평가에 의존해 자기평가를 하던 그였기에 근래 꺾여버린 지지율은 본인 스스로 자기평가 점수를 깎아내리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과대평가를 버리고 최선과 노력을 꺼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겠는가. 지금 나로서는 ‘아니올시다’라고 말하고 싶다.
원문: 마흔하나, 생각을 시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