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코어보다는 멀티 코어가 낫다. 그러나…
흔히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 혹은 경험이 적은 사람(과알못)들은 과학의 연구활동이 어떤 특출난 개인의 천재적인 두뇌활동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뉴턴의 사과 드립이라든가, 아르키메데스의 목욕탕 탈출 후 나체쇼 사건(…) 등과 같은 흔한 전설을 들어서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현대과학, 아니 그리 가깝지 않은 근대과학만 하더라도 혼자의 창의성(?)에 의해서 중요한 과학발전이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최소한 둘 이상의 머리가 모여서 결정적인 돌파구를 만들어 낸 경우가 더 많다.
가령 연구실보다는 맥줏집이나 티 룸에서 더 많이 목격되던 이 말 많은 듀오는 DNA 이중나선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으며,
‘플라스미드’라는 요상한 DNA 덩어리를 연구하던 세균유전학자와, 세균 내에 존재하는 DNA를 분해하는 효소를 연구하던 생화학자의 만남은 재조합 DNA 기술이라는 생명과학과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혁신을 이루는 원천기술의 기본을 만들어 냈으며,
병원에서 인턴을 막 시작한 두 젊은 의사의 만남은 콜레스테롤과 심혈관질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잘 알려진 예를 더 들지 않더라도 인간의 문명 창조에서 복수의 두뇌 둘이 만나서 1+1=2가 아닌 그 이상의 시너지를 일으킨 일은 수도 없이 많다. 설령 연구 과정에서 생각을 공유하여 공동 연구를 않더라도 오늘날의 과학 연구가 발표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리뷰어가 사실 나의 지도교수였다), 아이디어가 공유되고, 이것이 합쳐져 결국은 돌파구를 만들어낸다. 즉 뛰어난 한 개인의 창의성에 의해서 의미 있는 과학발전이 이루어진다는 통념은 요즘의 과학이 행해지는 실상과는 잘 맞지 않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단지 여러 사람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기만 하면 더 나은 결과가 얻어지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많은 분이 알 것이다. 분명히 ‘브레인스토밍’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회의에서 왜 새로운 아이디어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으며, 교수님과의 미팅에서는 왜 항상 동일한 이야기만 돌고 도는 것이며, 랩 전체 세미나에서는 항상 일방적인 발표와 교수님의 지적사항만 반복되는 것일까? 그리고 연구실 동료와 이야기하다 연구 이야기를 해도 매일 겉도는 이야기만 나올까? 이런 것이 계속되다 보면 아예 여러 명이 모여서 시너지를 이룬다는 것은 어디 신화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처럼 생각되고 ‘내가 다 혼자 생각해서 하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멀티코어에 최적화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는 싱글 코어에서 더 빨라지는 경우도 있듯이 말이다.
오늘 알아볼 내용은 ‘과연 어떻게 여러 명이 효율적으로 생각하는가’ 혹은 ‘여러 명이 생각할 때 시너지가 나올 조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생각을 하는 사람의 지식수준이 비슷해야 하느니라
사실 어떤 문제에 관해 동등하게 생각해서 시너지가 나오려면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지식의 수준, 그리고 생각의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 즉 그중 한 사람의 지식수준이 다른 참여자에 비해서 너무 높거나, 혹은 한 사람이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하는 ‘브레인스토밍’은 브레인스토밍이 아닌 일방적인 ‘강의’ 내지는 ‘보고’에 그치게 된다. 온라인게임에서 팀 내에 실력이 확실히 쳐지는 구성원이 있다면, 패했을 경우 그 사람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 것과 반대 상황이다.
어떤 연구토픽을 수십 년 동안 연구해온 교수가 있는데 랩에는 해당 연구토픽을 접한 지 한두 달밖에 안 된 학부생이나 석사 1학기생만 드글거리는 랩미팅을 떠올려보자. 여기서 과연 어떻게 동등한 대화와 생각의 교류가 일어나겠는가? 이런 경우에는 결국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 내지는 지시밖에 일어날 수가 없다.
즉 대화와 토론을 통해 뭔가 효율적인 생각의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지식수준의 평준화, 적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의 레벨업이 있어야 한다. 수십 년 경력의 교수와 해당 분야 접한 지 몇 개월밖에 안된 쪼렙 대학원생들의 모임이라면 생산적인 토론과 의견교환을 위해 어떻게든 ‘쪼렙’의 렙업을 위한 노오오력이 필요한 것이다. 반대로 실무의 디테일을 전혀 모르는 상사가 부하의 보고서에 뭔가 생산적인 코멘트를 하기 위해서는 부하의 보고서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지 사전에 숙지할 필요가 있다.
교수와 학생(혹은 포닥) 간의 생산적인 디스커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둘 간의 정보와 지식의 격차가 적어야 한다. 교수가 학생에게, 혹은 학생이나 포닥이 교수에게 “무슨 선행연구에 따르면 이런 결과가 있는데, 우리의 결과는 이것과 다르고…” 라는 이야기를 했건만 듣는 상대방이 그 선행연구 자체의 존재를 모른다면 무슨 이야기가 되겠는가.
그러므로 일단 여럿이서 생산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둘 간의 레벨이 비슷한, 아니면 적어도 돌 몇 점 깔고 접바둑을 둘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것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일단 그나마 이야기가 통할 수 있을 수준의 유사레벨의 사람들끼리 모여서 ‘연습게임’ 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위계질서가 배제된 상태가 좋느니라
특히 위계질서와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관계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교환이 쉽게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윗사람’은 누구든 어느 정도는 ‘답정너’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 가령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교수: 철수(대학원생)야, 너 지난주에 랩미팅에서 하라고 했던 실험은 해 봤니. 우리 가설에 따르면 무슨무슨 조건에서는 단백질 A는 인산화되고 단백질 B는 줄어야 하는데.
철수: 네, 교수님. 제가 몇 번 해 봤는데 결과가 이상하게 나옵니다. 단백질 A는 인산화되는 것 같은데 단백질 B는 그대로인데요?
교수: 야, 너 지금 학기수가 몇 학기인데 그런 간단한 실험도 제대로 못 하니. 진짜 그렇게 나오는 것 맞아? 지금 이 데이터가 있어야 빨리 논문을 서브미션 할 거 아니야. 너 데이터가 안 나오는 바람에 지금 얼마나 늦어지고 있는지 알아?
철수: (……) 네, 이번 주에 다시 한번 해 보겠습니다.
물론 철수가 막손(…)이라서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결과를 못 낸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교수가 생각한 가설(‘우리’라고 했지만 대개 교수만의 머릿속에 있는 가설일 가능성이 높다)이 실제 사실과 부합하지 않거나 간과한 요인이 있어서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전에 뻔한 실험도 실패해 본 철수의 전력(…)을 잘 아는 교수는 이번에도 으레 그럴 것으로 생각하고 철수를 쪼게 된다. 그렇게 교수님의 쪼임을 당한 철수는 다음에도 실험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이하 생략.
어디선가 있음 직한 이야기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사회적인 위계질서를 넘나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이렇게 활발한 의견 교환과 상사에 대한 반대를 쉽게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상급자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일방적인 지시로 변질된다. 반면 상급자가 디테일의 모든 것을 하급자에게 위임하는 반대의 경우라면 하급자는 결국 상급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하도록 길들여지고, 서로 간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생기는 시너지는 ‘그거 먹는 거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1. 고심 끝에 직책명과 호칭을 폐지하겠습니다
많은 기업 등에서 행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이러한 기업 문화를 조성함으로써 직원들(연구실이라면 연구원) 사이의 의사소통이 좀 더 자유로워졌다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별반 상관이 없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것은 아마 이러한 조직구조의 문제도 있겠지만 해당 집단의 ‘리더’의 역할에 많이 좌우되리라고 본다. 리더가 ‘답정너’를 기대하는 상황, 그리고 자유로운 토론을 하라고 리더가 아무리 떠들어도 결론은 리더가 생각한 대로 나고 하급자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면 결국 하급자로써는 가만히 아무 말도 안 하거나 리더가 원하는 이야기나 해 주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2. 처음부터 위계질서가 없는 사람들끼리 만난다
사실 조직에서 위계질서를 없애고 평등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고 해도 결국 보스는 보스, 쪼렙은 쪼렙이다(…) 이런 것을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다! 무슨 실리콘 밸리 테크 기업의 수평적인 문화 이야기하는 분들 많지만 구글의 페 사장이나 페북의 주 사장 앞에서 싫어할 말만 항상 골라 할 용자는 생각만큼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 아예 처음부터 위계질서가 배제된 사람들끼리 브레인스토밍하는 것이다! 가령 동종업계 사람들의 모임, 옆 랩 사람들끼리의 모임, 그것도 아니면 학회에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대화할 때 오히려 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아이디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저 위에 ‘둘이서 머리를 맞댄 듀얼 코어의 성공 사례’(…)처럼 소개된 왓슨-크릭, 골드슈타인-브라운, 코헨-보이어 등은 모두 둘 사이 권력관계나 위계질서가 없는 평등한 ‘아저씨(군대에서 다른 중대의 병사를 호칭할 때의 그 ‘아저씨’ 말이다)’ 간의 만남이었다. 크릭은 35세의 병특 출신 늦깎이 대학원생이었고, 왓슨은 미국에서 갑툭튀한 23세 포닥이었다. 둘 사이에는 위계질서라든지 권력관계가 존재하기 힘들다. 그저 ‘아저씨’ 간의 만남이었을 뿐이다. 이런 아저씨 둘이서 만나서
환멸이 난다, 이넘의 학계! 술 졸라 처먹고 뒤져버리겠다!
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술집에서 맥주나 처묵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결국 DNA 이중나선 구조와 같은 것의 바탕이 나오게 된 것이다.
둘이 ‘같되 달라야’ 하느니라
그러면 지식수준이 유사하고, 위계질서가 없는, 쌍둥이 같은 동료끼리만 모여 있으면 뭔가 창조경제적이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룰 4차 산업혁명적인 혁신적 발상이 나올까? 둘의 ‘지식수준’이 유사하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 혹은 스킬셋이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레벨’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2인이 서로 팀 짜고 팀플할 때 둘 다 힐러만 선택하면 무슨 넘의 게임이 되겠는가. 즉 같은 스킬과 배경을 가진 사람끼리 이야기하면 항상 비슷한 이야기만 하다가 끝난다.
시너지를 보려면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능통한 사람과 디스커션, 협력하는 것이 좋다. 왓슨은 소싯적 조류 관찰자를 꿈꾸던 박테리오파지 전공자였고, 크릭은 원래 생물을 1도 모르는 병특 출신 물리학자였다. 이들의 서로 다른 백그라운드가 만나서 이들이 서로 시너지를 이룬 것을 생각해보자.
그러나 여기도 문제가 있다. 서로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이 이야기하면 나는 이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은 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웻 랩 실험’의 실험 순서를 이야기하는 ‘프로토콜’을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은 ‘FTP’ 내지는 ‘TCP/IP’ 등의 전송방식을 이야기하는 ‘프로토콜’ 로 알아들으면 곤란하다. 즉 상대방이 다른 스킬셋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용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도록 노오오력을 하자! 노오오력을 해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뭐 포기하도록 하고.
상대방이 뭔 말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추자. 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식수준의 평준화, 적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의 레벨업이 있어야 한다”와 상통한다.
꽁꽁 비밀에 부쳐봐야 사실 별거 아니다
일부 학계의 연구실 등을 보면 자신의 연구실에서 현재 진행되는 일을 함부로 언급하기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자기들만의 문화가 있으니 뭔가 이전에 아픈 추억(…)이라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은 당신이 하고 있는 연구에 그닥 큰 흥미가 없다. 당신은 당신의 연구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고 나의 아이디어가 알려지면 누군가가 나의 아이디어를 스틸해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개 ‘흠 그게 뭐지,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의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자신의 일과 관련 없는 남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호의의 표시일 수도 있다.
누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 상세한 지식이 있어야 외부와의 협력이 가능할 테고, 또 창조적인 디스커션이 가능하지 않을까? 좋은 예가 N모 상의 산실이라고 흔히 거론하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 분자생물학연구소(Laboratory of Molecular Biology, LMB)의 문화다. 이곳 출신 N모상 수상자들은 이 연구소의 가장 큰 강점으로 뛰어난 시설 같은 것보다는 식당(Canteen)을 중심으로 과학 이야기를 하는 문화를 흔히 꼽는다. 즉 식당에서 만난 다른 연구실 사람들과 차 한 잔 마시며 자신의 일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꺼내는 문화를 통해 많은 연구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이다.
가령 리보좀 구조를 풀어서 N모상을 받은 토머스 스타이츠 (Thomas Steitz)는 “처음 이곳에 가니 웬넘의 닝겐들이 실험은 하나도 안 하고 식당에 모여서 노가리만 까드라! 그런데 몇 달 지나다 보니 이런 식으로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을 다 알게 되고, 그들이 내 프로젝트에 주는 조언, 혹은 그 사람이 추천하는 연구토픽이 나중의 연구 일생에 큰 보탬이 되더라”는 회상을 하곤 한다.
그래봐야 주변에 이야기할 사람이 없던데 뭐 어쩌라고
라고 생각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한국의 바닥은 좁고,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문화가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불평만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바꿔보는 것은 어떤가.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또 광고한다고 욕하실지 모르지만 흔한 블로그 홍보를 위한 페북 페이지인 본 블로그의 페북 분점은 이제 약 7,000명이 넘는 사람이 구독하며 요즘은 웬만한 논문을 올리면 해당 논문의 저자 혹은 관련자가 댓글을 다는(…) 소규모 커뮤니티 비슷하게 되어 가고 있다. 좀 더 관심이 있으면 이런 사람들이 상주하는 슬랙(Slack) 커뮤니티인 Open Bio Korea에 가입해도 좋다.
온라인은 재미없다고? 2회 매드 사이언스 페스티벌이 생각보다는 멀지 않다! 주변에 터놓고 과학 디스커션을 할 사람이 없다면 바깥에서 찾아보자. 기승전매사페광고 뭐 요즘 쓰는 글이 언제나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