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개봉한 강풀 원작의 <26년>이 11일 만에 관객 150만을 넘기며 호조를 보이고 있다. 제작비 46억원도 무난하게 회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시비도 있고, 그 여파로 이런저런 논쟁들도 있었다.
<26년>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상처를 그린 영화다. 12. 12.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민주화의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광주에 계엄군을 투입했다. 그 직접적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핵심인 전두환은 2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났고, 단 돈 29만원밖에 없다면서 추징금 납부도 거부하고 있다. ‘나는 몰랐다’로 일관하며 시민 학살의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다. 만화 <26년>의 시작은 2년 만에 풀려난 전두환이 집 앞 골목에서 개선장군처럼 성명을 발표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26년>은 그를 죽이겠다며 나선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픽션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26년>은 제작단계부터 여러 말들이 있었다. 투자가 무산되고, 제작은 계속해서 늦춰졌다. 배우도 캐스팅되어 있었지만 제대로 제작비가 모이지 않았다. 외압이 있었다는 말이 강하게 나왔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청계천에 괴물이 나온다는 시나리오를 쓴 <괴물2>도 엎어졌다. 캐스팅까지 다 된 상태에서 영화가 엎어지는 경우가 많은 건 아니기에 외압이 있다는 말에 신빙성이 더해졌다. 영화의 제목은 26년에서 27, 28, 29로 넘어가다가 결국은 포기했다.
<26년>의 제작이 다시 이루어진 것은,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의 성공이 부추겼다고 할 수 있다. 사회문제를 다룬, 그것도 한국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법부를 공격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흥행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적인 영화를 원하는 관객들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남영동 1985>도 만들어지고, <26년>은 시민들에게 두레 펀딩을 하고, 가수 이승환도 10억을 쾌척하며 46억원의 제작비를 조달했다. 마침 대통령선거를 앞둔, 첨예한 정치적 대립의 시절도 한몫했다.
사실 외압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온갖 문제로 영화 제작이 엎어지는 것은 부지기수이고, 요즘엔 촬영에 들어간 후에 뒤엎는 경우까지 있다. 외압이 있었다 해도 은근한 압력이었을 테고, 어려운 상황에서 제작을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결국 흥행에 대한 자신감의 여부였다. 외압은 비교적 설득력 있는 음모론이고, <26년>의 흥행 성공은 물론 제작에도 큰 도움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피해자는 동정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으니까. 다행히도 <26년>은 성공했고, 아마도 200만은 충분히 넘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있었다.
<26년>은 정치영화다. 정치적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 그건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영화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지고, 누구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영화도 만들어질 수 있고 만들어져야만 한다.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다. 나 역시 <26년>이 걸작은 물론이거니와 수작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상업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에 비추어 본다면, 중간 정도라고 생각한다. 더 잘 만들었다면 좋겠지만, <26년>의 목적은 4개월 동안 완성시켜 대선 전에 개봉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광주민중항쟁이 무엇인지 알릴 수 있고, 정치적 지형의 도움을 받아 흥행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26년>은 성공적인 정치영화다. 목적에 부합했고, 시기를 잘 맞춰 수익도 올릴 것이다. 상업영화로서도 이 정도면 당연히 성공인데, <26년>은 정치영화로서의 목적은 물론 돈까지 버는 양수겸장을 두었다. 그러면 좋은 것 아닌가? 당연히 영화에 대한 비평이나 불만은 제기할 수 있다. 그건 해야만 한다. 영화가 재미없다면 그렇다고 말하면 되고, 영화의 허술함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면 된다. 그건 비평가의 임무이기도 하고, 만원 가까운 돈을 내고 본 관객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다만 이상한 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때다. 제작부의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 감정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26년>이 ‘광주를 욕보이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오버다. 그렇다면 완성도에 있어서는 전혀 할 말이 없는 <화려한 휴가>도 같은 말을 들어야 하고, 자신들의 의도에 맞지 않는 범작, 졸작들도 모두 그 소재와 대상에 대한 모욕을 범하는 꼴이 된다.
<26년>이 영화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의 정치영화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사회적이고 역사적 사건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시간에 묻히는 일이 많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라는 대중적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화제가 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정치영화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나는 그 정도로도 <26년>에게 충분히 만족한다. 영화 자체로서 본다면 잘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의미가 있으니까. 세상에는 재미만으로 보는 작품도 있고, 때로는 의미만으로도 일단 접어주는 것들도 있다.